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존심이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

나는 남자다.
공중화장실에서는 당연히 남자 화장실을 사용하고, 당연히 서서 소변을 본다. 
집에서도 10여 년 전까지는 당연히 서서 소변을 봤다.

10여 년 전까지라고? 그럼 지금은? 당연히 소변도 앉아서 본다.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드디어 세상이 망해가는구나. 
한탄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자들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아예 남자를 포기하는 놈들이 생기는구나. 당장 그놈의 '고추'를 떼어버려라.

나는 반대로 물어보고 싶다. 아직도 집 화장실에서 서서 오줌 누는 남자가 있는가?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에게 또 묻고 싶다. 혹시 집 화장실에 좌변기 외에 공중화장실처럼 남성용 소변기가 따로 있는가?

내가 경험이 미천해서인지 지금까지 남성용 소변기를 따로 설치한 집 화장실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혹시 만수르나 빈 살만의 집에는 그런 게 있을까 궁금하긴 하다. 만약 집 화장실에 좌변기만 있다면 앉아서 오줌 누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긴 여전히 좌변기 커버도 올리지 않고 오줌 누는 남편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부부가 많은 현실에서 '앉아서 오줌 누기'는 당연하지 않다. 그럼 나는 왜 10년 전에 '서서 쏴'에서 '앉아 쏴'로 바꿨는가. 

아내의 잔소리 때문이 아니다. 순전히 냄새 때문이다. 나는 안방 화장실의 지린내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평소 냄새에 민감한 사람이라도 '내 것'의 냄새에는 좀 둔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내가 얼마나 자주 화장실을 청소하는지 몰랐다. 어느 날, '안방 화장실 냄새가 심하다.'라는 딸의 푸념에 화들짝 놀랐다. '그동안 내가 참았지.'라는 아내의 말이 뒤따랐다. 

당장 바꿨다. 매일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할 게 아니라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하기야 대변 볼 때와 똑같은 자세인데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기사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아주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일본의 생활용품 메이커인 라이언 사가 몇 년 전에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남자들이 하루 평균 7차례 서서 좌변기에 소변을 봤을 때 좌변기 주변에 오줌 방울이 얼마나 튀는지 조사했더니 미세한 방울까지 포함해서 무려 2300방울이나 튀었다고 한다. 

이러니 지린내가 나지 않을 수 있나. (그런데 이런 실험까지 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긴 하다) 이쯤 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하나 제기하려고 한다. '서서 쏴'는 남자의 자존심이자 특권인가. '앉아 쏴'는 부끄러운 행동인가.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생각이 바뀐다. 그건 그저 남녀의 신체적인 조건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 우월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한때 여권론자 중 극히 일부가 '여자도 서서 오줌을 누자.'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건 오히려 '서서 쏴'를 남성의 우월함으로 인정한 결과다. '앉아서 오줌 누기'는 남성의 특권을 포기한 것도 아니오, 남녀 대결에서 남성이 패배한 결과도 아니오, 여성의 우월함을 증명한 것도 아니다. 

그저 여건의 변화에 따라 적응한 것이고, 서로서로 배려하며 사는, 생활의 지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좀 덜하긴 해도 한때 '한남'과 '된장녀'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국 남자를, 한국 여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조그만 사회 문제가 생겨도 이를 '성 대결'로 몰아가려는 부류가 있다. 특정인의 특정 행동과 말을 남성 전체, 여성 전체의 행동과 말로 일반화시킨다. 
'일반화의 오류'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어느새 본질은 사라지고,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설전이 벌어진다. 

사회 갈등만 심화시키고, 해법은 전혀 없는,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남자들은 한심해'라든지 '여자들은 다 그래'라고 하지 말자.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열받게 돼 있다. 콕 집어서 '너는 왜 그래', '그 사람은 그랬어'라고 말하자.

'앉아서 오줌 누기' 역시 누가 누굴 비난하기 위한 소재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압박이나 강제력도 있을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문제다. 
나는 이것이 함께 어울려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실천할 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 경동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
전 중앙일보 체육부장.부국장, jtbc 문화스포츠부장, 중앙북스 상무.
현 출판사 LiSa 대표. 저서로 부부 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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