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전 광복회장이 30일 별세했다. 향년 78세.1944년 중국 충징에서 독립운동가 김근수·전월선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김 전 회장은 대전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공화당 당직자로 정계에 입문한 김 전 회장은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창당된 민정당 당직자로 변신했으며,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의 전국구 58번 후보로 여의도 입성에 나섰으나, 당시 여당이던 민정당의 참패로 여의도 입성에는 실패했다.김 전 회장은 지난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덕구에 출마하여 현역 프
‘충청 맹주’를 넘어 ‘충청대망론’을 꿈꾸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7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1950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홍성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 전 총리는 양정고와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 제1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했으며, 이후 경찰로 자리를 옮겨 최연소 경찰서장과 최연소 경무관을 역임했다.충남지방경찰청장과 충북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한 후 치안감으로 제복을 벗은 이 전 총리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녹색 돌풍이 충청권을 싹쓸이 할 때 고향인 홍성·청양에서 신한
2022년 6.1 지방선거를 정확히 239일 앞두고 대전 유성구청장 출마 예상자로 자천타천 거론되는 인사들은 6명 정도로 알려졌다.대전 유성구는 지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JP가 창당한 자민련의 녹색 돌풍이 대전·충남을 휩쓴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민주당 송석찬 후보가 당선됐을 정도로 충청권에서 진보세가 가장 강한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실제 2000년과 2004년에 실시된 보궐선거까지 포함한 아홉 차례의 유성구청장 선거에서는 진보진영이 다섯 차례를 승리했으며, 보궐선거 두 차례를 포함하여 네 차례 승리한 보수진영 보
21대 국회 첫 미래통합당 원내사령탑으로 5선 고지에 오른 주호영(4선, 대구 수성갑) 의원이 선출됐다. 주 의원은 지난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총 84표 중 59표를 획득하면서 서울 용산에서 생환하며 4선 고지에 오른 권영세 당선인을 가볍게 따돌리고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주 의원의 압승은 권 당선인이 불과 25표를 얻는데 그친 것에 비추어 볼 때 ‘영남 자민련’으로 축소된 미래통합당의 영남 패권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이번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주 의원이 얻은 표가 59표이니 산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입지선정을 앞두고 정치적 힘의 논리가 작용할 조짐을 보이며 충청인들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지역적 뿌리를 두고 있는 호남권 국회의원 당선자 28명이 전원이 정부가 진행 중인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입지선정과 관련하여 지난 23일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호남권 구축 건의문‘을 작성 및 서명하여 청와대·국무총리·국회·더불어민주당·과학기술정통부 등에 전달하면서 자칫 정치적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
대전 서갑은 집권여당 후보의 대전 최초 내리 6선 달성에 이은 국회의장 교두보 확보냐, 제1야당 후보의 切齒腐心(절치부심)에 의한 설욕이냐로 관심을 모으는 지역이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부터 다섯 번째 맞대결을 펼치는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과 미래통합당 이영규 예비후보는 그 동안 네 차례의 대결에서 제3당 후보의 출마로 1:1 양자대결에 의한 진검승부를 펼치지 못했으나, 이번 21대 총선에서는 진보진영 vs 보수진영의 1:1 구도가 형성되면서 다섯 번째 대결 만에 진검승부가 펼쳐지게 된다.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전 최초 내리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의 모든 패턴을 바꿔놓고 있다. 1948년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전국 유·초·중·고 이후 개학 연기를 단행한 것도 모자라 3차 개학 연기까지 이어진 현재의 상황은 코로나19로 시작하여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귀결되고 있다. 이런 위중한 국가재난상황에서는 대한민국의 모든 역량을 집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자신들의 비례위성정당 투표용지 순번 올리기에만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그야말로 ‘내로남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YS는 안 됩니다6공화국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노 대통령의 가장 큰 고민은 후계자였다. 이전인 1990년 1월 22일, 여소야대의 정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JP(김종필 총재), YS(김영삼 총재), TJ(박태준 최고위원)가 3당 통합을 한 후부터 이어진 고민이었다. JP는 젖혀 두고 YS냐, TJ냐를 따졌다. 한번은 내게 의중을 물어오기에 “YS는 안 됩니다”라고 답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는 YS의 측근인 최형우 정무장관이 나를 찾아와 “이 형, 도와주세요. 대통령께 말씀 좀 잘해 주세요. 우리 집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라며 사
21대 총선을 408일 앞둔 시점에서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의 충청권 지역구를 기준으로 ‘87체제 이후 소선거구제 하에서의 역대 총선 표심을 분석하고, 충청권 정치지형이 어떠한 변화를 겪어왔는지 확인하여 21대 총선의 표심을 예측해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1988년 13대 총선 당시 아산시 갑·을 지역은 1986년 시로 승격한 온양시와 온양시를 둘러싸고 있는 아산군이 한 선거구를 이루어 1992년 14대 총선까지 선거가 치러지게 된다. 1995년 행정구역상 ‘시’에 해당하는 도시지역과 ‘군’에 해당하는 농촌지역을 통합하여 도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