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무어 하나 여쭤보면서 이번 ‘글자그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2, 3에서 9, 0까지 이들 중에 어떤 숫자를 가장 좋아하시는지요?”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서양에서는 7을 가장 선호하는데 한국인은 3, 중국사람은 8, 일본인은 7입니다. 또한 한자문화권에서는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은 4를,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적그리스도와 사탄을 상징하는 수 6을 기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인류 문명사적으로 ‘1, 一’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숫자입니다. “일화개천一畵開天: 복희씨伏羲氏가 ‘一’을 그려 인간의 지혜로운 세계를 열었다!”

옛날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위로는 하늘에 있는 형상들을, 아래로는 땅에 있는 형상들을 관찰하고, 새와 짐승들의 모습과 식물의 마땅함을 살폈다. 그리하여 가까이로는 몸에서 멀리로는 사물에서 상을 취하여 8괘卦를 그려 오묘한 덕을 통하고, 만물의 상태를 나누어 구별하였다. -『주역』「계사전 하」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어찌 보면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 자연스런 궁리겠지만 ‘一’을 그리고, 나누고, 보태어 8가지 괘로 표현한 것은 실로 경이로운 창조입니다. 그들 부호는 각기 하늘, 땅, 우레, 바람, 물, 불, 산, 못을 상징하는데 64괘의 『주역』을 거쳐 상형문자가 한자로 다듬어지면서 ‘하나, 1’은 동양철학의 주된 논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4대 곧 지수화풍地水火風이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제기한 만물의 근원과 구성요소인 아르케arche입니다.

서양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아르케는 물이다!”라고 제시했는데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응축과 희박성”이라고 주창했습니다. 그후 제논학파를 거쳐 엠페도클래스의 ‘지수화풍’,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피타고라스의 ‘수’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대의 영혼을 돌보라!” 외친 소크라테스를 기점으로 피시스physis가 아닌 노모스nomos로 넘어갔습니다. 이제 철학의 테제가 자연의 세계가 아닌 인간과 사회가 된 것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도는 1을 낳고, 1은 2를 낳고, 2는 3을 낳고, 3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업고, 양을 안고, 충기로 조화를 이룬다. -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제42장  

인용된 이 경구는 『장자壯子』전편을 관통하는 ‘도道, 유有, 무無’의 저본으로 부단히 석명되고 있습니다. “만물은 모두 무에서 나온다.”(제23 경상초), “태초에는 무만 있었을 뿐이니 이름이 있을 수 없다.”(제12 천지) “인간의 삶이란 일시적인 기의 모임에 지나지 않소. 사람에게 장수와 요절이라는 차별이 있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소.”(제22 지북유) 그렇습니다. 복희씨가 그린 ‘一이 ‘도’가 된 것인데 사람 역시 도가 낳은 ‘3’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묶어 보면 무이자 태극太極인 도道는 총체적인 형이상자, 만물의 형상 그 기器는 형이하자입니다.  

3월 6일 어제가 24절기의 세 번째 경칩이었습니다. 개구리를 비롯한 겨울잠 동물들이 깨어 활동하는 시기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동물과 식물성을 지닌 ‘양성구유’적 활동으로 참 편리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나무처럼 붙박이로 자고, 동물처럼 움직이며 먹고 마실 수 있지요. 그런 탓에 어떤 목표를 정하고, 성취해야만 하는 업보를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삼생만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삼생만물- 그 3월의 3일도 지났습니다. 3월의 압운押韻, 라임rhyme은 ‘생生’입니다. 이제 남녘의 훈풍에 겨우내 삭풍에 시달리던 매화가 생생하게 만발하고, 동물들도 생동감 넘치게 활개치는 새봄입니다. 봄은 동사 ‘보다’의 명사형인데 새봄은 되살아나는 삼라만상을 새롭게 보는 계절입니다. 하늘과 땅의 중간자인 사람의 한뉘를 인생, 일생, 생애, 한생, 한평생이라 부르거늘 삶은 바로 ‘생’ 그 자체입니다. 무한한 우주에서 3의 존재인 사람의 3월은 그래서 더욱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달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깊어가는 새봄, 올봄에 모두 두루 건강과 행운이 넘쳐나시길 발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제28회 대한민국서도대전·제 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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