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입춘대길 건승건필」(한지에 수묵캘리: 60✕8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입춘대길 건승건필」(한지에 수묵캘리: 60✕80cm)

태양력 24절기의 첫 번째인 입춘이 오는 일요일, 2월 4일입니다. 새해 마중하러 전국의 산과 해변 그 해돋이 명소로 들꾄 것이 어제 같은데 훌쩍 1달이 흘러갔습니다. 어찌 보면 지난 한 달은 본격적인 경기를 앞둔 선수가 몸을 푼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새봄에 기쁜 일들 많이 생겨나고, 더욱 건강해 작가로서 좋은 글 쓰기를 다짐해 봅니다.

‘입춘대길’은 ‘건양다경建陽多慶’과 함께 오랜 입춘첩帖·방榜의 문구로 주련처럼 출입문이나 기둥에 붙여졌습니다. 그 ‘설 입立’의 갑골문은 사람이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선 형상인데 ‘큰 대大’ 역시 같은 모습입니다. 만물 중에 가장 크고 굳게 서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봄 춘春’은 따스한 햇살에 온갖 풀이 자라는 모양입니다. ‘길할 길吉’은 신이나 추앙받는 인물의 이름을 적은 위폐를 그린 것으로 그들의 신성한 가호가 깃들길 염원한다는 바람이겠지요.  

갑골문은 동양 최고最高의 문자로 은·상나라의 무당과 사당들이 점을 본 뒤 ‘거북의 등이나 짐승의 뼈’에 점괘를 새긴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00-6,000년 전의 그들을 인류 문명사 최초의 문자학자나 서예가라고 불러도 무방하겠지요. 천진하고 질박한 서체는 고래로 서예가와 전각가에게 영감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의미 또한 매우 웅숭깊기 그지없습니다.

갑골문은 후대 상과 주나라의 종정문과 육국고문으로 발전하였고 진나라 소전에 이르러 기본적인 정형을 갖추었습니다. 이것이 예서, 해서, 행서, 초서의 변체를 거치면서 오늘의 ‘한자’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은 일찍이 그런 문자를 통치의 문서나 역사적 기록에 사용했지만 ‘순우리말’은 달랐던 것입니다. 때문에 토박이말을 잘 새겨보면 그 뜻이 분명해지기도 합니다. 하늘은 늘 하나여서 하늘이고, 오늘은 늘 오는 날들이라 오늘이듯 말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입춘대길 건승건필」(한지에 수묵캘리: 60✕8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입춘대길 건승건필」(한지에 수묵캘리: 60✕80cm) 부분

24✕15=360 맞습니다. 한 철에 6개씩, 열닷새마다 갈마드는 24절기가 1년인데 스스로 돌면서 밤낮을 만드는 지구가 태양을 크게 한 바퀴 선회하는 그 셈법입니다. 땅 딛으며 하늘 이고 살아내는 사람들을 표상한 원방각에 그 알짬이 담겼습니다. 서양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1788-1860)는 “하루는 작은 일생”이라고 정언했습니다.

해와 달의 하루가 사람의 출생과 죽음에 적확하게 비견되어 되새길수록 무릎을 치게 됩니다. 그보다 조금 뒤진 연대의 프리드리히 빌레흠 니체(1844-1900) 역시 쇼펜하우어처럼 동양의 음양과 오행 철학에 밝았는데 인도의 한 비문을 소개했습니다.

아직도 빛을 발하지 못한 수많은 아침놀들이 있다.

그 누구나 한순간 마음과 생각을 고치고 다잡는다면 길고 긴 인생에서 결코 늦은 시기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일찍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가장 어렵지만 가장 큰 기쁨”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열자列子』제1편 천서) 이제 곧 새롭게 소생하는 만물을 보는 ‘새봄’이 펼쳐집니다.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이 사람 한살이, 한뉘, 한평생의 본령일 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롭다면 1년 내내 새롭게 태어나는 나달일 것입니다.

강대국의 대통령선거와 분쟁의 국지전 탓에 국제정세가 살천스럽고, 국내경제가 어렵다는 한숨 소리가 연일 들립니다. 하지만 저마다 새로운 각오로 하루를 살아낸다면 그런 날들이 쌓여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없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희망과 소망의 아침놀 그 조각, 편린들을 간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디 올봄에 즐겁고 행복한 경사 많이 벌어지시고, 더욱 강건한 가운데 활기차게 생업 이어가시길 발원합니다. 거듭 재삼재사 ‘입춘대길 건승건필’하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으며 영동작가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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