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자연이라는 커다란 책은 그 책에 씌여 있는 언어를 아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다. 그 언어는 수학이다. - 이탈리아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3월 21일- 오늘은 24절기의 4번째 춘분, 내일은 음력 윤閏이월의 첫날이다. 절기는 해의 양력, 윤달은 달의 음력 그 셈법이다. 매년 24절기는 15일마다, 사계절에 각기 6개씩 갈마든다. 그런데 왜 1주는 7일, 1달 양력은 30-31일 음력은 29-30일, 1년은 12달인 것일까? 또한 도대체 ‘잉여, 남을 윤閏’ 자를 쓰는 윤년과 윤달은 어느 때부터 시행된 것일까? 무심코 달력을 보지만 이따금 의문이 드는데 사실 천문학에 관심이 없거나 전혀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

수학은 패턴의 과학이며, 그 패턴은 당신이 세심히 살펴보면 어디에서나 물리적 우주에서도, 생명 세계에서도, 심지어 당신 자신의 정신에서도 찾을 수 있고, 그리고 수학은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준다. - 미국 수학저술가 케이스 데블린(1998).『수학의 언어』후기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주역周易』「단사彖辭」 22 비괘賁卦의 경구: 천문야 문명이지 인문야 관호천문- 이 14자의 요체는 ‘글자 문文’인데 갑골문은 양팔을 크게 벌린 사람의 가슴에 ‘˅’가 그려져 있다. 이는 어떤 뜻을 새긴 모습인데 물결과 나뭇결처럼 ‘무늬’를 뜻하는 기호다. “하늘의 무늬가 밝아서 땅에서 머문다!” 묶어보면 해와 달, 별이 밝게 빛나며 운행하는 광경이 천문, 곧 하늘의 무늬라는 의미다. 이어지는 경구는 사람들이 그를 통해 인문을 찾으라는 권면이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인문야 관호천문: 천문을 살펴 인간의 무늬, 인문을 밝혀낸다. 기실 인간은 자연과 사람에게서만 배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자연에서 발견하고 확립한 법칙을 통해 천문의 실체가 밝혀지고,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특히 수학은 인류 문명사의 영원한 ‘언어’로 훗날 어떤 재사가 새로운 ‘무늬’를 드러낼지 모른다. 천하언재天何言哉: 하늘이 언제 말을 하더냐!(『논어』17편 양화) 말씀 한 마디 없어도 우주 자연의 순환과 변화의 실제 그 자체가 천문이자 진리이다.

편언절옥- 한 해의 춘분과 추분은 천기의 음과 양이 똑같은 시기다. 그 절후를 기점으로 양의 낮과 음의 밤 그 길이가 변하는데 춘분을 지나면 낮이 점차 길어진다. 일찍이 이 천문을『주역』은 이렇게 평역했다. “소식영허消息盈虛 천행야天行也: 줄어들고 늘어나며, 찼다가 비우는 것이 하늘의 운행이다(「단사彖辭」23 박괘剝卦) / 부다익과裒多益寡 칭물평시稱物平施: 많은 것을 덜어 적은 데 보태며 만물을 공평하게 만든다(「상사象辭」15 겸괘謙卦)”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천문야 인문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윤년과 윤달은 천문이 밝혀주는 인문의 하이라이트이다. 태양계에서 지구는 스스로 돌며 밤낮의 하루를, 태양을 크게 선회해 1년을 그리고 달은 대괴를 한 번 싸고돌아 1달을 각각 만든다. 그 운행에서 1년은 정확하게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걸리는데 이를 처리하지 않으면 4년이면 357일이 된다. 달의 그것 역시 354.37일로 해마다 11일 가량이 잉여, 남는 것. 이런 ‘진리’를 처리하는 인간적 계산법이 윤년, 윤달이다.

한뉘, 한평생, 일생 그 나달 내내 슬프거나 기쁘지는 않는 법- 사람의 삶이란 행불행의 씨줄과 날줄이 짜내는 무늬이고, 그 결은 하늘의 그것과 닮았다 믿으면 한결 중압감이 사라진다. 저 조선의 현자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일러주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인생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돌아다니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외쳤다. 멋진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번 울어 볼 만하도다!”(『열하일기』7월 8일 갑신일- 날이 맑았다)

연암의 울음은 바로 갑갑한 어머니 뱃속에서 하루아침에 탁 틔인 세상으로 나와 손발 펴고 시원하게 우는 바로 그것인 바. 오늘에서야 활연대오, 할연관통, 천지혼융의 한 소식 깨친 기쁨의 울음이지만 웃음도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웃어라. 신 앞에서만 울어라- 생과 사가 하나生死一如 라면 웃음과 울음 역시 한 사람 그 칠정七情의 표출이다.

춘삼월 새봄의 교향곡- 새뜻한 만물이 저마다 생육을 차비하는 소리가 심포니 선율처럼 천지에 가득한 나날입니다. 그 가상한 생기와 수고에 귀 기울이고, 방끗 웃어 힘을 북돋고, 한편 살아낼 생각의 잠시 슬픔에 빠져도 좋은 봄날입니다. 부디 생생生生 여여如如하신 춘일들 이어가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제28회 대한민국서도대전·제 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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