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석 총리님께서 지난여름 무더위에 고생하는 쪽방 식구들을 위로하기 위해 벧엘의집을 방문했었다. 그 자리에서 쪽방상담소의 명칭 변경을 건의했는데 다행히 쪽방상담소 명칭을 변경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우선 전국쪽방상담소협의회에서 의견을 모아 복지부에 건의하는 것으로 했다.
내가 쪽방상담소 명칭 변경을 건의한 것은 우선 상담소라는 명칭과 현재 쪽방상담소의 업무와 너무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사회복지에서 위기 개입을 위해서는 먼저 상담을 통해 대상자의 상황과 욕구를 파악하는 단계를 사정 단계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상담소라고 했을 테지만 현재 쪽방상담소는 상담을 위주로 하는 기관이 아니다. 어찌 보면 종합복지관과 엇비슷하게 비주택 생활인인 쪽방생활인들에게 종합적인 케어를 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상담소라고 하기보다는 마땅한 이름은 고민해야 하지만 얼핏 종합복지센터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쪽방이라는 말도 사회복지 용어로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쪽방이라는 말은 쪽이라는 말이 명사 앞에 붙어 작다 라는 의미이기에 쪽방이라는 말은 아주 작은 방을 의미한다. 그래서 말 그대로 해석하면 아주 작은 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복지에서 쪽방은 서울과 지방이 약간 차이는 있지만 3평 미만의 작은 방, 화장실과 취사 시설이 없는 방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주거 공간은 주거 관련 법에서는 비주택, 주거로서는 적절치 않은 비주거 공간이라고 말한다. 즉 주거권은 헌법이 규정하는 기본권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주거기본법에서 규정하는 최저 주거 공간 이상의 환경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주거권이 완전하게 보장되지 못한 채, 많은 빈곤층이 비주거 공간에서 생활한다. 이들이 그런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그런 비주거 공간이 월세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쪽방이라는 곳은 비주거 공간에서도 더 열악한 주거 공간이다. 그러기에 쪽방 생활인들을 더 세심하게 돕기 위해 쪽방이라는 개념을 사용했을지라도 다른 차원에서는 다같이 주거 난민인 주거취약계층인데 쪽방주민이라고 콕 집어 말하면 낙인적 성격이 강하다. 심지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보통 사람들에서 일어나는 알코올 중독, 낭비성, 무책임성 등 부정적인 현상들을 쪽방 생활인이기에 그런 것처럼 말하며 그런 부정적인 모습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노숙인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에서 노숙인이라 하면 빈곤층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본래부터 노숙인인 것처럼 여기거나 무책임하고, 알코올 중독이고, 일하기 싫어하고, 낭비벽이 심한 사람으로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존재로 여겨 버린다.
그렇기에 2012년 노숙인 복지법이 생기기 전 소위 부랑인 보호법에 있는 부랑인의 정의를 보면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무의탁한 사람 또는 연고자가 있어도 가정 보호를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거리를 방황하면서도 시민들에게 위해와 혐오감을 주는 등 건전한 사회 질서의 유지를 곤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결함으로 정상적인 사고와 활동 능력이 결여된 정신착란자, 알코올 중독자, 걸인, 앵벌이, 18세 미만의 불구 폐지자 등”으로 건전한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사회 부적응자로, 격리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런 이유로 쪽방을 포함한 모든 노숙인들을 비주거 생활인 등 주거기본법에서 말하는 주거권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복지부가 노숙인에 대한 정의를 보수적으로 적용하다보니 국가의 정책 대상에서도 현저하게 차이가 났었다. 현재 복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노숙인의 규모는 쪽방생활인을 포함하여 12,000여명 정도이다. 그러나 국토부가 파악하는 주거로서 적절치 않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40여만명(통계마다 차이는 있지만)이나 된다. 여기에서 노숙인 복지법에서 말하는 주거로서 현저히 적절치 않은 공간의 차이이다. 형용사 현저히가 어디까지 말하는 것일까?
비주거 생활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상향을 통해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주거 상향만을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국가가 비주거 생활인들에게 주거 상향을 위해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보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자리, 의료, 사회서비스 등 복지적 지원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거 상향과 함께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함으로 노숙인들, 더 나아가 비주거 생활인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샬롬.
- 벧엘의집(울안공동체, 쪽방상담소, 희망진료센터) 담당목사 원용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