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도 불황 때는 투기가 된다

기분 좋은 소식이 별로 없는 요즘이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다. 
국정감사를 보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완전 블랙 코미디다. 

기업들은 도산을 걱정하고, 자영업자들도 죽을 맛이다. 오르는 건 세금, 물가, 환율이요, 떨어지는 건 소득 , 부동산, 주가다. 
예전에는 부동산이 죽을 쑤면 주가가 오르고, 주가가 폭락하면 부동산이 호황이었는데 이제는 같이 발맞춰서 떨어진다.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요즘 같아서는 부동산이나 주식, 코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승자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을 불안하게 지켜보다 이른바 '영끌'해서 집을 산 사람들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부동산 시장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대출이자는 급등하니 이중으로 고통 받는다. 
오히려 우물쭈물하다가 집 살 기회를 놓쳤던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언정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리다. 호황일 때는 뭐를 하더라도 괜찮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빚을 내서 샀더라도 이익이 남으니 칭찬받는다. 

'괜찮은 투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불황일 때는 완전히 달라진다. 
똑같은 행위도 투자가 아니라 투기가 된다. 불황일수록 '주식투자는 자기 책임 하에'라든지 '투자는 여윳돈으로'와 같은 말들이 힘을 얻는다. 
지금 같은 시기에 손해를 만회해 보겠다고 더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명백한 투기다. 더 심하게 말하면 도박과 같다.

1989년에 증권 담당 기자를 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종합주가지수가 200에서 단숨에 1000포인트를 넘었다. 증권 열풍이 불었다. 주식에 투자해서 두 배 벌었다 거나 열 배 벌었다고 자랑하던 때였다. 은행에 저금하는 사람은 팔불출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오를 줄 알았던 주가가 1,007포인트를 찍고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재산을 몽땅 주식에 넣고도 모자라 남의 돈까지 빌려서 투자했던 사람들의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투자자들은 연일 데모하고, 자살하는 증권사 직원까지 나왔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뒤 한 증권사에서 투자자 수기를 모집했다. 1등으로 뽑힌 사연이 기가 막혔다. 교사였다. 박봉임에도 알뜰살뜰 저축해서 집도 마련했다. 행복한 가정이었다. 

어느 날, 고교 동창회에 갔다가 아직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바보' 소리를 들었다. 100만 원만 투자해보라는 충고(?)를 따랐더니 신세계가 열렸다. 금방 200만 원이 됐다. 은행에 있던 돈을 모두 찾았다.

주가가 꺾이기 시작했다. '잠시 조정 중'이라는 증권사 말을 믿고 '물타기'를 했다.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겼다. 더 떨어졌다. 전세를 빼서 사글세로 옮겼다. 가정은 파탄이었고, 정신은 피폐해졌다.
이 글은 투자에 대한 가이드가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반면교사'다. 

사람이 먼저고, 가정이 먼저다. 돈 때문에 가정이 망가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욕심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때가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황 때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무리하지 말고 자중해야 한다. 일단 손해를 봤다면 기꺼이 감수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버틸 수 있다면 최대한 버텨야 한다.
이때 필요한 건 여유다. 당장 손해를 만회하겠다고 덤비면 안 된다. 인생은 길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건 위로다. 누구나 실수한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가정이든 우정이든 깨지게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건 희망이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중략)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르막길'이란 노래의 가사다. 
돈이야 또 벌면 되지.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손장환 작가 : 경동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
전 중앙일보 체육부장.부국장, jtbc 문화스포츠부장, 중앙북스 상무.
현 출판사 LiSa 대표.
저서로 부부 에세이 '느림보 토끼와 함께 살기'와 소설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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