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는 정치적인 것을 어떤 한 유형의 제도로 제한하거나 사회의 특정 분야나 차원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을 모든 인간 사회에 본래부터 있으며 우리의 존재론적 조건을 결정하는 하나의 차원으로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인 것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견해와 자유주의 사유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 자유주의 사유가 다양한 형식의 적의敵意 현상과 마주칠 때 매우 어리둥절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샹탈 무페(2007).『정치적인 것의 귀환』서문 경합적 다원주의를 위하여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바야흐로 최고의 정치 계절이 도래했다. 2022년 3월 9일 국민투표가 끝나는 다음날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의 정부가 탄생하는 것이다. 법적으로 임기 만료 전해의 12월 둘째 주 수요일로 선거일이 정해져 있으나 제18대 대통령의 탄핵으로 변경되었다. 아무튼 지난 11월 7일 입동부터 호랑이의 해- 2022년 임인년의 입춘과 경칩까지 본격적인 ‘정치 철’이 시작되었다. 무페의 언표처럼 국민들의 ‘존재론적 조건’을 결정짓는 그것이 정치라는데 아나키스트 입장이든 특정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든 한 철의 ‘혼돈’ 그 카오스chaos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남해의 왕을 숙이라 하고 북해의 왕을 홀이라 하며 한가운데 땅의 왕을 혼돈이라 칭한다. 숙과 홀이 때마침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이 매우 융숭하게 대접해서 두 왕은 은혜에 보답하고자 논의했다. “사람은 누구나 눈, 귀, 코, 입의 구멍 7개를 갖고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여기 혼돈왕에게는 그것들이 없다. 그렇지. 구멍을 뚫어주자!” 그날부터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이레가 지나자 그만 혼돈왕이 죽고 말았다. -『장자莊子』제7 응제왕應帝王 12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부분

혼돈混.沌渾이 7개의 구멍 그 칠규七竅로 죽었다- 이 우화는 『장자莊子』제2 제물론齊物論 32의 「호접몽胡蝶夢」과 함께 걸작으로 꼽히는데 인류 문화사적으로 중차대한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성경』과의 유사성이다. 「창세기」제1장의 천지창조 역시 혼돈formless이 등장하고, 일주일의 걸친 ‘말씀’ 끝에 낮과 밤, 궁창이 나누어져 땅과 바다, 채소와 과목, 해와 달, 별, 새와 물고기... 인간이 차례로 생겨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원죄’ 그 숙명을 유추할 수 있는 일화를 종교적 차원에서만 해석하기를 고집한다면 신앙과 신학을 구별 못 하는 위인이다. 아무튼 중국 당나라의 전설적인 시인 한산寒山은 그 ‘칠규’를 부연하는 적절한 시를 남겼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 혼돈의 몸은 유쾌했다네 / 밥 먹고 오줌 누는 번거로움도 없었지 / 그런데 어쩌다가 누구에게 구멍을 뚫렸는가. / 결국 사람이 되어 아홉 개의 구멍을 갖춘 몸이 되고 말았지. / 그런 까닭에 날마다 의식주 때문에 허둥지둥 / 해마다 세금 상납할 걱정이 태산이라네 / 한 푼의 돈에 천인이 다투고 / 와글와글 모여서 목숨 걸고 외치면서 말일세.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이쯤에서 순우리말 ‘구멍’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전적 의미는 “뚫어지거나 파낸 자리”인데 꼭 아홉의 그 구, 9였을까? 목구멍이나 숨구멍, 똥구멍은 얼핏 당연한 낱말 같은데 혹여 앞선 당나라 시인이 말한 ‘아홉 개의 구멍’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조금 더 인내심을 견지하며 노자의 『도덕경道德經』과 한비의 『한비자韓非子』를 살펴보자. 기원전 5세기경 노자는 이렇게 언표했다. “출생입사出生入死 / 생지도십유삼生之徒十有三 / 사지도십유삼死之徒十有三 / 인지생동지사지人之生動之死地 역십유삼亦十有三 / 부하고夫何故 이기생생지후以其生生之厚”(제52장 부분)      

비록 구체적인 법과 조항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자- 15세기 이탈리아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의 대명사로 『군주론』을 썼는데 기원전 3세기의 한비는 그 ‘원조’로 노자의 ‘십유삼十有三’을 이렇게 해석했다. “삶의 부속물이 열세 개요, 죽음의 부속물 또한 열세 개다. 백성들이 살기 위해서 활동하지만 모두 죽음의 땅으로 가는 것 또한 열세 개 그 기관들이다.”(『한비자韓非子』제17 해노解老 / 18 노유老喩) 어려운 셈이 아니다. 즉 칠규와 생식과 배설 두 구멍을 더한 아홉 개에 손과 발의 사지를 더한 바로 그 열세 개가 ‘십유삼’이라는 풀이다. 도가의 경구를 이렇게 해석한 것은 엄정하고 공평한 법을 잣대로 통치하면 백성들이 편하다는 법철학, 법정신의 본령이 그것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한비자韓非子』의 마지막 제32편 오두五蠹: 다섯 좀벌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학자는 선왕의 도를 칭찬하고 인의를 말하며 용모나 복장을 융성하게 하고 변설을 꾸미며 그 시대의 법을 의문스러워 해 군주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언론을 행하는 자는 거짓을 늘어놓고, 외국의 힘을 빌려 개인적인 욕망을 이루며 나라의 이익을 져버린다. 칼을 찬 자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절개를 내세워 자기 이름을 빛내면서 중앙 관청에서 제시한 법령을 범한다. 권세를 가까이 하는 자는 권력 있는 사가와 가까이 하여 뇌물을 주고 요직자의 청탁을 받아들여 전쟁터의 노고에서 벗어난다. 그 중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는 백성은 거친 그릇을 만들고 값싼 물건을 모으고 쌓았다가 때를 노려서 농부의 이익을 가로챈다. 이 다섯 종류의 사람은 나라의 좀벌레이다. 군주가 이들을 제거하지 않고, 올바른 인사를 양성하지 못하면 천하에 부서져 멸망하는 나라와 영토가 줄어 멸망하는 조정이 있다해도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혼돈渾沌」(한지에 수묵. 70✕47cm) 부분

다소 긴 인용이지만 저 김지하 시인이 70년대에 말한 바로 그 ‘오적五賊이다. 물론 ’잘 살아보세‘와 ’말 좀 하자‘는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가치관이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대박을 노리면서 급박, 천박스럽게 구는 살천스런 ’적‘들이 뿌리 뽑힌 것은 아니다. 

역에 이르기를 ‘밀거나 당기거나 하여 일정치 않다. 여동무가 너의 생각대로 좇으리라’하였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천하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걱정하랴!’ 천하가 같이 돌아가지만 길이 다르고, 일치하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하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걱정하랴!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온다. 해와 달이 서로 밀어서 밝은 빛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온다.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서 한 해가 이루어진다. 가는 것은 굽히는 것이요, 오는 것은 펴는 것이다. -『주역』「계사전」

눈이 제철인 겨울이 오고야 말았다. 그렇다. 물의 순환 그 일습이 1년인데 봄비, 장맛비, 이슬, 서리 다음의 회두리가 눈이다. 입동 지났으니 이제 뜨거운 정치판을 식혀줄 눈 내리는 일만 남았다. 그 빛깔은 여지없는 하양인데 힘겹고 고단한 엄동의 삶을 위무하며 잊게 하는 눈송이... 울고불고, 배꼽 쥐고 웃어도 시간은 가고, 오는 법. 그렇게 쌓이고 쌓인 설원은 추잡하고 난잡, 황잡한 세상을 뒤덮어버린다. 눈의 색조는 순수, 처녀, 정결, 순진무구를 상징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충성스럽고, 태곳적부터 가장 강하고, 보편적인 바로 햇빛과 동일시되었다. 자연의 그 어떤 빛깔에도 그런 힘은 없는데 하늘에서 쏟아지는 해와 눈- 그 색깔만이 절대적이다. 

하루는 작은 일생- 눈 밝은 쇼펜하우어의 이 정언에 기대면 한 해는 조금 큰 일생일 터. 그런 해가 쌓이면서 이순을 넘기자 불쑥 귓가의 머리카락이 새하얘졌다. 머리가 센 나이듦의 색조는 신중, 내적 평온, 지혜를 상징한다. 죽음과 수의의 색조에 가까워진 것인지. 1년 사계절이 겨울의 눈으로 마감되듯 사람 한살이라는 게 여러 가지 색을 품고, 내고, 섞여지다 마침내 순진무구의 본령 그 흰색을 다시 찾는 것인지. 올겨울 다 가기 전에 눈 들어, 꼭 눈에게 물어봐야겠다. 하면 녹아서 하얀 눈물 된 그 눈은 이렇게 답하리라. 본래 아무것도 없었다, 폭설 내린 저 설원처럼. 

정치의 계절- 제철 맞은 올겨울부터 내년 신춘까지 대설주의보나 자주 발령되었으면 좋으련만 어떨지 모르겠다. 카오스의 그 온갖 혼돈과 혼란을 잠재울 눈, 그 하늘의 눈 말이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2020년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에 입선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를 펴냈고, 현재 고향에서 사람책도서관 어중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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