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영광을 찾는 자, 사유의 음유시인, 여행자여! 인생은 하나의 여행이며, 여성의 자궁에서 나와 대지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는 자는 모두 여행자이다. 인류여, 너야말로 영원한 여행자이다. - 벵자맹 가스티노《철도생활》

봄은 남녘의 낮은 땅부터 오르고, 가을은 북방의 산부터 내려오는 법. 제주 유채꽃과 남녘의 산수유, 매화가 한창인 봄이다. 곧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과 벚나무 따위들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이파리보다 앞서는 봄꽃- 겨우내 삭풍과 혹한을 이겨낸 노고의 대가인 그것은 바로 승전의 환호성이다. 사람들은 지극히 성스럽고, 아름다운 기쁨의 소리 가득한 들과 산으로 들꾀며 화답한다.  

인간에게는 식물에게 없는 독특한 능력, 지적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있다. 바로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이다. 그러니 다음에 공원을 산책할 때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풀밭의 민들레는 무엇을 볼까? 잔디는 무슨 냄새를 맡을까? 나무가 기억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떡갈나무 잎을 만져보자. 떡갈나무가 당신이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특별한 나무를 기억하고 나무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 대니얼 샤모비츠《은밀하고 위대한 식물의 감각법》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인 샤모비츠는 2012년《식물은 알고 있다》를 출판해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는 2017년 개정증보판에서 초판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면서 ‘제3장 식물은 맛을 본다‘를 추가했다. 이로써 식물이 ’오감‘은 물론 ’위치‘와 ’기억‘을 갖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고 7장에 걸쳐 설파했다.     

사람의 다섯 가지의 감각- 보거나 듣고, 냄새를 맡고 맛을 보며, 감촉하는 능력이다. 이런 동물적 감각에 인간 본연의 평형감각, 사고력까지 지녔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론 그는 ‘들어가며’에서 “각 장마다 한 가지 감각을 정해 인간과 식물을 비교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나로서는 최근 식물학적 연구 성과의 소개가 다소 지루하지만 ‘비교’ 자체로도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식물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는 ‘유동성’에 있다. 동물은 다리와 날개, 지느러미 등 각종 기관으로 옮겨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식물은 한번 뿌리를 내리면 붙박이로 살아가야만 한다. 그들은 빛을 좇아 가지와 잎을 내고, 쫓아내며 뿌리를 뻗어간다. 곧 굴광성과 역굴광성이 식물들의 존재양식이다. 그런데 영장류인 인간은 ‘힘과 행위’의 임의성을 갖고 있어 머물 수도, 이동할 수도 있다. 동물들 역시 그런 유사성을 보여 오랜 철학적 사유의 논란이 되어왔다.                

인간은 자신에게 신과 같은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며, 다른 피조물과 인간을 분리하여 야만적인 속성은 동료이자 동반자인 동물들에게 돌리고 인간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능력은 인간에게 속한 것으로 돌린다. 인간이 자신의 지능을 총동원 하더라도 동물들의 비밀과 내면적인 움직임을 어떻게 알겠는가? 어떤 근거로 어리석음이 동물에게만 속하는 속성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 미셸 에켐 드 몽테뉴《에세》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이 ‘동물혼’에 따라 움직이며, 그 혼은 인간과 짐승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저 창조주가 부여한 나름의 내재적 질서에 충실히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동물의 활동이 단순한 기계적인 작동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과거와 미래를 살피는 이성과 자기 인식능력을 드러내는 언어가 없는 단순한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몽테뉴는 동물들에게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뿐이며, 아울러 인간은 거대한 피조물 집단으로 되돌아가 다른 것들과 합류하여 서로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Que sais-je?’ 이 명제 속에 ‘다름과 차이’를 파고든《에세》의 철학자다운 정언이다.   

다시 남쪽으로 물길로 700리를 가면 맹자산이라는 곳인데 나무로는 가래나무, 오동나무, 복숭아, 오얏나무가, 풀로는 균포가 많이 자라며 짐승으로는 고라니와 사슴이 많이 산다. 이 산은 둘레가 100리 이다. 산 위에서는 물이 흘러나와 이름을 벽양수라고 하는데 그 속에 두렁허리가 많이 산다. - 중국《산해경山海經》‘동산경’ 제6     

현존하는 18권의《산해경》은 본문만 30,825자로 크게 ‘산경’과 ‘해경’으로 나뉘어진다. 중국 고대의 대표적인 신화.지리서인 이 책은《시경》과 더불어 언제, 누가 편찬했는지 알 수 없는데 기괴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다. 오늘날의 컴퓨터 게임이나 환타지에 등장하는 그런 미지의 세계- 이동 수단이나 공유 매체가 불비한 시대에 상상력으로 지구를 누빈 고대인들의 원행이 구전되었다가 기록된 것이다. 

단원산에 사는 유는 너구리 같이 생겼는데 갈기가 있고, 암수가 한 몸으로 이를 먹으면 질투하지 않게 된다. 녹대산의 어떤 새는 수탉의 몸에 사람 얼굴인데 울면 전쟁이 나게 된다. 여증산의 박어는 외눈이고 구토하는 소리를 내는데 이것이 나타나면 천하에 기근이 든다. 효양국에 사는 사람들은 몸에 털이 나 있으며 발뒤꿈치가 반대로 향했는데 서로 만나면 웃으며 왼손에 대통을 쥐고 있다. 난새가 있어 절로 노래 부르고 절로 춤을 춘다. ......             

동진의 문인인 곽박은 “이 서책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모두들 괴이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물은 그 자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나의 생각을 거쳐서야 이상해지는 것이기에, 이상함은 나에게 있는 것이지 사물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라고 주석했다. 도연명은 ‘산해경을 읽고’ 라는 연작시 13수를 지었는데 ‘잠깐 사이에 우주를 다 불러보니 / 즐겁지 않고 또 어떻겠는가’ 그 예찬이다. 노장과 도가사상에 심취했던 독일 실존주의 계열의 문인들도 분명히 읽어보았으리라.     

우리는 모두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같은 신분의 존재이며 모두가 같은 심연에서 기어 나왔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실험이며, 심연에서 던져진 것인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 인간은 서로가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각자가 지니는 고유의 뜻을 아는 것은 본인뿐인 것이다. - 헤세《데미안》

봄철의 여행은 갓밝이의 산책과 많이 닮았다. 칠흑 속에 잠자던 만물은 태양의 아침놀에 서서히 깨어난다. 이윽고 해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들의 일상은 시작된다. 하루는 작은 일생! 이 아포리즘을 수긍한다면 1년은 좀 더 큰 한뉘다. 나날이 쌓여 한 달이, 매달이 모여 사철이 순환한다. 덧붙이자면 해넘이의 산보는 가을여행이다. 무엇인가 할 일을 꾸미며 희망을 품기 보다는 한 일을 곱씹으며 반성과 회한에 젖는 것이다.   

하루든 한 해든 ‘여행’은 결코 완결되지 않고 무수한 여정들로 연결되어 나간다. 이제 한 철 6개씩, 보름마다 드는 24절기의 첫 소풍이 시작되었다. 겨우내 단절과 구획의 울타리에 갇혔던 그 아성을 허물고 무시무종 광대무변의 세계로 떠날 때다. 영원한 동반자인 식물과 동물들도 소생한다. 여행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 그 여로의 발길과 손길, 눈길이 새뜻한 꿈길로 안내하리라. 유한자인 사람이 무한으로 가는 바로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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