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사회에서는 세상의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실재였고, 그 세상 밖에는 위협적인 혼돈이 존재했다. 그것들이 위협적인 이유는 비실재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재의 중심에 집을 갖지 못하면, 거주처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무존재의 비실재적 속에서 스스로가 상실되었다. 집이 없으면 모든 것은 파편일 뿐이었다.- 존 버거 산문집《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24절기의 소서와 대서, 초복과 중복의 7월- 보름마다의 절후와 열흘씩 세 번 드는 복伏은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그런 철이면 휴가를 떠난다, 사람들은. 몸과 마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거지. - 커트 보니것《제5도살장》1945년 2월 13일- 그날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은 독일군 포로로 드레스덴의 외곽 제5도살장 지하에 있었는데 영국과 미국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해, 13만
예측불허의 삶! 서스펜스와 코미디, 슬픈 공감: 장르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가족희비극- 봉준호(1969- ) 영화감독의 이 2주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다. 지난 5월 30일 개봉 이후 4일차에 336만을 동원했고, 예매율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시간문제다. 이미 2013년의 ‘설국열차’가 935만, 2006년 ‘괴물’이 1,091만, 2003년 ‘살인의 추억’이 6백만을 기록했으니 봉감독은 믿고 보는 국민감독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기생충’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 최고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올해 칸국제영화제
사진의 진짜 내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활동에서 생겨나기 때문인데, 형식의 활동이 아니라 시간의 활동이다. 사진은 회화가 아니라 음악에 더 가깝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앞에서 사진은 인간이 실행하는 선택에 대한 증거라고 말했다. 이때 선택이란, X와 Y 중에 무엇을 찍을 것인가 하는 선택이 아니라, X순간에 찍을 것인가 Y순간에 찍을 것인가 하는 선택이다. - 존 버거《사진의 이해》1년 중에 사진을 가장 많이 찍고, 찍히는 달은 어느 달일까? 아마도 가정의 달 5월이 아닌가 한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
사실 매 시대마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고통의 흔적을 더 많이 남긴다. 주로 불행한 일들이 역사에 남는 것이다. 한 가지 잘못된 생각이 우리에게, 인간에게 부여된 기쁨과 평화의 총합산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가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 요한 호이징가(1872-1945)《중세의 가을》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하늘이 점차 맑아진다는 청명의 4월 첫 주말 어떻게들 보내셨나요? 저는 구순의 친부를 모시고 대청댐으로 나들이 갔습니다. 회갑의 외아들은 충북 영동으로 귀향한 지 5년인데, 그곳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이태 전
영광을 찾는 자, 사유의 음유시인, 여행자여! 인생은 하나의 여행이며, 여성의 자궁에서 나와 대지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는 자는 모두 여행자이다. 인류여, 너야말로 영원한 여행자이다. - 벵자맹 가스티노《철도생활》봄은 남녘의 낮은 땅부터 오르고, 가을은 북방의 산부터 내려오는 법. 제주 유채꽃과 남녘의 산수유, 매화가 한창인 봄이다. 곧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과 벚나무 따위들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이파리보다 앞서는 봄꽃- 겨우내 삭풍과 혹한을 이겨낸 노고의 대가인 그것은 바로 승전의 환호성이다. 사람들은 지극히 성스럽고,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