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죽게 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알베르 카뮈(1947), 5부 장편소설『페스트』마지막 문단   

소의 해 2021년- 한가위 명절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년 가까이 지속되는 코로나 19 팬데믹에 여느 해 같지는 않았지요. 손과 발의 길이 막혀 그저 눈과 꿈의 길로 고향 다녀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울고불고, 배꼽이 빠져도 시간은, 세월은 가고 오는 법. 계절은 쉼 없이 갈마들어 이제 추분도 지나고 한로가 코앞입니다. 그 ‘찬 이슬’ 또한 상강의 서리로 변하고 입동, 그 눈발과 삭풍의 겨울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런 절기에 COVID-19는 완전 ‘종식’에서 With Corona: 백신 접종을 늘리고, 더 효과적인 치료약을 개발하는 ‘공존’의 길 쪽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가난, 질병은 인간이 짊어진 3대 원죄라는 아포리즘이 있습니다.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카뮈(1913-1960)의『페스트』- 영민한 그는 세기적 전염병에 시달려온 인류에게 이 ‘10개월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처참한 살육의 제2차 세계대전을 지켜보면서 소설의 주인공인 의사 리유를 통해 적시한 것입니다. 전쟁처럼 돌림병도 이제 ‘질병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와 사회 속의 질병’으로 다루어야 한다! 인간을 괴롭히는 그 병균들은 서류, 손수건, 트렁크, 옷가지, 가구... 지극히 일상적인 삶 속에 숨어 있다! ‘불행과 교훈’을 상고하여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라!

 

추사 김정희「대팽두부大烹豆腐」(1856년, 한지에 수묵, 31.9×129.5cm, 간송미술관)
추사 김정희「대팽두부大烹豆腐」(1856년, 한지에 수묵, 31.9×129.5cm, 간송미술관)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주역』과『시경』을 비롯한 유교의 경학, 고증학, 금석학, 불교학, 문장가, 서예가... 당시 지금의 방탄소년단BTS를 능가하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학자였던 조선의 추사 김정희(1786-1856). 학문적 관심과 인적 교류의 확대 속에 무려 200여 개가 넘는 호를 사용한 완당이고 보면 실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언술이 빈말이 아닙니다. 영조대왕의 둘째 딸 화순옹주가 외할머니인 덕에 온갖 복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로 인해 정치적 가화家禍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당당한 가계의 사대부로서 벼슬이 규장각 대교, 성균관 대사성, 병조참판에 올랐지만 숱한 사화 속에 제주도 대정현의 8년간 유배를 비롯해 66세의 노년에는 함경도 북청으로 유찬流竄을 떠나야만 했던 비운의 인물이 바로 김정희입니다. 그의 노후 마지막 거처는 과천초당이었는데 한평생이 매조지 되는 기운을 느꼈는지 호를 ‘칠십일과’로 정합니다. 그렇습니다. 저 두보杜甫「곡강시曲江詩」의 시구를 차용한 것일 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그 어렵다던 70을 넘기고도 한 해를 더 살았으니 지극히 죽음을 예감한 별호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서체 14자의 대련「대팽두부大烹豆腐」는 추사가 1856년 10월 10일- 71세를 일기로 영면한 그해 5월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쓴 휘호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대팽두부과강채 / 고회부처아녀손: (생애) 최고 가는 좋은 반찬이란 두부, 오이, 생강, 나물 / 최고의 모임은 부부, 아들딸 자식, 손자’ 그리고 좌우 협서에 34자를 제발題跋했습니다. “이것은 촌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 한 큰 황금도장을 차고, 밥상 앞에 시중드는 여인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대팽두부」(한지에 수묵. 70✕68cm)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대팽두부」(한지에 수묵. 70✕68cm) 

‘삶을 팽烹’은 식재료를 삶아낸다는 뜻으로 반찬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두부豆腐는 바로 콩을, 채菜는 밭과 산에서 나는 온갖 채소를 각기 삶아 만든 찬거리입니다. 과瓜는 오이, 강薑은 생강인데 날것으로 먹어도 무방한 먹거리입니다. 그런데 ‘생강’은 양념으로 더 많이 쓰이는데 이렇게 꼽은 것이 의아합니다만『논어』제10편 향당鄕黨을 살펴보면 수긍이 갑니다. “스승 공자는 잘못 익힌 것이나 제철이 아닌 음식은 안 드셨고, 사 온 술과 육포는 드시지 않으셨다. 생강은 물리치지 않고 드셨으나 많이 드시지는 않으셨다.” 고래로 생강은 정신을 맑게 하고 사악한 것을 제거한다 여겨 선비들이 끼니마다 몇 조각씩 섭생한 것입니다. 여하튼 이들 5가지 중 어느 반찬도 산해진미에 드는 반찬은 아닙니다.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대팽두부」(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대팽두부」(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전쟁통에 강제 징집된 아들 몫으로 밥상에 꼭 한 공기의 밥을 올리시는 어머니- 돌림병에 걸려 풀로 엮은 임시 거처소에 격리된 식솔의 밥상을 나르던 살붙이들- 웃어른이 먼저 한술을 떠야 식사를 시작했던 밥상의 법도- 그렇습니다. 식구食口는 천륜으로 맺어진 혈연 그 가족을 상징하는 절대 언어로 그 어떤 낱말보다 귀중한 글자입니다. 추사는 발제에서 그런 식구, 곧 부부와 자식 그리고 자손들이 둘러앉은 밥상이 시중드는 여인이 수백인 상차림보다 더 귀하다 토로한 것입니다. 마땅히 맛과 멋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밥맛이 나야 살맛이 나고, 그래야 기죽지 않고 세상에서 제멋 찾으며 멋지게 살아내는 한뉘가 이어질텐데...       

어허! 어허! 나는 형틀이 앞에 있고, 큰 고개와 바다가 뒤를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부인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매자 해도 길이 없으니 이는 어떤 까닭인지요. – 추사, 「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부분

1842년 12월 15일 제주도 서귀포의 대정리 앞바다- 탱자나무가 둘러쳐진 옹색한 유배처를 나선 추사는 마라도가 빤히 보이는 해변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해수면을 할퀴며 부는 초겨울 해풍에 수염과 도포가 펄럭이고, 넘실거리는 파도 닮은 희끗한 눈발이 눈을 감겨도 걷고 또 걷는데.... 불현듯 육지 충청도 예산땅 본가의 머슴 ‘봉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연신 눈가를 훔치고 또 비비고 소리치며 뛰어가는데 장정은 추사를 보자마자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대감님. 이태 동안 옥체 강령하셨는지... 마님께서... 지난 11월 13일 을사삭乙巳朔 열사흘 정사丁巳에... 돌아가셨습니다. 

2년 전 유배길에서 제주도 배를 타던 완도까지 따라온 봉이- 그에게 따뜻한 고구마밥 한 그릇을 차려주고 울타리의 탱자나무 가시를 매만지는 추사- 철에 맞추어 옷과 마른반찬을 살뜰히 챙겨 부쳐주던 내자. 병석의 아내에게 한라산 암컷 사슴의 뿔을 다린 우록정을 싸고 또 싸서 보내준 남편. 첫째 부인 한산 이씨도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셨거늘 어찌 이리 질병의 그림자가 모질다 말인가... 정계에서 숱한 설화와 사화 그 형틀에 오르고, 고개 넘고 바다 건너 귀양을 떠났지만 오늘만큼 비참하고 애절한 감정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었는데... 

어허! 어허! 무릇 사람이면 누구나 죽는다지만 유독 부인만은 죽어서는 안 될 처지임을 잘 알고 있지 않소. 이녁이 죽어서는 안 될 처지에 죽었기에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더없는 원한을 품어서 뿜으면 무지개, 맺히면 우박이 되어서 이리 지아비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요. 저 푸른 바다와 같이,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이라오...  천 리의 땅을 걷고, 천 리의 망망대해를 건너 온 봉이가 잠든 애저녁. 추사는 먹을 갈고, 붓을 들어 한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월하노인께 간곡히 호소해 / 내세에는 서로 뒤바뀌어 태어나 / 천 리 밖에서 내가 먼저 죽고 이녁이 살아남아서 / 지금 이 비통한 심정을 알게 하리라 – 추사「배소만처상配所輓妻喪: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함」전문

1840년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55살의 추사는 이태 뒤 부인상을 당하고, 1848년 12월에 풀려났지만 66살에 다시 함경도 북청에 유배되었고, 1년 만에 과천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다 71살에 영면했습니다. 조선조 왕가의 피붙이로 태어나 온갖 호사 속에 자라서 벼슬길에 오르고, 동아시아 최고의 학자가 된 추사 김정희- 그 양지와 음지의 일생을 통해 끝까지 마음에 품고 바라던 바는 진정 14자뿐이었던 것입니다. 대팽두부과강채 / 고회부처아녀손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대팽두부」(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대팽두부」(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짜장 코로나 19는 카뮈의 언표처럼 우리에게 어떤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었을까요?  정치와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를 곱씹어 볼 수 있겠지만 저의 궁리로는 무엇보다 ‘집과 가족’의 재발견입니다. 전쟁과 질병, 곤궁 속에서도 여전히 찾고, 함께해 마침내 살아내는 힘의 근터리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한 살이 누구의 인생에도 기쁨과 슬픔 그 씨줄과 날줄이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실낱을 풀고, 묶으면서 완성되는 한 조각 피륙에서 더불어 고락을 나누는 이들이 세상에 그 누구겠습니까? 가족들의 웃음 꽃밭에서 피어나, 그들의 울음바다로 떠나는 한뉘- 그래서 사람 한평생을 고해苦海라 부르는 것이지요.  
  
이번 ‘글자그림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의 장편소설로 갈무리하겠습니다. 모쪼록 난바다 같은 코로나 19 속의 삶이지만 각별히 건강들 챙기시며 만추로 가는 나날이 무탈하시길 비손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이탈로 칼비노(1972), 9부 장편소설『보이지 않는 도시들』마지막 문단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2020년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에 입선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를 펴냈고, 현재 고향에서 사람책도서관 어중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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