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지평선과 수평선을 잃어버려 불안해졌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의 이 언표가 참이라면 ‘두 선’을 자주 찾으면 평온해질 터. 하지만 2년 가까이 코로나 19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하늘과 땅, 바다 그 길이 죄다 막혀 여행하기 힘든 나날이었지요. 때문에 더 피로하고, 불안하고, 위험한 사회가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칼 G. 융(1875-1961)은 “사람은 의식과 무의식 그 망치와 모루 사이에서 자아自我가 벼려진다.” 주창하며, 프로이트의 ‘성性’을 재해석해 ‘집단 무의식’을 제시했습니다. 묶어보면 인간은 수평선과 지평선 그 무한의 자유를 갈망하는 역설적으로 갇히고, 닫힌 운명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하고 / 밤하늘 별 한 번 세어보지 못하고 / 네모 방에서 일어나 네모 빵을 먹고 네모 대문을 열고 네모 엘리베이터를 타고 네모 버스를 타고 네모 지하철을 갈아타고 네모 회사건물에 들어가 네모 책상에 앉아 회의를 하고 네모 컴퓨터를 보고 네모 스마트폰을 들고 네모 책을 보며 허공에 네모를 쌓아 올리다가 해가 지면 네모를 타고 네모 집에 돌아와 네모 침대에서 네모 꿈을 꾸며 서서히 네모가 되어간다 / 이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 포스트모더니즘은 사각사각 각을 세운다 / 그러나 모든 열매는 둥글다 – 박지영(1956- )「모든 열매는 둥글다」전문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세상은 둥글다」(한지에 수묵. 70✕68cm)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세상은 둥글다」(한지에 수묵. 70✕68cm)

천생지물 체원자다- 조선의 실학자로 대문장가인 이덕무(1741-1793)는 『이목구심서 2』에서 “하늘이 낳은 만물은 그 형체가 둥근 것이 많다!”고 전제하면서 “사람과 금수가 지니고 있는 구멍, 사지의 마디, 초목의 가지, 나무그루와 꽃의 열매, 구름과 우레, 비와 이슬이 모두 그렇다.”고 풀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석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르팍을 치게 됩니다. 

“달은 해가 둥근 것을 표준으로 삼고. 해는 하늘이 둥근 것을 표준으로 삼으며, 물은 달과 해, 하늘 이 세 가지를 표준으로 삼아 만물을 생장시키고, 만물은 달과 해와 하늘과 물 네 가지 둥근 것으로 표준을 삼으니, 둥근 것이 대부분이다. 물을 어찌 둥글다고 하느냐 반문하겠지만 수은이나 물방울이 모두 둥글어 돌을 물에 던지면 물결이 마치 호랑이 눈동자처럼 굽이치게 된다. 사람과 금수의 눈동자도 물의 정수를 응결해 해와 달을 표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장 둥근 것이다.” 

이 글이 실린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는 형암선생이 24살부터 3년 동안 쓴 산문집인데 일상적인 글감이 대다수이고 분량이 매우 짧습니다. 하지만 곱씹으며 읽다 보면 사유체계가 공석孔釋은 물론 도가와 실학을 아우르는 매우 웅숭깊고 심오하다는 것을 깨치게 됩니다. 그 일단이 엿보이는 제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푸른 봉우리와 흰 구름의 맛」, 「말똥구리와 여의주」, 「회충의 쓸모」, 「눈과 서리의 모양」,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다」, 「어린아이와 거울」, 「내 동생 정대」, 「호미질과 붓질」, 「온몸으로 쓰는 글」, 「다만 쓰고 싶은 것을 쓸 뿐」... 유학자들은 청장관의 시문이 중국의 그것을 본받지 않았다 비판했지만 영정조 시대의 베스트셀러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저자 박지원(1737-1805)은 그들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만약 중국의 성인이 환생해 여러 나라의 풍속을 알고자 한다면 조선에서는 마땅히 이덕무의 시문을 찾아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의 새와 짐승과 풀과 나무, 물고기 등속의 이름을 많이 기술했고, 조선사람들의 성정을 당당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해서 조선의 국풍이라 칭해도 마땅하다.” 이런 면에서 이덕무의 ‘체원다자’는 노자가 『도덕경』제8장에서 말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주석으로 저 왕필주王弼注에 필적하는 가장 조선적인 글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23일이 상강이었습니다. (4×6)×15=360 그렇습니다. 한 계절에 6개씩 보름마다 갈마드는 24절기-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은 가을의 끄트머리로 이제 보름 지나면 겨울철로 접어드는 입동입니다. 울고불고, 사네 못 사네 하더라도 시간, 세월은 엄정하게 가고 또 오는 법. 지구는 스스로 돌면서 밤낮을, 해를 크게 한 바퀴 돌아 1년을 만들어냅니다. 물론 달이 대괴를 한 번 선회하면 1달이고요. 150억 년 전 우주의 빅뱅, 45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난 이래로 이들 천체의 운행은 변함이 없지요. 또한 물 기운水氣의 순환도 여전한데 한 해 동안 봄비, 장맛비, 이슬, 서리, 눈으로 치환하며 사람과 만물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세상은 둥글다」(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세상은 둥글다」(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원방각圜方角- 문자가 발명되기 전 고대인들은 그림으로 우주와 인간의 관계망을 규정했습니다.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 그 사이의 사람- 이 표기가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인 ‘삼재三才: 천지인‘입니다. 어려운 표식도 아니고, 수천 년 전해진 것인데 우리는 왜 이제야 확실하게 알게 되었는지... 세계적인 한류열풍을 일으킨 황동혁 감독의 9부작 드라마「오징어게임」의 포스터를 유심히 살펴보셨는지요? 네모와 동그라미, 세모- 바로 그 모양입니다. 그런데 목숨 걸린 그 게임의 상금 액수가 ‘456’억일까요? 123억이나 789억이 아니고 456억 말입니다. 일찍이 시간과 공간에 인간을 더해 ‘삼간’ 그런 세속의 저간을 공자가 풀고, 노자와 장자가 석명해주었습니다.         

천수는 1, 3, 5, 7, 9요 지수는 2, 4, 6, 8, 10이다. 천수와 지수가 각각 다섯인데 다섯 자리를 얻어 서로 합치니 천수가 25요 지수가 30이다. 이를 합쳐서 55니 이것은 변화를 이루고 귀신의 수를 행하기 위함이다. 대연大衍의 수가 50이요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49이다. 나누어 둘이 되어 천지 두 개를 본뜨고, 하나를 걸어 삼재를 본뜨고, 이것을 4로 셈하여 사철을 본뜨고, 남은 수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윤달을 본뜨니 5년만에 윤달이 되므로 다시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걸어 놓는다. -『주역』「계사전」

道에서 하나一가 나오고, 하나에서 둘二이 나오고, 둘이서 셋三이 나오고, 셋에서 만물이 나온다三生萬物 - 노자『도덕경』제42장 

대상으로서의 1과 그것을 표현한 말로써 2가 되고, 그 2와 본래 분리되기 전의 1과 합쳐서 3이 된다. 그 이후 수의 증가는 셈의 명수도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 일반 사람은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에서 유로 나아갈 때도 3이 되는데 유에서 유 즉 상대적 세계를 논할 때 끝이 없는 것이다. -『장자』내편 제2장 제물론 18

11월부터 위드 코로나를 운운하는데 바로 겨울철입니다. 저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이 언술한 ‘깊은 심심함’에 빠지는 삭풍과 눈보라의 엄동- 그는 그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새”라고 불렀는데 이는 장자가 말한 북쪽 바다의 물고기 곤鯤이 변한 새, 붕鵬(『장자』내편 제1장 소요유)의 모습일 것입니다.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 3천 리 파도를 일으키며, 하늘에 오르기를 3만 리나 치솟아, 6개월 동안 나는 새- 전대미문의 세기적 역병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더욱 단단해진 사람들이 ‘새’가 되어 ‘지평선과 수평선’을 찾아 나서는 광경이 진정 그럴 것입니다. 

스위스의 대표적 현대작가 페터 빅셀(1935- )의 『책상은 책상이다』에는 총 7편의 우화가 실려있는데 기발한 상상력 속에 따스한 유머가 넘치는 이야기들입니다. 이를테면 방안 가구들의 이름을 바꾸어서 부르기 시작하는 건물 꼭대기 층에 사는 나이 많은 남자, “아메리카는 없다!”며 콜롬버스가 실제로 누구냐?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발명품을 다시 발명하는 발명가, 기차를 한 번도 타지 않으면서 시간표를 외우는 남자... 첫 편은 「지구는 둥글다」입니다. 오년에 이르러 더 할 일이 없는 한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 보내는 일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선 거리로 걸어 나가면 다시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온갖 장비를 준비합니다, 왜 지구는 둥그니까.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세상은 둥글다」(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세상은 둥글다」(한지에 수묵. 70✕68cm) 부분

기실, 조선의 이덕무와 스위스의 빅셀의 글쓰기는 저 심심함의 발로인데 그 물꼬는 자신의 주변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보기, 새롭게 포착한 대상에 대한 깊은 사유일 것입니다. 코로나 19속에 맞는 두 번째 겨울- 시간의 질서로 ‘동’은 공간으로는 북쪽, 오행의 수水, 인성의 지智, 수數로는 1과 6을 표상합니다. 이를 아우르는 개념이 원형이정인데 겨울은 정貞에 해당합니다.『주역』64괘 중 첫 괘가 ‘건위천乾爲天: 원형이정’입니다. 이 경구를 『주역』「문언전」은 이렇게 풀고 있습니다. “으뜸元이란 것은 잘 자라게 한다는 것이고, 통亨한다는 것은 아름답게 모인다는 것이요, 이롭다利는 것은 올바르게 조화한다는 것이요, 곧다貞는 것은 일의 줄거리란 것이다.”        

할 말은 넘치고 글재주가 빈약해 이번 ‘글자그림’은 더욱 허접하고 난삽할성 싶은데 생명운동가 김지하(1941- ) 시인이 애쓴다며 자신의 시집 『애린』에서 고른 한 편을 조근조근 들려주더군요. 함께 감상하시면서 깊은 심심함의 나라, 그 겨울로 떠날 차비들 재게 해야겠습니다. 

쥐었다 폈다 / 두 손을 매일 움직이는 건 / 벽 위에 허공에 마룻장에 자꾸만 / 동그라미 동그라미를 대구 그려쌓는 건 / 알겠니 / 애린 / 무엇이든 동그랗고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 무엇이든 가볍고 작고 해맑은 / 공, 풍선, 비눗방울, 능금, 은행, 귤, 수국, 함박, 수박, 참외, 솜사탕, 뭉게구름, 고양이 허리, 애기 턱, 아가씨들 엉덩이, 하얀 옛 항아리, 그저 둥근 원...  – 김지하「결핍」부분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2020년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에 입선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를 펴냈고, 현재 고향에서 사람책도서관 어중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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