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 이세상 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로다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 나 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 하리로다 / 아멘!

2023, 8, 20. 오후 7시, 대전 대덕구 송촌장로교회 송촌컨벤션센타 3층.

구주를 찬송하는 열기로 뜨거웠다.

이날은 사단법인 한국정직운동본부에서 주최하고, 송촌장로교회, 이승만기념 사업회, 대선 총연합회에서 주관하여 ‘나라사랑의 소중함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라는 주제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 위원장께서 특강을 하는 날이다.

대예배실로 들어서자 젊은이들의 뜨거운 열기로 화끈했다. 이 젊은이들은 손뼉을 치고 율동을 해가며 입으로는 구주를 찬송하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선 애국심으로 펄펄 끓었던 것이다.

이 젊은 청소년들과 함께 참석한 교우들이나, 그리고 윤창현 국회의원과, 박철용 동구 의원, 명재진 충남대 교수,현숙경 침신대 교수, 김영길 대전 인권센터장, 김영 한국정직운동본부 사무국장, 지영준 한국최초 인권변호사, 정진항 국민통합위원회 위원,  김종욱 더한힘 대표, 안미라, 조광연, 권순자, 전동생 부정선거 부패방지 대원들의 애국심도 대단했다. (그외 다수)

김문수 위원장의 특강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한 ‘나라사랑의 소중함과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강하는 동안 청소년들에게 질문도 하고 응답을 하면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강조하는 김문수 위원장 (사진=필자 제공)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강조하는 김문수 위원장 (사진=필자 제공)

김문수 위원장의 특강내용을 정리해보면,

이승만은 건국을 해 놓고도 건국대통령이란 소리를 못 듣고 돌아가셨다. 그런데다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고도 독재자 소리를 들었으며, 침략군이 쳐들어와서 당연히 컨트롤 타워를 옮겼는데도 도망자 취급을 받았고, 북쪽에 먼저 정부가 들어섰기에 우리도 정부를 세우자고 했다가 분단의 원흉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분이다. 미국과 협상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는데 돌아온 건 미국의 앞잡이라는 손가락질만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작 친일정권에 의해 세워진 건 김일성이 이끄는 북한이었는데 골고루 사람을 기용해 세운 남한 정부는 ‘친일정부’라는 누명을 썼다.

 필자는 젊은 시절 김영삼과 김대중에 속아 이승만과 박정희는 '독재자'라 배웠고, 그들을 추종해 길거리에 나서고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 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들은 자신의 정권욕을 채우기 위해 젊은이들을 선동 했던 모략가들인 것이다.

 중학교에선 이승만은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교육했으며, 그런데도 이승만은 그 책임을 자기가 졌고, 데모하는 학생들을 칭찬했다. 다친 시민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북한군이 쳐들어오자 서울을 버리고 도망치면서 한강 다리를 끊어 백성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좌빨들은 선동했다.

‘세 치 혀가 백만대군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것만은 알고 넘어가자.

2차 대전 중, 식민국 중에 유일하게 카이로 회담(1943.11.22~12.1)에서 독립을 약속한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게 외교인 것이다. 그것을 우리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해낸 것이다.

김문수 위원장은 누구보다 좌빨들의 속성을 잘 안다. 그것을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지난 과거 노무현과 이재명 민주당 전 대선후보는 대한민국은 미군정과 친일파를 등에 업고 이승만 개인의 권력욕으로 세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승만의 독립투쟁은 '민족'과 민중'은 아랑곳없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욕 탓이라고 좌파들은 비난한다. 이승만을 최초로 매도한 자는 남로당 공산주의자 박헌영(1900~1955)이다. 해방 후 박헌영은 남로당 대표로 이승만을 일방적으로 추대해 놓았다.

이 사실도 김문수 위원장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 특강하는 그의 음성은 카랑카랑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필자는 몇 년 전 김 위원장의 족적(足跡)을 전기문 형식으로 써서 37차에 걸쳐 언론에 게재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을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라고 비난하고 폄하하는 말은 박헌영에서 그의 아들대로 이어졌다. 전 서울 시장 박원순과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승려(본명 박병삼)는 '역사문제연구소'라는 연구소를 설립(1986)하여, 한국의 대표적 종북좌파 힉자들을 대거 영입하여 한국 역사를 본격적으로 왜곡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를 매도했다.

이들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이 수호한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반공 군사독재’였다고 했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반북·멸공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하자는 ‘사이비 민주주의’였을 뿐 민주주의로 간주됐던 적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좌빨들의 속내를 김문수 위원장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김문수 전 지사는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면서 대학교에서 두 번 제적 당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25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7년 동안 공장 생활하면서 노동조합위원장을 2년 동안 했고, 감옥에 두 번 가서 2년 5개월 동안 살았다.

 

자신을 노동운동가였다고 소개하는 김문수 위원장 (사진=필자 제공)
자신을 노동운동가였다고 소개하는 김문수 위원장 (사진=필자 제공)

감옥에서 김일성주의자, 주사파 학생들 수백 명과 만나 토론도 하고 함께 생활도 했으며, 광주교도소에서는 남파간첩, 공작원, 국내간첩, 재일교포간첩 등 100여 명과 함께 또 다시 1년 동안 복역을 했다.

김문수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주의에 심취, 공부하고 공산혁명을 꿈꾸기도 했으며, 공산혁명을 꿈꾸는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비밀지하혁명 조직 생활도 10여 년 했다.

그리고 김문수는 몇 개월 전 권좌에서 물러난 좌파의 우두머리 문재인과, 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운동권 출신 대부분과 함께 활동하고 같은 시대를 꿈꾸고 투쟁해 왔던 인사다.

 그런 그가 대전에 와서 뿌린 씨앗이 어떻게 애국운동으로 번질지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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