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천朴堤千(1945.3.23.-2023.6.10.) 시인이 지난주 10일 별세하셨습니다. 박 시인은 동국대 국문과에서 수학했으며 1966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데뷔, 1975년부터 잇달아 『장자시집』 3권을 펴내셨습니다. 그 후 『심법心法』, 『너의 이름 나의 시』, 『나무 사리』 외 총 17권의 시집을 발간하셨습니다. 특히 「장자시」, 「노장시편」 등을 통해 도가道家 노장老壯 사상의 진수를 현대시에 변용시켜 문단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일련의 시작으로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윤동주문학상, 월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시인 박제천의 질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시인 박제천의 질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장자莊子』는 전 33편인데 박제천 시인의 연작시 「장자시」역시 33편입니다. 그 중 제1시집의 ‘14’는 『장자』제3편 양생주의 마지막 구와 연관이 깊은데 13자로 원문이 이렇습니다. “지궁어위신指窮於爲薪 화전야火傳也 부지기진야不知其盡也: 손가락이 장작 지피는 일을 다하면 불은 계속 타고 꺼질 줄 모른다!” 이 경구는 예로부터 가장 난해한 구절로 알려져 주석자마다 해석이 다소 다릅니다.

장자는 자신의 글쓰기 요체가 ‘삼언’이라고 밝혔는데(제27편 우언) 중언과 치언, 우언입니다. 중언重言은 선인들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고, 우언寓言은 다른 사물을 빌려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언卮言은 얼토당토않아 사리가 맞지 않을 성싶지만 곱씹어 볼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글귀를 말합니다. 바로 『장자莊子』제2편 제물론의 그 유명한 ‘호접몽胡蝶夢’ 같은 내용입니다.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을까?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일까?”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시인 박제천의 질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시인 박제천의 질주」(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물은 파도가 없을 때 ‘거울’이 되고, 불은 정지하듯 고요할 때 가장 빛나는 법입니다. 불이문不二門- 삶과 죽음의 생사일여 그 게슈탈트인 침실에서 마주하는 또 다른 자신. 저 윤동주 시인이 노래한 바로 그곳입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또 다른 고향」제 1연) 그런 방에서 장작을 지피듯 홀로 불을 밝히고 노래하며 질주하는 일이 바로 시를 쓰는 행위일 터. 그런 시편들이 활활 타올라 이제 박제천 시인은 무궁, 무한의 시인이 되셨습니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피상적인 분별과 차이는 있어도 절대적인 변화는 없어서 장주가 나비도, 나비가 장주도 됩니다. 박 시인의 끝이 없는 질주가 바로 그것입니다. 꺼질 줄 모르는 불빛이 언제나 시인의 그림자 곧 시편들을 일렁이게 합니다. 사람들 곁에서.  

재삼재사 故 방산재 박제천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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