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드컵 16강은 간절함의 결과

새벽에 느꼈던 감동의 여진이 아침까지 이어진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꿈은 이루어진다.'.

축구 경기 하나 보고 별의별 생각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그만큼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은 극적이고, 감동이었다.

공격의 중심 손흥민과 황의조는 제 컨디션이 아니고, 황희찬은 부상으로 뛰지도 못한다. 수비의 핵 김민재마저 우루과이 1차전 때의 부상으로 출전이 불투명했다. 
1무 1패에서 만난 조별 리그 마지막 상대는 호날두가 버티고 있는 우승 후보 포르투갈이었다. 

정황은 비관적이었다. 그저 끝까지 열심히 뛰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전반 5분 만에 골을 허용했을 때는 '그래도 좀 오래 버텨주기를 바랐는데 너무 일찍 먹었다'라며 좌절했다. 

그런데 구경꾼인 나는 포기했는데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서 간절함을 봤다. 
특히 손흥민은 일찌감치 포기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대회 직전 얼굴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아 경기 출전조차 의심받던 그였다. 

그러나 마스크를 쓰고 첫 경기부터 선발 출전해서 전 경기를 뛰었다. 
손흥민의 책임감과 성실함, 그리고 간절함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예전 컨디션이 아니라서 안타까울 뿐이었다.

경기 후반쯤 손흥민이 머리로 공을 처리했다. 얼굴 수술한 선수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울컥했다. TV 화면을 통해서도 그 절실함이 생생히 전해왔다. 

나중에는 거추장스러운 마스크를 벗어 손에 들고 뛰기도 했다. 
그리고 후반전 추가 시간. 우리 진영 한복판부터 손흥민의 질주가 시작됐다. 
체력이 완전 바닥 난 상태였지만 60m 이상 전속력으로 달렸다. 

어느새 포르투갈 수비가 그를 에워쌌으나 그는 볼을 빼앗기지 않았다. 
순식간에 수비 네 명에게 둘러싸인 그가 그 좁은 다리 사이로 패스했고, 황희찬의 결승 골로 이어졌다. 조금만 부정확해도, 0.01초만 늦었어도 오프사이드가 되는 상황이었다. 

손흥민의 절실함과 집중력이 끌어낸 기적이었다.
기뻐할 틈도 없었다. 곧바로 우루과이와 가나 경기를 봐야 했다. 
우루과이가 2-0으로 이기고 있었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겨도 우루과이가 세 골 차 이상 이기면 소용없었다. 

후반전에 우루과이가 페널티킥을 얻었으나 가나 골키퍼가 막았다. 
종료 직전 우루과이의 기막힌 헤더 슛도 골키퍼가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쳐냈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기고, 우루과이가 가나를 두 골 차 이내로 이겨야만 하는 기적이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하나의 조건도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무언가 인간의 힘이 아닌, 지극한 정성에 감동한 하늘의 기운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흔히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은 완벽하게 짜인 각본대로 진행된 드라마였다. 
희망(1차전 우루과이 0-0 무승부) -좌절(2차전 가나 2-3 패) -감격(3차전 포르투갈 2-1 역전승)의 순으로 잘 짜인 각본이었다. 

거기에는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섞여 있다.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포기하지 마라', '최선을 다해라' 백번 천번 말하는 것보다 오늘 경기 하나 본 게 훨씬 많은 가르침을 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 해놓고 기다리는 자세를 축구 선수들이 온몸으로 보여줬다. 
만일 우루과이가 한 골을 더 넣어서 우리의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껏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감동해서 바라던 결과까지 얻었으니 감사와 기쁨이 저절로 생기지 않겠는가. 
스포츠가 줄 수 있는 최대의 감동과 감격, 그리고 교훈을 얻은 2022년 12월 3일 새벽이다.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 경동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
전 중앙일보 체육부장.부국장, jtbc 문화스포츠부장, 중앙북스 상무.
현 출판사 LiSa 대표. 저서로 부부 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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