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기생충’을 위한 나라는 있다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기생충’을 위한 나라는 있다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9.06.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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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예측불허의 삶! 서스펜스와 코미디, 슬픈 공감: 장르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가족희비극- 봉준호(1969- ) 영화감독의 <기생충>이 2주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다. 지난 5월 30일 개봉 이후 4일차에 336만을 동원했고, 예매율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시간문제다. 이미 2013년의 ‘설국열차’가 935만, 2006년 ‘괴물’이 1,091만, 2003년 ‘살인의 추억’이 6백만을 기록했으니 봉감독은 믿고 보는 국민감독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최고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은 황금종려상 수상작 결정은 만장일치였는데, “심사위원단 모두는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며 부드러우면서도 부적절하거나 성급한 판단을 내지 않는 ‘기생충’이 선사하는 혼합 장르의 미스터리를 함께 경험했다.”며, 단연 독보적인 작품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영화사 100년에 한 획을 긋는 상찬이 아닐 수 없다. 1895년 제7예술이라는 영화가 발명된 이래 한국영화가 당당히 세계영화사의 주류 반열에 합류했다 선언해도 무방하리라.

영화는 자기 시대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의 일부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영화 텍스트 바깥에 놓인 삶의 많은 측면들과 관련되며, 이는 종종 온전히 미학적인 문제들보다는 오히려 역사가나 동시대인들에게 있어 보다 중요할 수 있는 광범한 의미망을 파생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텍스트 외적 관계들 모두를 포괄하고 자신의 사회적 기능을 완수하려면 영화는 영화 언어로 대화해야 하며, 그에게 영화의 수단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 유리 미하일로비치 로트만(1922-1993)《영화기호학》제1장 현실성의 환상

"사람들은 책을 사는 일로 그 내용을 이해했다고 혼동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이 아포리즘은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팝콘을 씹고, 음료수를 마시며 감상하는 일로 그 영화를 모두 이해했노라 여긴다. 하지만 모든 영화나 서적이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광범한 의미망’을 파생하도록 계략을 짜는 특정 감독의 복잡한 ‘언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것이다.

N차 관람열풍을 일으키는 ‘기생충’- TV 연속극 재방송을 보듯 영화를 두세 번 다시 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해석’의 여지가 넓다는 것이다. 봉준호감독은 포스터에서 이렇게 당부한다. “<기생충>은 같이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서 우러나오는 웃음과 공포와 슬픔에 관한 희비극으로 관객들은 완전히 다른 두 가족에게 펼쳐지는 예측불허한 상황들을 지켜보게 된다. 관람 후에 갖가지 생각이 다 드는 영화이길 바란다.”

영화에서 상징을 사용하고 또 수용하는 범위는 거의 무한정이다. 이를테면 대개의 이야기에서 무대는 강력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극중 인물이나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담당하는 갈등 또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히 영화에서 사용되는 상징적 의미전달, 이를테면 대상물, 영상, 인물, 음향, 사건, 장소 등을 숙지해야 한다. 상징은 영화의 강력한 의사소통의 단위로서 의미의 창고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일단 상징이 연상장치로 기능하게 되면 언제든지 어떤 의미를 저장하게 되는 것이다. - 조셉 보그스《영화 보기와 영화 읽기》제3장 극적 요소 4. 상징

봉준호 감독이 ‘갖가지 생각’이 들기를 바란다는 것은 나의 영화적 ‘상징’을 잘 찾아보라는 뜻이다. 사실 <기생충>이라는 제목에서 나는 1960년대 초등학교 시절 채변봉투를 떠올렸다. 성냥개비에 밤톨만큼 찍어 봉투에 담아오라! 교실 뒤편 상자에 잽싸게 던지고 사라지던 급우들 중에는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의 그것을 찍었다는 녀석도 있었는데.... 물론 <기생충> 중반부에 송강호(기택) 가족의 단칸 반지하방이 수몰되면서 수세식 화장실이 역류하는 신이 나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르헨티나의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똑같은 책들이 똑같이 무질서하게 반복되는 것을 언제인지 모를 미래에 발견할 것이다. 반복되는 무질서는 질서가 된다. 질서.” 우리 사회의 질서는 구성원들이 살아가며 되풀이한 무질서의 결과이며, 한 편의 영화는 ‘상징’을 분리병치, 평행구조, 반복영상, 점진노출, 다중변각적으로 반복해 마침내 ‘의미의 창고’를 만든다. 내가 궁리하건대 <기생충>에서 중요한 상징물은 ‘산수수석과 계단, 그리고 냄새’이다.

전원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최우식)의 ‘수석’은 행운과 불행을 부르고, 회두리에 흐르는 물속에 놓여 그 본래의 물성을 회복한다. 대학 진학에 세 번이나 실패했지만 글로벌 IT기업 CEO 박사장(이선균) 딸 다혜(정지소)를 가르치는 짝퉁 대학생- 그는 아직 젊기에 희망을 노래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최초의 경계는 지평선이다. 정착민인 카인은 울타리를 만들고, 경작을 하는데 동생 아벨은 경계선 없는 초원에서 양떼와 염소떼를 몰았다. 결국 그 경계의 침범으로 살인이 벌어지고 야훼에게 쫓겨나 에녹 이라는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도시 에녹은 발전할수록 단절과 구획의 경계가 촘촘해져갔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생충>에서 반복 노출되는 ‘계단’은 그 경계의 상징인데 기택(송강호) 가족은 위험천만하게 넘나든다. 그러나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박사장- 그런 터라 기택 가족들의 가난을 상징하는 그 경계 없는 냄새는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킨다.

2019 봉준호감독의 새로운 가족의 희비극- 영화 후반부를 스릴러로 몰고 가는 또 하나의 가족은 박사장댁 입주 도우미 문광(이정은) 부부다. 봉감독이 신신당부한 터라 스포일러 할 수 없지만 여하튼 반지하방보다 더한 그곳에서 4년을 살아낸 가족 아닌 가족이다. 그 가장은 박사장의 아들 초등학교 3학년인 다송(정현준)과는 모르스부호로 소통을 이어간다. 정원에 인디언 텐트를 치고 인디언놀이를 즐기는 다송은 그리스 신화와 전설 속에서 활약하는 장난꾸러기 트릭스터trickster인데 말해서는 안 될 진실을 보고, 입에 담아 연교(조여정) 그 ‘여왕과 가정’을 무너뜨리고 만다.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으레들 그러하듯이, 그 골목 안도 한걸음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홱 끼치는 냄새가 코에 아름답지 않았다. 썩은 널쪽으로나마 덮지 않은 시궁창에는 사철 똥오줌이 흐르고, 아홉 가구에 도무지 네 개 밖에 없는 쓰레기통에서는 언제든지 구더기가 들끓었다. ... 이미 빛조차 바랜 빨래들은 쉽사리도 하늘을 가리고 볕에 바람에 그것들이 말라갈 때, 그곳에서도 이상한 냄새는 끊이지 않고 풍기어지는 것이다. - 박태원 단편소설 <골목안> 첫 문단

구보丘甫 박태원(1909-1986). 아! 그를 어찌 잊겠는가? 이상, 김기림 등 순수 예술지향의 친목단체 구인회 소속이었던 그의 소설집《천변풍경》과《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탈이념과 도회적 소재의 소설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 한국 민중의 삶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월북했지만 남로당 계열로 몰려 숙청당하고, 다시 복귀한, 그는 망막염으로 실명하고, 고혈압으로 전신불수가 되었지만 구술로 <갑오농민전쟁>을 완성하고, 끝내 절명하고 말았다. 가족은 가족으로 이어진다, 기생충 집안이든 아니든지 말이다.

박태원의 외손자가 바로 <기생충>의 봉준호감독이다. 구보의 차녀 소영이 바로 봉감독의 어머니인 것이다, 1938년생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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