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내일이 24절기의 19번째, 겨울의 시작인 입동입니다. 입춘과 입추 등 새로운 계절이 열리는 그 ‘입’은 한자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입니다. 그렇습니다. 1년 사철이 확연히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온도가 다른 기운이 갈마드는 게 사계의 운행이니 말입니다. 우리나라 국기의 한가운데 ‘태극’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파랑색의 음과 빨강색의 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물결치는 형상 말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2023년 입동立冬」(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2023년 입동立冬」(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갑골문의 ‘立’은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땅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타나다‘, ’똑바로 서다‘는 뜻입니다. ’겨울 동冬‘은 긴 끈의 양쪽 끝을 묶은 모습인데 풀리지 않게 잘 갈무리한 상태입니다. 저는 일찍이 한자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순우리말 ’볼열갈결‘로 새겨왔습니다. 새봄에 보고, 여름에 열매 맺고, 가을에 갈 차비하고, 겨울에 잘 매조지는 그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자의 ’동‘이나 토박이말 ’결‘은 결結하고, 묶는 행위의 본령이 비슷한 글자입니다.  

지상의 모든 공간, 온 세계는 해와 달로 빛을 삼고 별자리로 위치를 정하여 사계절로 한 해를 삼고 태세太歲로 때를 바로잡는다. 신령이 낳은 바 모든 사물은 저마다 모습을 달리하여 어떤 것은 요절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오래 살기도 하는데 오직 성인聖人만이 이 방면의 원리에 통달할 수 있다. - 고대 중국 기서奇書『산해경山海經』해경海經 6.해외남경海外南經 1      

저는 해마다 이맘때면 『산해경山海經』을 톺아 새기며 읽어 봅니다. 이 책은 학자에 따라서 기원전 1,200여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국의 현존 최고最高 신화/지리서입니다. 본래 고본은 32권인데 전한의 유흠劉歆이 18권으로 정리했다고 전합니다. 내용은 산경山經이 21,625자로 주변지역을 다섯 방향으로 나누어 447개의 산에 대해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해경海經은 9,560자로 다른 나라들의 풍속과 사물, 영웅담, 신들의 계보, 괴물에 대한 묘사들입니다. 이렇듯 고대인들의 꿈과 무의식의 원형적 인간 심상心象이 집대성된 기서는 많은 문인과 문명사가들의 보물창고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2023년 입동立冬」(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2023년 입동立冬」(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과연 지구상에 인간이 등장한 수만 년 동안 그들의 이상향은 어떤 사회, 국가였을까요? 유교의 대동大同사회나 도교의 건덕建德을 포함해 『산해경山海經』을 지은 고대인들처럼 이웃과 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돌봄이 주류인 세상이 아닐까 합니다. 비록 ’총 균 쇠‘로 ’고독한 군중‘, ’증오의 세기‘, ’피로, 위험 사회‘가 되었지만 그런 난제 또한 공동체적 운명으로 해결책을 찾아나서 온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등으로 유명한 신영복(1941-2016)은 간곡하게 당부합니다. “우리 사회를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어가는 먼 길에 다들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구속 수감된 지 20년 20일 만에 출소한 선생은 책과 강연, 서화를 통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연대하는 하방연대下方連帶,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는 석과불식碩果不食, 함께 지키는 더불어 숲의 정신을 강조하셨습니다. 공존과 연대, 생명 정신의 본질인 바로 인간성의 회복을 갈구하신 것입니다.

입동과 함께 겨울이 시작되면 곧 세밑, 연말입니다. 가족과 연인 등의 그 살가운 정을 이웃과 조금이라도 나눈다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펼쳐지겠지요. 나라 안팎의 경제나 정세가 불안하고, 사람들의 심성이 갈수록 살천스럽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1994년에 발간된 『외롭고 높고 쓸쓸한』시집에 수록된 명시입니다. 단 3행의 단시이지만 이타적인 존재가 숙명인 사람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아무쪼록 입동지절에 나와 너, 우리 모두가 함께 몸과 맘이 훈훈한 겨울 마중하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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