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새해 복들 많이 받으셨는지요? 다복과 대복 죄다 챙기시고 부디 행복과 지복의 새날 이어가시길 재삼재사 발원합니다. 사실 천복 중에 으뜸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그 자체라고 합니다. 기원전 4세기의 『열자列子』제1편 천서天瑞에 나오는 공자와 태산에 숨어 사는 은자의 문답도 그렇습니다.  

사슴 갖옷을 입고 새끼로 띠를 두르고서, 금을 타면서 노래하는 영계기榮啟期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무엇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지요... 두 번째는 여자보다 존귀하다고 여기는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고, 마지막은 강보에 쌓인 채 죽은 이들도 많은데 내 나이 90줄이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소!”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원방각圜方角」(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원방각圜方角」(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문자를 쓰기 이전의 고대인들은 하늘과 땅, 사람을 ‘원방각’으로 표현했습니다. 늘 하나인 하늘은 둥근 원이고, 땅은 네모난 모양인데 그 안에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 기호는 세상을 구성하는 삼재三才의 ‘천지인’과 시간과 공간에 인간을 더한 ‘삼간三間’을 표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인간’입니다.

기원전 5세기 서양의 철학자 플라톤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만인이 아닌 그리스인, 노예가 아닌 자유인 신분,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 그중에서도 소크라테스 시대에 살게 된 것을 신께 감사드린다!” 그는 28살 되던 해 스승이 독배를 마시고 영면하자 이집트와 시칠리아, 이탈리아 등지를 다니며 인간과 그들이 경배하는 신전을 돌아보았습니다. 그후 기원전 387년 40세에 고국으로 돌아와 『대화』를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지으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마침내 인류 정신사의 비조가 되었습니다.  

(신이 최초로 도형과 수로써 형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으니...)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올 수 없다. - 플라톤이 세운 학교,「아카데미아」의 교훈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원방각圜方角」(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작가의 글자그림「원방각圜方角」(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서양과 동양 그 고대인의 우주관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서양은 물질적 구성의 원인, 근원, 원리 즉 아르케arche를 찾는 것이라면 동양은 우주 전체를 ‘1, 하나’로 보고 그 운행을 살핀 것입니다. 24✕15=360 이 셈법을 단박에 이해하신다면 동양적 세계관에 눈이 밝은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한 철에 6개씩 열닷새마다 갈마드는 절기의 순환이 한 해, 1년이라는 등식입니다.

옛날에 얻은 하나-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편안하며, 정신은 하나를 얻어서 신령스럽고, 계곡은 하나를 얻어서 채우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낳고, 후왕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의 곧음이 되니 하나로 그 모든 것을 이루었다. -노자 『도덕경』제39장

훗날 장자는 그 하나가 나온 무의 ‘유생어무有生於無’를 다음과 같이 석명했습니다. “천지의 유구함이 나와 함께 살아 있고, 만물의 다양함도 나와 함께 하나가 된다!”(『장자』제2편 제물론) 그렇습니다. 형체를 갖춘 모두가 없음의 그 무에서 나왔으니 원형이 다를 수가 없는 것이겠죠. 그런 이법을 장자의 절친 혜시는 편언절옥 정언합니다. “만물을 사랑해라. 온 천지가 하나다!“(같은 책 제33편 천하)  

순우리말 새김의 선구자 다석 유영모(1890-1981)선생은 사람은 누구나 ‘이’라고 언명하셨습니다. 바로 있음과 없음의 그 ‘유무’적인 존재로 이이, 그이, 저이라 부르는 까닭입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그렇습니다. 유형의 ‘나와 너’는 무형의 ‘우리’ 곧 한 울타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줄임말이 ‘한’인데 한민족, 한겨레가 뜻하는 바, 커다란 울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올해 봄철의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념적 당파에 갇혀 첨예하게 편이 갈라진 가운데 지역과 세대가 대립, 반목하는 양상입니다. 과연 4월 10일 선거가 끝난다고 이런 갈등이 사라질까요? 제20대 대통령선거 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진이 그치지 않듯이 난제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여럿, 여럿의 하나’인 더 큰 무無에서 온 유有인 ‘사람’을 우선해 생각한다면 얼마간 완화, 해소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차이가 아닌 다름을 한 울타리 안에서 인정하는 대동의 새해 1월-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화해와 소통, 통합의 그 하나됨을 생각하는 1월이길 기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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