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단출한 결혼식…….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기를

대전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대전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혼인은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치르는 인륜의 대사이다.

본인뿐만 아니라 부모, 친지들에게도 경사스러운 일이다. 딸의 혼사를 앞두고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스산하다.

내 딸이 이 세상에 태어나 그동안 부모의 품에서 곱게 자라서 이제 부모로부터 독립할 나이가 된 것이다.
딸내미의 새출발을 아낌없이 축복해 주어야 하는데 코로나19와 셋째 동생의 입원 등으로 착잡한 마음이다.

어쩔 수 없이 방역수칙에 맞게 축하객의 인원을 제한하고 식사 대신 작은 기념품과 요기를 할 수 있는 떡을 준비했다.
이렇다해도 이것이 예법에 어긋난 듯싶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게 아니다.

아무리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다지만 그래도 자식의 첫 자혼사를 치르는 일이니 잘하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게다가 얼마 전 셋째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간 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위중하니 맘껏 기뻐하며 축하해 줄 상황도 못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학생 신분이었던 신학교 4학년 때 결혼했다. 속도를 위반했거나 어쩔 수 없이 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돌아보면 아내는 참 무던했던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가 안정된 직장, 집장만 등 경제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고 한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아무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결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뭘 믿고 그렇게 빨리 결혼을 서둘렀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 때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병원에 있는 셋째 동생이 간 괴사증으로 입원했었다.
그렇게 아내는 학생인 나를 챙기랴, 시동생을 간호하는 시어머니를 챙기랴, 직장을 다니랴 몸이 열 개라도 견디기 어려운 신혼 1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 부부에게 허락한 소중한 생명인 아이를 두 번이나 유산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도 투정 한 마디 없이 그 모든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냈다. 사실 이런 일도 철부지였던 나는 제대로 인식하고 못하다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후 학교를 졸업하고 첫 목회지인 경상북도 울진에 있는 황보교회라는 곳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이번에 결혼하는 딸을 임신하게 되었다.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다시 임신했으니 오죽했겠는가.

교회가 있는 곳은 산골짜기였고, 조금 제대로 된 병원에라도 가려면 두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포항까지 가야만했다.
그런데 입덧은 너무 심해 피까지 토하고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은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갖은 고생을 해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딸 '선호'다.

그렇게 얻은 딸의 출산은 기적과 같았다.
그러다가 딸이 여섯 살 때 쯤 내가 벧엘의집 사역을 하겠다고 거처도 마련하지 않은 채 울산에서 교회를 사임하고 대전으로 무작정 올라왔다.

여전히 어떻게 보면 참 대책 없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그러니 아내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컸을까.
또 어린 딸은 어떠했을까. 그런 와중에 아내는 두 번씩이나 큰 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딸 바보라고 한다. 사실 나는 그게 뭔지 잘 모른다. 그리고 돌아보면 딸에게 잘해 준 것도, 잘해 주지도 못한다.
단지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아빠의 빈자리를 홀로 감당하다 아픈 엄마를 보며 일찍 철이 들어 버린 것 같아 미안함 뿐이다.

이제는 잘 자라준 딸이 아빠의 품을 떠난다하니 알싸한 심경이 들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딸이 이제 독립된 한 가정을 이루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한다. 한껏 축하해주고 축복해 주고 싶다.

부모를 닮은 탓일까. 딸내미의 남편될 사람도 아직 학생이다. 그런데도 결혼을 한다고 하니 참 공교롭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고,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내일이 있기에 맘껏 축복해 주고 싶다.

사랑하는 딸, 늘 행복하길 기도를 드린다. 둘이 하나가 되어 소중하게 만들어가는 내일에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실꺼라 믿는다.
사랑한다. 우리 딸, 선호.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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