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자신과 직면하는 5월
[김래호 작가의 밑줄 이야기] 자신과 직면하는 5월
  • 김래호 작가
  • 승인 2019.05.0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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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 연한 녹색이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 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피천득(1910. 5. 29-2007. 5. 25) 수필 ‘오월’ 부분

reminiscence- 5월은 회상과 추억의 달이다. 앵두와 딸기는 꽃 진 자리에 열매 내고, 모란은 연신 치맛자락 나풀거리고, 나무는 초록색 옷단장하며 지난해를 재연한다. 사람들은 여러 기념일에서 저마다의 회억을 더듬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입양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유수 그 흐르는 물결은 바다 가면 이름을 잊는 법. 한때의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가 되고, 제자는 선생이 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 된 부부는 손길과 눈길 주고 받으며 꿈길 같은 지난 나달을 회고하는 것이다.

맑고 순결한 오월- 울고불고, 환호작약하던 시절의 이름들은 시간과 세월이라는 연금술사에 의해 순수한 기억만 남게 된다. 사실 색채들은 빛이 바깥 세계의 공격을 받아 생겨난다. 백색광선은 고통과 저항을 부추겨 제 색깔을 드러나게 한다. 이런 뜻에 기대면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은 인간의 칠정七情 그대로다.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며 살아가는 한뉘- 희노애락애오욕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외부적인 환경에 반응하는 태도의 일습인 것이다.

단지 철과 납, 수은 따위만 금으로 치환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을 죄다 녹여 궁극의 ‘하나’에 이르게 한다. 그렇다면 종당에 맞닥뜨리는 그 하나는 무엇이고, 언제쯤 대면하게 되는 것일까? 파올로 코엘료는 만물의 정기 속으로 깊이 잠겨 들어가 종국에 만나는 그것은 ‘언어’라고 규정했다. 평범한 양치기 산티아고가 마음의 속삭임에 귀를 열고, 보물을 찾으러 길을 떠나 만난 그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금보다 더 빛나는 은밀한 내면의 언어 말이다.

자연과 기술의 도움으로 스스로의 정신을 새롭게 할 줄 알라. 7년마다 기질이 변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때때로 행실이 크게 드러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람은 20세에는 공작이고, 30세에는 사자이고, 40세에는 낙타이고, 50세에는 뱀이고, 60세에는 개이고, 70세는 원숭이고, 80세는 아무것도 아니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1601-1658)《세상을 보는 지혜》276

1832년 쇼펜하우어(1788-1860)의 번역으로 더욱 유명해진 17세기 스페인 예수회 신부의 ‘지혜’ 300 가지- 어느덧 환갑의 예순 살이 되었는데 나에게도 ‘공작, 사자, 낙타, 뱀’ 같은 시절이 있었다. 화려하거나 열정과 냉정을 거쳐 이제 명부의 번견番犬 케르베로스가 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개는 하데스가 지배하는 죽음의 세계 입구에서 산 자와 죽은 이를 구별하는 임무를 맡는다. 망각의 레테 강을 건넜어도 이승에 두고 온 미련 미처 버리지 못한 사자들을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렇다. 불국의 삼도천이나 예수의 땅 요단강 건너면 그 누구도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편과 판, 평- 나는 일찍이 외자 세 개로 사람 한살이를 새겼다. 영원히 내편인 부모와 일가친척의 웃음꽃 속에서 피어나고, 학교와 일터 그 판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부고 몇 줄의 세평을 남기고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게 한평생이다. 그리스 신화의 ‘테세우스의 배’ 역시 플루타고라스의 인생에 대한 역설적 반문이다. 테세우스와 아테네 전사들이 타던 함선은 후대에 계속 유지, 보수되었는데 짜장 다른 배가 된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예전의 배인가 물었던 것이다. 2008년 어처구니없게 불탄 숭례문은 여전히 ‘남대문’인가? 아닌가?

유년시대, 장년시대, 노년시대가 스스로 갖추어지는 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배치가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오. 하루에 아침, 낮, 저녁이 있고, 일 년에 사계절이 있는 것과 같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좋지 않은가? 인생에는 정사선악이 없다. 계절에 따르면 매사가 모두 선이다. - 임어당《생활의 발견》제1장 5 ‘인생은 한 편의 시’

한국에 금아가 있다면 중국에는 임어당(1895-1976)이 있다. 그는 1920년대 《논어》,《인간세》등의 잡지를 창간하고 ‘소품문小品文’ 운동을 제창했다. 그가 말하는 소품문의 정의는 이렇다. “철학적 객관성을 배제하고 자신의 사상을 생각해 내어서, 그 독특한 판단을 정한 다음에, 어린이들처럼 천진난만한 태도로 그것을 세상에 공표한다.” 여기에서 ‘소품’은 4세기경 구라마즙이《반야경》을 10권으로 간략하게 번역한 것을 ‘소품반야’라고 제목을 붙인 것에서 따왔다. 수필이나 에세이의 중국식 이름이 소품이다.

세상은 영원한 움직임일 뿐이다. 대지, 코카서스 산맥의 바위,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함께 움직이는 동시에 각기 움직인다. 불변성이라는 것도 실은 비교적 느릿느릿 움직임일 뿐이다. 나는 나의 대상을 한자리에 앉혀둘 수 없다. 그것은 타고난 취기로 불안하게 움직인다. 나는 머물러 있는 상태를 묘사하지 않고,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다. - 몽테뉴(1533-1592) 에세 ‘후회에 관하여’

서양 철학사상 최초로 ‘내가 나를 쓴 최초의 철학자’인 몽테뉴- 그는 인생 그 자체를 정당화 하면서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 끊임없이 묻고, 답했다. 그런 글들이 에세이라는 장르의 저본이 된 것이다. 첫째 딸의 죽음과 친구와 동생, 아버지마저 연속해 잃어버리는 기구한 절망 속에서 그는 이렇게 서재의 천장에 써 놓았었다. 더 오래 살아도 새롭게 얻을 낙은 없다!(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면서 그 시구를 지워버렸다.

만물이 저마다의 옛 모습을 되찾는 5월- 금아 피천득선생은 오월이면 언제나 21살의 청년으로 살아간다고 토로했다. 숱한 피조물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나이를 잊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수필로 남긴 것이다. 명사 이름은 동사 ‘이르다’에서 파생되었음이 분명하다. 그 어느 해에 이르고, 다다르면 헌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갖는 한평생- 한때 가져서 불리었던 그 이름의 아름다운 날들이여! 모두 두루 멋진 초여름의 5월 나시길 비손합니다, 내 안의 영원한 연둣빛 그 비취가락지 찾아 나서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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