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유용지용有用之用 무용지용無用之用」(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유용지용有用之用 무용지용無用之用」(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이제 나무가 쓰러진다. 쓰러지면서 언덕 비탈에 바람을 보내고는 계곡에 있는 자신의 잠자리,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그곳에 눕는다. 전사처럼 녹색 망토로 몸을 감싸면서 깃털처럼 부드럽게 눕는다. 서 있는 것이 이제 싫증난다는 듯 자신의 구성 분자들을 흙으로 돌려보내며 말 없는 기쁨으로 지구를 감싸 안는다. ... 왜 마을의 종은 조종弔鐘을 울리지 않는가? - 헨리 데이빗 소로우 Thoreau(1817-1862) 에세이「한 소나무의 죽음」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有用之用 無用之用」(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有用之用 無用之用」(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부분

민주지산과 황악산, 백화산 그 금강정맥의 중산간 충북 영동- 해마다 겨울철이면 제가 기거하는 산중에서 기계톱 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잡목들 울창한 여름보다 벌목이 수월하지만 무엇보다 나무들의 물기운이 뿌리로 모여 톱질이 쉽다고 합니다. 옛적 학생들 까까머리에 버짐 피듯이 작업이 끝나면 포크레인이 산자락으로 내리고, 대형트럭이 싣고 운반합니다. 그런데 야적한 그 목재들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소로우의 ‘죽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저마다의 동그란 나이테 때문입니다.        

삼라만상 중에 식물인 ‘나무’만큼 자신의 삶을 오롯이 남기는 ‘동물’이 있을까요? 산비탈에서 어금버금 자라지만 남향은 넓게 북쪽은 촘촘하게, 춘재와 추재가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진 동심원들- 가지나 옹이 부분은 진하게 뭉쳐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데 나이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꼭 슬프고 괴로운 남모르는 일들 가슴속에 간직한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시인이자 철학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식물학자 자크 타상은 이렇게 풀어냅니다.    

매우 특이한 동물인 인간은 나무와의 비교를 통해 어느 것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세상 한가운데서 느끼는 거대한 고독을 마주할 수 있다. 나무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형태의 생명을 인정하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나무들은 우리의 모습처럼 원하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 나무는 항상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편견 없이 지속적으로 화합하고 언제까지나 미완성인 채 성장한다. 우리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훌륭하고 살아 있는 형상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나무처럼 생각하기』마치며「다시 나무를 생각할 때」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有用之用 無用之用」(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有用之用 無用之用」(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부분

삼십복공일곡三十輻共一轂 당기무當其無 유거지용有車之用- 노자『도덕경』제11장에 보이는 경구입니다. “서른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는데 그 빈 구멍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수레가 굴러간다!” 이어지는 ‘그릇’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기물 안의 공간이 있어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장주는 이 비유를 편언절옥해 다음과 같이 정언합니다.

가시나무여, 가시여. 내 가는 길을 막지 말라. 내가 가는 길은 위험을 피해 구불구불, 내 발에 상처를 내지 마라. 산의 나무는 사람에게 쓸모가 있어 스스로 자기를 베게 만들고, 등불은 스스로 제 몸을 태운다. 계수나무는 계피를 먹을 수 있어서 베어지고, 옻나무는 옻칠에 쓸모가 있어 쪼개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는 알아도 진정 쓸모 없는 것의 그 쓸모는 모른다네. -『장자』내편 제4 인간세

사실 도가학파 입장에서 공자 유교의 도덕적 ‘잣대’를 비판하기 위해 비유한 표현이지만 참 아름다운 문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장자』전 33편에는 숱한 ‘나무’ 일화가 나옵니다. 외편 제20 산목山木에 장주가 거목을 보고 직접 소회를 밝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산 속의 그 나무는 쓸모가 없어 천수를 다한다 말씀하셨는데 스승님의 입장은 어느 편이십니까?” 제자의 단도직입 물음에 장자는 웃으면서 답합니다. “나는 쓸모 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머물고 싶지만 참된 도가 아닌 유위有爲인 이상 그 행위에서 화를 면할 수는 없겠지...” 진정 인간적인 고뇌가 엿보이는 고백입니다.

올해 6월부터 나이 셈법이 생일에 1살씩 느는 식으로 통일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태어나면서부터 한 살이거나 출생연도를 빼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생일에 1살이 더해지는 계산입니다.

나이- 순우리말인 이 낱말에는 짜장 웅숭깊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토박이말 풀이에 눈 밝은 다석 유영모(1890-1981)선생은 일찍이 “사람은 모두 이2다. 있다가 없어지는 유와 무, 그 이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라고 언술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이와 저이, 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용과 무용- 내세울 만한 성과나 업적 그 유용은 준비하고 기다린 무용의 날들이 함께 빚어낸 시간의 결과물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좌표’를 발견하고 제시한 이가 바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1596-1650)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아포리즘의『방법서설』- 그 3개의 부록 중 한 편에서 좌표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평면상의 한 점을 설명하기 위해 직각의 X, Y축을 그리고, 각각의 거리를 나타내는 수의 쌍으로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김민형『수학이 필요한 순간』2강 역사를 바꾼 3가지 수학적 발견) 묶어 보면 이제 시간과 공간 그 ‘XY’ 상에서 한 해, 1살의 나이테가 새겨지는 시기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 20일이 24절기의 마지막 대한인데 설 명절 연휴 전날입니다. 부디 피붙이와 살가운 정 나누시고, 고향의 산하에서 새뜻한 정기 한껏 받으시길 비손합니다. 지난해 비록 마음 먹고 품은 뜻 그 무엇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무용한 날들이 있어 기쁘고 행복한 유용한 날들이 도드라지니 말입니다. 검은 토끼의 계묘년 새해- 더욱 건승, 건필하시길 발원합니다.      

 

김래호 제공
김래호 제공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 입선(2020년), 제28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년) 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를 펴냈고, 현재 고향에서 사람책도서관 어중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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