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잉태한 지 7달이 되면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3백6십 뼈마디와 8만4천 털구멍이 생기게 되느니라. 9달이 되면 그 뜻과 꾀가 생기고 9개의 구멍이 뚜렷하게 되느니라. - 불교『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제3장

건원용구乾元用九는 천하치야天下治也, 내견천칙乃見天則이라: 건원이 아홉수를 쓰는 것은 천하가 다스려진다는 것이고, 하늘의 법칙을 보았다는 것이다 –『주역周易』「문언전文言傳」제1 건괘乾卦 문언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구멍과 13」(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구멍과 13」(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해, 비, 그림, 비손, 매조지, 귓구멍, 울고불고, 얄망궂다, 곰팡스럽다, 곯아떨어지다... 입말과 글말이 참 잘 어울리는 순우리말. 이런 낱말들은 발음하기도 쉽고 정겨울뿐만 아니라 뜻을 되새겨 볼수록 웅숭깊다. 한글 의미론 분야의 선구자는 단연 유영모(1890-1981) 선생이시다. 다석多夕은 오늘을 “오! 늘 감탄하며 살아가라!”는 뜻으로 새기셨다. 또한 살피다는 “자신의 살과 피를 삼가 간수하며 주위를 돌아보라!”, 진달래는 “너의 짐을 나에게 달라!”는 권면으로 풀어내셨다. 역시 사람은 누구나 ‘이2’인데 있다가 없어지는 유무적 존재이니 당연하다 하셨다. 이이와 저이, 그이-    

나는 그 방식을 좇아 토박이말을 여러모로 되새기며 해독하기를 즐긴다. 억지 춘향이 같지만 ‘하늘’은 (둥근) 하나가 늘 같으니 그렇게 부르고, ‘해’는 내가 떴으니 무슨 일이라도 하라는 명령이라고 여긴다. 그리운 대상을 자꾸 그리다 보면 ‘그림’이 되고, 바라고 바라면 그리로 ‘바람’이 되어 분다. 그런데 동양고전을 공부하면서 ‘구멍: 파내거나 뚫어진 자리‘의 그 구가 숫자 ’9‘임이 틀림없어 고유어의 현묘함에 무릎을 치게 되었다.    

기원전 6세기, 그러니까 2,800여 년 전의 경전들은 한결같이 사람 신체의 ’9‘를 적시하고 있는데 차례로 꼽아보면 말 그대로 아홉 개의 ’구멍‘이다. 눈과 코, 귀의 2개씩 6개, 그리고 입이 1, 생식기가 2개, 모두 합하면 9개가 아닌가! 바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 말하는 9달 태아의 그것이다. '주역周易』의 64괘는 8가지 괘가 8번 변용으로 9수를 쓰지 않고 있다. 용구법칙用九法則- 이는 상수역학에서 말하는 양의 최대 분열수이므로 음의 10으로 수렴됨을 의미한다. 태극이자 무극, 황극인 1이 10무극 방향으로 나아가는 운동이 천지 우주의 운행이고 '주역'은 그 변화를 상술하고 있는 것이다.  

노자는 ’천하만물天下萬物 생어유生於有 유생어무有生於無: 천하만물은 있음에서 나오고, 그 있음은 없음에서 나온다‘(『도덕경道德經』제 40장)라고 정언했다. 부모님의 몸과 맘 절반씩 빌어 온 사람 역시 그 무의 대상으로 ’출생입사出生入死‘(제50장)한다며 이어서 ’생지도십유삼生之徒十有三‘을 제시한다. 이 경구는 학자들에 따라 해석이 조금씩 다른데 24살의 천재 왕필王弼(226-249)은 “제대로 사는 무리가 열에 셋 정도”로 ’10분의 3‘으로 풀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구멍과 13」(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구멍과 13」(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한비자(기원전 280-?)는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인재라는 ’법술지사法術之士‘로 불렸는데 훗날 법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유가와 묵가의 사상을 반대한 일반적인 법가들과 달리 도가의 입장에 상당히 우호적이었고, 자신이 저술한 『한비자韓非子』제17, 18편에 노자의 경구를 상세하게 주석했다.  

인간은 출생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 시작이 나온다의 출出, 끝이 들어간다의 입 入이다. 그래서 태어나 나오고, 죽어서 들어가는 것이 ’출생입사‘다. 인간의 몸에는 삼백예순 개의 마디, 사지와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지와 아홉 개의 구멍을 합하면 열셋이 되는데 그 13이 움직이고 멈추는 것은 생존에 속하는 것이다. 이에 속하는 것을 도徒라 한다. 그래서 말하기를 “생존의 부속물은 13개”라고 했다. -『한비자韓非子』제17편 해로解老

주석 그대로 ’13‘은 9개 구멍에 팔과 다리의 4지를 더한 숫자다 그러니까 10/3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십유삼十有三‘을 해석한 것이다. 이쯤에서 ’구멍‘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우화를 되짚어 보자. 칠일이혼돈사七日而渾沌死(『장자莊子』제7편): 남해의 임금 숙儵과 북해의 임금 홀忽이 한가운데인 땅에서 만난다. 그곳의 왕이 바로 혼돈인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은혜에 보답하고자 ’구멍 규竅‘를 뚫어주기로 합의한다. “사람은 누구나 얼굴에 7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그렇게 해주자!”는 것. 해서 하루에 하나씩 파 나가 7일 만에 7개가 뚫리자 혼돈이 그만 죽고 말았다.

인간의 유위有爲한 행동이 자연의 순박을 파괴함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일화- 전체적인 함의는 그렇지만 구멍 7개는 진묘하다. 덧붙여 기독교 『성경』의 창세기 그 7일을 연관시키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아무튼 『동의보감東醫寶鑑』의 허준(1539-1615)이 편언절옥 하셨다.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그렇다. 파내거나 뚫린 것이 ’구멍‘인데 신체의 그것은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기관으로 우선 자신의 몸을 유지하면서 맘과 통하고, 나아가 이웃, 세상과 소통하는 기능을 한다.  

이제 11월도 하순에 접어들고 곧 한해살이의 회두리 12월을 맞는다. 지난 한 해 동안 불편했던 몸과 맘이 거북살스럽지 않고, 한동안 소원했던 사람들과도 시원하게 통하는 연종年終지절을 비손해 본다. 그것이 인간으로 주어지는 ’구멍과 13‘으로 그저 그냥 살기보다 사람답게 살아내는 삶의 본령이다. 사람의 줄임말이 곧 ’삶‘이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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