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여 지나면 입하이니 어느덧 새봄도 늦봄이나 만춘으로 불러야 할 절기입니다. 코로나19 탓에 3년 동안 빼앗긴 봄철이었는데 가족이나 친구들 아니면 혼자라도 봄나들이 다녀오셨는지요? 저는 지난 주말 전라남도 땅끝마을 해남 두륜산의 대흥사大興寺로 원행했습니다. 대흥사는 초의선사가 머문 사찰이어서 한국 차茶문화의 성지로, 천불과 다산 정약용의 일화가 전하는 명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저의 여정은 그런 면보다 ‘천불전千佛殿’ 자체에 국한되었습니다.

 

대흥사 천불전: 보물 제1807호(전남 해남군 삼산면 두룬산문頭輪山門 ) / 김래호 제공
대흥사 천불전: 보물 제1807호(전남 해남군 삼산면 두룬산문頭輪山門 ) / 김래호 제공

사실 1978년 대학교 입학하던 그해 여름방학에 강진과 해남 일대의 남도여행을 다녀왔었습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유배지와 추사 김정희(1786-1856)와 초의선사(1786-1866)의 차를 둘러싼 교류가 흥미로운 여로였습니다. 당시에 대흥사에 들러 그 천불전을 알현한 듯한데 오래된 기억의 저편 ‘천 개의 불상’으로 가물가물한 것입니다. 물론 45년 만에 기어이 다시 찾아 나선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불전」(한지에 수묵캘리: 70✕135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불전」(한지에 수묵캘리: 70✕135cm) 부분

「천불전千佛殿」- 제29회 한국서도대전 접수일이 오는 4월 17-19일인데 캘리그라피부문 출품작을 지난 3월에 낙관했습니다만 미심쩍은 마음이 여전했습니다. 화제를 정한 올해 초부터 몇 차례 공주 마곡사와 김천 직지사의 그 불전에 다녀오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천불전 중 가장 웅장하고 지난 2013년 보물 제1807호로 지정된 대흥사의 불전이 계속 아른거렸던 것입니다.  

천불전은 누구든지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의 근본 교리를 상징하는 전각입니다. 이는 불교 경전 『범망경梵網經』에 그 요체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대중심체성大衆心諦信: 대중들이여 마음속으로 살펴 믿어라 / 여시당성불汝是當成佛: 너희는 마땅히 이루게 될 부처이고 / 아시이성불我是已成佛: 나는 이미 이룬 부처이니라”

사방을 한 번 더 나누면 십방이 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삼세인데 합하면 시방삼세十方三世가 됩니다. 그런 영겁의 사람들 누구나 열반의 부처가 된다니 이보다 간명한 교리가 있을까요? 그 천불전에서 눈을 감고 오른손 검지를 들어 가르키고, 눈을 떠서 마주치는 불상이 곧 자신이라는 설법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천불전은 천년고찰 조계종 본사급 사찰에서도 갖추기 힘든 전殿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불전」(한지에 수묵캘리: 70✕135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불전」(한지에 수묵캘리: 70✕135cm) 부분

저 유명한 T. 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해 4부에 걸쳐 433행이 이어지는데 그 마지막 시구는 이렇습니다. ‘다타. 다야드밤. 담야타. 샨티 샨티 산티: 주라! 공감하라! 자제하라! (이해를 초월한) 평화 평화 평화’ 그렇습니다. 한국의 4월은 잔인함을 넘어선 가혹하고 모진 기념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4.3  희생자 추념일, 4.19 혁명, 4.16 세월호 참사...

수인手印: 선정인, 통인, 항마촉지인, 지권인, 전법륜인- 불상은 다섯 가지 손 모양으로 사부대중의 안녕과 평온을 발원하고 있습니다. 천불전에 가시면 앞서 살아간 이들, 뒤따르는 사람들의 성불 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터. 실학자이지만 천주교인으로 몰려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조차 당시 승려 완호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경주산 옥돌로 조성한 천위가 두 배로 나뉘어 운반되는데 700위의 배가 일본으로 표류한 것입니다. 1818년 그 배가 무사히 귀환해 온전히 안치되었습니다.

미지막으로 ‘불상’이 화두가 된 선문답을 소개하며 이번 ‘글자그림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저 달마가 조종인 선종禪宗의 6조가 바로 혜능(638-713) 선사이십니다. 어느 날 방변스님이 조성한 자신의 형상을 보고 이렇게 넌지시 평결합니다. “이녁은 진흙의 소성塑性은 잘 알지만, 불성佛性은 잘 모르는 듯하네...” 당대 숱한 사찰의 불상과 나한상, 조사상을 빚은 방변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한 ‘소식’이었습니다. 활연대오- 보이는 진흙에 보이지 않는 불성까지 함께 반죽했느냐는 혜능의 심사心似를 이해한 것일까요?

토끼 뿔: 조선의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비슷한 형사形似는 죄다 가짜라며 사물과 현상의 알짬 그 심사를 찾는 글쓰기를 권면했습니다. “맹자가 성씨는 누구나 같지만 이름이 다르다! 했으니 연암 나는 이렇게 말해본다. 글자는 함께 하는 바이지만 글은 혼자만의 것이다!”(「답창애지일答蒼厓之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제28회 대한민국서도대전.제 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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