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감사한 이유

2022년도 저물어간다. 세밑이면 항상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닌다. 
사건도 많고, 힘든 일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매년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Dynamic Korea'라는 명성답게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왜 그렇게 크고, 다양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는지. 

올해만 해도 3년째 코로나가 우리를 괴롭히는 와중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가 이뤄져 누구는 환호했고, 누구는 좌절했다. 

해외토픽에서나 접했던 대규모 압사 사건이 서울 이태원 한복판에서 일어날 줄 누가 생각했겠는가.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극적인 승리로 16강 진출에 성공,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확실히 올해도 다사다난했다. 다사다난과 함께 따라오는 표현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이다. 기쁘고 즐거운 일뿐 아니라 화나고 슬픈 일도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기쁜 일보다는 슬프고 화나는 일이 더 많은 게 인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에게 2022년은 어땠을까. 하나하나 꼽아보면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일 년을 종합하면 무조건 감사할 뿐이다. 내가 지금 숨 쉬고, 이렇게 글을 쓰는 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매일 감사한다. 여러 해 전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깨달음이 몰려온 덕분이다. 

눈을 떴을 때는 여느 아침과 똑같았다. 순간 불현듯 '내가 지금 죽음에서 깨어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 잠을 죽음에 비유한다. 잠잘 때의 모습은 단지 숨만 쉬고 있을 뿐 주검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잠과 죽음의 가장 닮은 점은 '불가항력(不可抗力)'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나는 대응할 수 없다. 죽음의 순간이 닥쳐와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잠을 자고 그대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마 고통 없는 죽음을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잠은 '짧은 죽음'이다. 그날 깨달음 이후 나는 매일 죽음을 경험하고, 매일 '작은 부활'을 경험한다.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하루다. 어떻게 살든 감사할 뿐이다. 비록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지언정 그것 역시 내가 살아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하루하루가 괴롭고,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이라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평소에 의식하지 않고 지나갔던 것들도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공기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공기의 존재에 감사한다. 공기 덕분에 내가 살고 있으니까.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생도 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시속 1,674km다. 시속 200km로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감을 떠올려보라. 초속 60m(시속 216km)의 태풍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산다. 
공전은 더하다. 지구는 시속 10만8,000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게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걸어 다니는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이 결코 허풍이 아니다.

2022년을 우리는 살아왔다. 이제 곧 2023년을 맞이할 것이다. 
새해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뭔가 원대한 꿈이 있는가.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2023년 1월 1일부터 새마음으로 시작하려고 하는가. 
2022년 12월 16일과 2023년 1월 1일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에게는 똑같다. 

나는 매일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뭔가 대단한 일을 계획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나를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딸들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내 일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하고, 어떻게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사랑한다. 책 읽는 시간만큼 TV에서 예능 보며 깔깔대는 시간도 사랑한다. 

글 쓰는 시간만큼 소파에서 빈둥거리는 시간도 사랑한다. 차 한 잔 마시는 시간만큼 설거지하는 시간도 사랑한다. 아내와 대화하는 시간만큼 친구들과 시시덕거리는 시간도 사랑한다. 
어떤 게 의미 없는 시간일 수 있으랴.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 경동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

전 중앙일보 체육부장.부국장, jtbc 문화스포츠부장, 중앙북스 상무.

현 출판사 LiSa 대표. 저서로 부부 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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