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명절과 한글날 연휴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셨는지요?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 2023년도 문득 늦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8일이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 보름 후면 서리의 상강, 다시 15일 지나면 11월 8일, 입동입니다. 한 철에 6개씩 보름마다 드는 24절기가 그렇게 어김없이 오고 가겠지요.    

 

1446년 세종대왕(1397-1450) 반포 「훈민정음 언해본」부분 
1446년 세종대왕(1397-1450) 반포 「훈민정음 언해본」부분 

편과 판, 평- 저는 일찍이 사람 한 살이를 이렇게 일습해 묶었습니다. 가족들의 웃음꽃 속에 피어나 살아내다 회두리에 그들의 눈물바다로 떠나는 한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히 내 ‘편’의 응원 속에 사회라는 ‘판’에서 활동하며 ‘평’을 얻는 통과제의가 곧 일생입니다.  

여기에 이런 생각도 덧붙여 해봅니다. 체력과 학력, 재력- 이 ‘3력’을 얻고, 잃는 것이 또한 한평생이 아닐까? 부모님의 몸과 맘 꼭 절반씩 얻어 태어나 공부하고, 그로써 ‘일과 밥, 꿈’을 키우는 재력을 쌓아가는 일생일세- 그렇다면 한생에 처음 얻고, 마지막에 잃는 것은 짜장 무엇일까요. 유언이 그렇듯 저는 입말과 글말 곧 언어라고 단정합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2023년 한글날」(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2023년 한글날」(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언어는 존재의 집- 독일의 실존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의 정언이 참이라면 거꾸로 ‘존재는 언어의 집’이라는 명제도 참일 것입니다. 말을 한다는 행위는 주체 자체가 살아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일이니까요.

대상으로서의 1과 그것을 표현한 말로써 2가 되고, 그 2와 본래 분리되기 전의 1과 합쳐서 3이 된다. -『장자』제2 제물론

사물들이 단어의 투명성 속에서 분명히 드러날 수 있도록 사물의 이름을 지으며, 재단하며, 조합하며, 합성 내지 분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언어는 연속적인 지각 내용을 하나의 표로 변형시키며, 존재의 연속체를 특징들로 재단한다. 언설이 존재하는 바로 그곳에서 표상들은 진열되고 병치되는 반면에, 사물들은 특징에 따라 분류되고 분절화되는 것이다. - 미셸 푸코(1926-1984).『말과 사물』제9장 인간과 그 분신

다소 어려운 논리 같지만 장자의 절친 혜시의 전제를 이해하면 금방 풀릴 것입니다. 닭의 다리에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장자』제33 천하)- 지극히 온당한 언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리는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는 분명 두 개이지만 저마다 정신 속에 ‘다리’라는 개념이 있어야 비로소 언어가 되는 것이지요. 장자의 ‘3’이 바로 그것입니다. 삼생만물三生萬物(노자『도덕경』제42장)-    

언어, 말들이 참된 존재를 잃고 떠나 혼란과 혼돈 속에서 날뛰는 세태- 공자의 ‘정명正名’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단어와 낱말 속에는 실체와 부합하는 뜻이 담기는 법. 그 올바른 뜻을 폄하하고 훼손하는 거짓과 가짜 정보가 판을 치는 세상이 갈수록 살천스럽습니다.

유영모(1890-1981) 선생은 우리말, 토박이말, 토속어 풀이로 유명하신 어른이시죠. 오늘을 “오! 늘 오는 날들을 감사와 감탄 속에 살아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다석은 ‘제소리’를 “자기 자신의 소리”로 새기시면서 삼가 바른 소리, 제대로 된 그런 말, 언어를 구사하라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곧 세종대왕의 ‘정음正音’과도 상통하는 권면입니다.  

수락석출 만산홍엽- 이제 가을이 깊어가면 물기운이 약해져 강바닥의 자갈들이 드러나고, 온산이 단풍으로 물들겠지요. 봄비, 장맛비, 이슬, 서리, 눈... 수기水氣의 순환이 사철의 1년인데 부디 몸과 맘 청안하신 만추지절 이어가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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