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김래호 작가 / 뉴스티앤티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 광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돌은 뜨거웠다. 그 동네의 모든 사람이 죽었다. 뭐 그런거지. - 커트 보니것《제5도살장》

1945년 2월 13일- 그날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1922-2007)은 독일군 포로로 드레스덴의 외곽 제5도살장 지하에 있었는데 영국과 미국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해, 13만 5천여 명이 죽었고, 제2차 세계대전은 종전으로 치달았다.

보니것은 1967년 드레스덴을 방문했고, 2년 뒤 ‘그날’을 폭로하는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반전소설의 백미로, 자연스럽게 당시 미국이 개입한 베트남전쟁(1960-1975)을 반대를 상징하는 소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전적 소설의 주인공 빌리의 검안소 병원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있다고 한다.

하느님, 저에게 /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 바꿀 수 있는 용기와 / 언제나 그 차이를 / 분별할 수 있는 / 지혜를 주소서

《증오의 세기》- 니얼 퍼거슨은 그의 저서에서 진보의 시대 20세기는 동시에 살육과 증오의 시대로 약 1억 6천 내지 8천여 명이 전쟁 통에 죽었다고 적시했다. 1904년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여러 나라의 내전 등 100년 내내 피로 물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결코 ‘바꿀 수 없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一九五十年七月 이후에 헬리콥터는 / 이 나라의 비좁은 산맥우에 자태를 보이었고 / 이것이 처음 탄생한 것은 물론 그 이전이지 / 만 그래도 제트기나 카아고보다는 늦게 나왔 / 다 그렇지만 린드버어그가 헬리콥터를 타고서 / 대서양을 횡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 우리는 지금 동양의 풍자를 그의 기체 / 안에 느끼고야 만다 /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 설운 모양을 / 우리는 좁은 뜰안에서뿐만 아니라 / 심지어는 항아리 속에서부터라도 내어다볼 / 수 있고 / 이러한 우리의 순수한 치정을 /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것을 짐 / 작하기 때문에 /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 自由자유 / -悲哀비애 - 김수영 시「헬리콥터」제 2. 3연

시간과 공간-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아가듯 ‘위도와 경도’는 인간의 소여 그 자체이다. 사람만이 붙박이 식물성과 가동의 동물성을 갖춘 ‘양성구유’인 것이다. ‘동양의 풍자’는 이처럼 자유롭지만 인간답게 살아내기 어려운 ‘설운 동물’의 역설을 말하는 시구이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우주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갈림길이다.

실제로 있으면서도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 상하 사방의 공간 우宇다. 한없이 길면서도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 무궁한 시간 주宙다. 삶과 죽음이 있고 나가고 들어옴이 있다. 들어오고 나가지만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을 바로 천문天門이라고 한다. 천문이란 무無 자체이며 만물은 이 무에서 생겨난다. -《장자》「경상초」제12

순수한 치정-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그 처음과 끝을 알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새의 날개나 물고기의 지느러미에 대한 집착은 치정 남녀의 사랑 이상이었다. 바퀴나 태엽, 프로펠러는 곧 치정의 산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 장자는 “끝이 있는 삶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면 위태로울 뿐이다.” 라며 그 천문 찾기를 질타했다. 천방天放- 그냥 그저 하늘이 잠시 베푼 자유를 즐기다가 다시 들려 올라가는 이야기다. 전쟁은 그 순수한 천방마저 시샘하는 헤살꾼이다.

‘우매한 나라의 시인’들은 1950년 7월 전쟁터에 나타난 헬리콥터를 처음 보고서야 천문의 길을 다시 파악했다. 좁은 뜰이나 거닐고, 항아리 속에 갇힌 듯 세상 물정 모르던 백면서생들이 문득 한 자락 깨친 것이다. 그 헬리콥터는 장자가 말한 ‘붕鵬’이었는지도 모른다. 북해의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붕이라는 새가 되었는데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는 3천 리 파도를, 하늘로는 만 리를 오른다는 그것 말이다.

「헬리콥터」는 김수영이 1955년 발표한 시인데 한국전쟁은 시인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50년 8월 30일 공산군에 징집되었고, 1953년 휴전과 함께 거제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고, 1955년에야 수원으로 피난갔던 가족과 합류 서울 성북동에 정착한다. 훗날 1957년 합동시집《평화에의 증언》과 이듬해 단독시집《달나라의 장난》을 발간하고, 1968년 6월 16일 47세로 절명한다.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 / 에 놓여 있는 이 밤에 / 나는 한사코 /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될 터 / 인데 / 팽이는 나를 비웃듯이 돌고 있다 /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 팽이는 지금 수천년의 성인과 같이 / 내 앞에서 운다 – 김수영 시「달나라의 장난」부분

팽이- 팽이는 결코 헬리콥터처럼 지상을 뜰 수가 없다. 지금, 여기 부닥치는 현실을 온몸으로 싸안고 돌 뿐 쓰러지거나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일상을 벗어난 자유는 진정 쟁취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팽이처럼 휘둘리는 삶에서 도대체 가장 높은 가치나 미덕은 무엇인가? 시인은「나의 가족」마지막 연에서 이렇게 되묻는다.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집안의 /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 이것이 사랑이냐 /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혈지루저血之流杵- 맹자는《서경》「무성」편의 이 기록을 믿지 않았다. 주나라 문왕이 은나라 주왕을 치면서 벌어진 일인데 숱한 군사들이 죽어서 ‘방패가 절구공이처럼 피에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는 것이다. 덕을 닦지 못하여 민심을 잃은 군주는 이미 왕이 아니며, 온 천하 백성이 반겨 전혀 반항하지 않는 것이 온당한데 그런 일이 벌어졌을 리가 없다는 논리이다.

연목구어- 도덕정치를 추구한 맹자는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다가 얻지 못하면 물고기를 얻지 못하는 것에서 그치지만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리지 못해 복종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은 나라를 잃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라고 설파했다.(《맹자》「양혜왕상구」)

시장은 축제와 같이 찬란한 빛이 출렁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기쁜 음악이 되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동화의 나라로 데리고 가는 페르시아의 시장- 그곳이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 어느 곳, 어느 때, 시장이면 다 그런 음악은 있다. - 박경리(1926-2008) 장편소설《시장과 전장》: 1964년 발표

천하언재天何言哉- 매양 말이 없는 하늘이지만 유월의 그것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누가 전장을 보았다 하는가? 사는 게 전장 같다고 말하지 말라! 시장 같다고 외쳐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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