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봄소풍」(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봄소풍」(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문장가 구양수歐陽修(1007-1072)는 육경六經의 글자 수를 일일이 세어서 제시했는데 『논어』는 1만 1,750자이다. 제1편「학이」에서 마지막 제20편「요왈」까지 그 한자들은 주로 공자(B.C. 551-479)와 제자들의 대화다. 여기에 정치가와 은자, 백성들의 이야기도 담겨 당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제11편「선진」25의 272자를 톱아 새기며 봄소풍 떠날 준비를 한다. 저 2천 500여 년 전의 시간여행을 통해 새해를 잘 살아내자는 다짐이다. 다소 길지만 나름 요약해 인용한다.

스승이나 내 나이를 의식하지 말고 답해보거라. 만약 조정에서 그대들을 알아보고 출사하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제일 먼저 답한다. “3년 정도면 평민들이 큰 나라들과 용감하고 싸우며 잘 살아가는 정책을 제시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염유는 “저도 3년이면 백성들이 풍족하게 살도록 만들고, 예법이나 음악을 가르칠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고한다. 이어서 공서화가 아뢴다. “저는 많이 배우겠습니다만 종묘 제사나 천제를 올릴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까 합니다.”

『논어』는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상과 정치관을 제시한 경전 중의 경전인데 따옴구절은 공문 제자들이 배운 바를 밝히는 답변들이다. 저 2,500여 년 전 어느 한적한 시골집의 사랑방- 아마도 입춘과 우수도 지나고, 경칩의 새봄을 맞는 지금쯤일 성싶다. 공자는 문하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볼 참이다. 증석이 타는 가야금 소리가 나직한 가운데 일종의 ’정견‘을 발표하는 자리가 열린 셈이다. 실제로 당대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려 애쓰던 수하들이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제 남은 이는 증석이었다.

그래 점아 너는 어찌하겠느냐? 고슬희鼓瑟希 갱이사슬이작鏗爾舍瑟而作: 거문고 타는 소리가 잦아들더니 뎅그렁 밀어놓고 일어나서 말씀 올린다. “앞선 동문들과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무슨 상관이냐. 각자 뜻을 말하는 자리인데 괘념치 말고 말해 보아라. “올해 늦은 봄에 새로 지은 옷을 입고 어른 5-6명, 어린아이 6-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기우제 지내는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겠습니다.” 오! 진정 그리하고 싶은 게냐? 예... 제자들아 잘 들었느냐. 나도 점과 함께 봄소풍이나 다녀오겠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봄소풍」(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봄소풍」(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공자 문하에 출중한 이들을 ’공문 10철, 72현‘이라고 부르는데 증석과 그의 아들 증자(B.C. 505-436) 역시 그 반열에 들었다. 여하튼 선생은 불과 여섯 살 아래의 제자를 대접해주느라 말품을 판 것인가? 아니면 주나라가 망하고 열린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스런 시대적 상황이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선 것일까. 짐작컨대 ’노래‘를 거론한 까닭이었는지도... 대여섯의 어른과 예닐곱의 아이들이면 남녀노소 누구든 어울리는 대동大同: 눈과 손의 길 열고, 발길이 함께해 마침내 열리는 그 꿈길 같은 소풍이 아닌가.  

유교적 이상국가는 정명론正名論 즉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회다. 공자는 “시에서 순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興於詩, 예를 통해 도리에 맞게 살고: 立於禮, 음악으로 인격을 완성한다: 成於樂!”(제8편 태백)며 공부와 수행을 통해 회두리에 음악처럼 조화로운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공자는 『논어』제3 팔일 23에서 자신의 음악관을 단적으로 석명했다. “음악은 배워둘 만한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여러 소리가 합하여지고, 이어서 소리가 풀려 나오면서 조화를 이루고, 음이 분명해지면서 끊임없이 이어져 한 곡이 완성되는 것이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봄소풍」(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봄소풍」(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동관제업 / 한영이귀: 함께 공부하는 어른, 아이들과 / 한가로이 노래하며 돌아온다- 훗날 그러니까 공자 생몰 후 900여 년 흐른 뒤 6조 최고의 시인 도연명(365-427)은  「시운時運: 계절의 운행」에서 예의 아름다운 그 사제 대화를 환기시켰다. “강가운데로 눈길을 보내니 / 그리운 것이 맑은 기수로다 / 동관제업 한영이귀 / 나는 고요함을 좋아하여 / 자나 깨나 항상 분발한다 / 다만 한스러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 / 까마득히 쫓을 수 없음이로다” 무욕과 안분의 이치를 체득한 증석과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안타까움이다.

지난번에는 옆집 아이와 함께 놀았었는데 / 오늘은 그 아이만 홀로 노는구나 / 봄바람에 꽃다운 풀 고운 빛깔들 / 어느새 또 못가 누대 뒤덮었는데 – 조선 문필가 홍세태 한시「유감有感」전문

홍세태洪世泰(1653-1725)는 중인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지만 뛰어난 시 짓는 재능으로 조선 후기의 시단을 이끈 시인이다. 새봄의 어느 날 유하柳下의 눈길은 파릇파릇해진 연못가의 정자에 고정되었다. 거기에는 담을 이웃한 집의 아이가 ’새 풀 옷‘ 차림으로 혼자 놀고 있다. 함께 놀았던 또래의 제 자식은 끝내 나타나지 않은 채. 내 아이도 저 봄풀처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참척慘慽. 유하는 8남 2녀의 자녀들을 모두 앞세우는 가혹한 삶을 견뎌내야만 했다. 참고 꾹꾹 누르지만 해마다 북받치는 설움은 그렇게 20자의 한시로 승화되었다.  

사람은 우주 나무에 단 한 번 피었다 지는 꽃이라 했지요. 입춘과 우수도 지나고 이제 경칩을 기다리는 날들입니다. 함께 길을 걷다 먼저 돌아간 ’사람꽃‘들 죄다 풀, 꽃, 바람, 비로 환생하는 새봄- 모쪼록 부디 가슴속 눈과 손 그 길의 슬픔은 덜하고, 얼마간 기쁨 찾는 살아생전 발길의 봄소풍 되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제28회 대한민국서도대전.제 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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