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벧엘의집 프로그램 중에 매년 계속할지를 고민하다가 올해는 뭔가 달라지겠지 기대를 하면서 계속 이어가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벧엘농장과 보석같은 남자들이다. 벧엘농장은 울안공동체 식구들의 자활프로그램으로 햇수를 헤아리는 것조차 무의미한 아주 오래된 프로그램이다. 당장은 어떤 결과물이 없더라도 벧엘이 꿈꾸는 공동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기에 농사짓는 법을 배워 벧엘의집이 언젠가 생활공동체를 만들 때 자체적으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프로그램으로 농업자활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소규모 농사로는 자립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많은 지자체에서도 농업 생산물을 2차 가공하거나 체험프로그램을 접목시켜 농업자활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한때 충남도의 경우는 삼농정책이라고 하여 1차 산업인 농산물 생산, 2차 산업인 농산물 가공, 3차 산업인 체험프로그램을 하나로 묶어 6차 산업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안다.
마찬가지로 보석같은 남자들도 출발은 우리 사회에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당극이라는 장르로, 전문 배우들이 아닌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직접 공연하여 관객과 소통하며 관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중한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배우들의 연기력이 향상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야 하는데, 매년 배우가 바뀌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니 늘 제자리걸음이다.
상황이 이러니 기관장의 고집으로 매년 프로그램은 진행되지만, 그 일을 담당하는 일꾼도, 함께 참여하는 참여자도 억지로 참여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가운데 벧엘농장은 끝내 참여자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모두 떠나버렸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일꾼들이 참여자가 되어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지경이다. 보석같은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고집스럽게 올해 보석같은 남자들의 2025년 개강식을 가졌다.
예전하고는 다르게 단원들과 강사진과 담당 일꾼만 참여한 아주 조촐한 개강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번 보석같은 남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아름다운 마당극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올해도 모두가 보석이 되는 꿈을 꾸어 보자고 했다. 강사진과 일꾼들도 그런 기대와 꿈을 함께 나누었다. 그다음으로 단원들의 각오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단원은 평생 자신이 연기자가 되어 사람들 앞에 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벧엘을 통해 연기자가 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올해도 열심히 해 보겠다는 다짐도 말한다.
2012년 보석같은 남자들이 창단되고 첫 공연을 본 후 소감을 벧엘이야기로 썼었다. “… 장단은 엇박이 나고, 춤사위는 뻣뻣했지만 사회에서 밀려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세상 눈치를 보며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이 비록 어설프지만 흥겨운 풍물장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중에도 꽹과리를 잡은 ○○○아저씨는 인사를 해도 웃고, 뭐라 나무래도 웃고, 무엇을 물어봐도 웃는 그저 미소만 짓는 침묵의 사나이였다. 그런 그가 연습할 때까지만 해도 북을 잡았었는데 지금은 상쇠를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장단을 너무 못 맞춰 선생님이 꽹과리를 치도록 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자신이 꽹과리를 치고 싶다고 해서 상쇠가 되었다는 말에는 적잖게 놀라기도 했다. 그의 모든 장단은 이채도 아니고, 삼채도 아니고, 굿거리장단도 아니었다. 오직 쾡, 쾡, 쾡, 치는 소위 일체라고나 할까? 그럼에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한 것이다. 또 오 0 0 아저씨는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에 있는 내게 오더니 감격하여 밑바닥으로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신에게 이런 무대까지 서게 만들어 주었다며 흥분된 어조로 말씀하신다.
장단에 엇박이 나면 어떠랴, 춤사위가 좀 뻣뻣하면 어떠랴, 이들에게는 이 공연이 세상을 향해 맘껏 내질러 본 자신감인 것을..... 지금까지 그들은 누구에게 큰소리 한 번 내보지 못했다. 그저 만만한게 홍어의 뭐라고 벧엘의집에서만 내가 예전에 어땠는데 하면서 확실하지도 않은 자신의 과거를 떠벌이는 것이 전부였었다. 그런 그들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가슴을 연 것이다. 삶의 응어리를 털어내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빛을 뿜어낸 것이다. …”(첫 공연을 마치고 썼던 벧엘이야기의 일부)
그리고 10년 정도 세월이 흘러갈 즈음 보석같은 남자들의 공연을 보고 난 후 “… 보석같은 남자들은 존재 자체로 벧엘의 꿈을 이루어 가는 것이고, 지도하는 선생님과 단원들의 애씀과 어우러짐은 곧 함께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바로미터인 것이다. 욕심내지 말자,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하자. 그리고 그 결과에 만족하자. 보석같은 남자들이여! 당신들은 존재 자체로 우리의 꿈을 이루어 가는 바로미터랍니다. 함께 꿈을 향해 비상해 봅시다.”라고 했다.
단원들이 하나같이 열심히 해 보겠다고 다짐하니 올해도 한번 달려가 보자. 결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모든 단원들이 보석으로 다듬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자.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란 말처럼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시 여기자. 함께 연습하면서 자신의 삶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사람답게 사는 길이 어떤 길인지 고민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운다면 그것 자체로도 보석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비록 기대한만큼 실력은 늘지 않고, 매년 단원이 바뀌어도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의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자.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