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쉼과 휴休」(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쉼과 휴休」(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7월 7일, 어제가 24절기의 11번째 소서小暑였는데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셨는지요? 여가문화의 트렌드가 변해 이제 사철 가리지 않고 일정을 잡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장인들은 여름이 제철일 성싶습니다. 작거나 큰 더위에 초와 중, 말 그 복伏이 몰린 염천을 한시라도 벗어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찜통과 가마솥, 한증막 더위를 피하는 것인데 피서避暑가 바로 그런 뜻이지요.

올해는 윤월이 들어 음력 6월이 1달(7.25-8.22.) 더 반복됩니다. 예로부터 윤달에는 결혼과 집수리나 이사, 수의 장만과 이장移葬 등 중대사를 날 받지 않고 실행해도 된다 여겨왔습니다. 소위 액과 재앙 따위의 동티가 나지 않는다는 속설인데 이번 여름휴가에 그런 일 처리하는 문중도 많을 것입니다. 여하튼 휴가철이니 순우리말 ‘쉼’과 한자 ‘휴가休假’의 어원적 분석을 해볼까 합니다.    

한자 ‘쉴 휴休’는 ‘사람 인人’과 ‘나무 목木’이 결합된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나무와 함께 있는 형상입니다. ‘겨를 가暇’는 틈과 한가하다는 뜻으로 ‘해 일日’과 ‘빌릴 가叚’를 합해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날을 빌려서 시간적으로 여유를 갖는 행위를 말합니다. 묶어보자면 문자상 휴가는 일상에 지친 몸과 맘을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일종의 궤도 이탈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쉼과 휴休」(한지에 수묵캘리: 70✕70cm)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쉼과 휴休」(한지에 수묵캘리: 70✕70cm)부분

순우리말인 ‘쉼’은 동사 쉬다의 명사형입니다. 바로 삶과 살다의 관계인데 ‘쉬다’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날숨과 들숨의 호흡하다 2) 음식이 상하여 맛이 변하다 3) 목소리가 거칠어지다 4) 지친 몸을 편안하게 하다 물론 여기에서 휴가는 4번 항으로 풀이하지요. 비슷한 낱말로는 ‘놀다, 놓다, 빠지다, 머물다’ 등이 있습니다.  

최근 고속도로 갓길에 ‘졸음 쉼터’가 많이 보입니다. 단조로운 고속주행에서 졸음은 치명적인 사고를 부르는데 쉼터는 매우 유용합니다. 원래 구간별 정기 고속버스의 승하차장이었는데 이용객이 줄어들어 쉼터로 ‘재활용’ 한다고 합니다. 이런 쉼터가 1주일의 주말이라면 휴게소가 바로 휴가철 같은 것인데 어느 편이나 과중한 업무 그 달리기에서 쉼표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시민의 불복종”으로 유명한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 그는 마지막 산문집『산책Walking』에서 이런 아포리즘을 남겼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직업이 아닌 놀이가 되게 하라. 대지를 즐기되 그것을 소유하지 말라, 인간들은 진취적인 기상과 신념이 부족하여 지금처럼 사고파는 노예 같은 삶을 보내고 있다!”(「삶의 지혜」부분) 메사추세츠의 월든 호수가에 오두막을 짓고 머물렀던 자연주의, 초월주의의 현자다운 언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한자 휴休보다는 토박이말 쉼이 진정한 휴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숨을 쉬는 일이 곧 살아내는 삶의 연속인데 ‘먹고사는’ 지금, 여기를 떠나 다른  땅에서 새뜻하게 숨을 쉬어보는 것이 휴가의 본령이겠지요. 산이나 바다, 국내나 해외든 늘 오가는 ‘노예’의 숨과는 다른 ‘쉼’의 터를 찾아가는 휴가- 숨과 쉼은 그런 불가분의 관계성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단오나 유둣날, 칠석처럼 농사일이 한창일 때 하루는 일손을 놓고 함께 어울려 쉬었습니다. 이제 설이나 추석 정도가 명절로 남았지만 ‘쉼’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전통일 것입니다. 국내외 정치적인 격변 속에 경제가 불확실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잠시라도 ‘위험과 피로 사회’가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문화사가 호이징가(1872-1945)의 정언입니다. “사실 매시대마다 행복한 기억보다는 불행과 고통의 흔적을 더 많이 남긴다.” 행복의 기준은 높기만 하고 불행과 고통은 작아도 뼈저리게 느껴지는 법이니 적확한 명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도 쉼과 휴가는 ‘여행 중의 여행’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인생이라는 큰 여정이 저마다 어느 지점에서 끝날 줄 그 누가 알겠습니까?

해서 저는 영국의 철학자 제임스 톰슨(1945- )의 정언에 매번 무릎을 칩니다. “여행이, 한 번이라도 완결된 적이 있다는 믿음은 부조리한 믿음이다!” 그 부조리한 ‘믿음’들이 쌓여 회두리에 한 여행이, 일생이 완결될 터. 부디 모쪼록 올여름 건강하고 안전한 휴가 여행 다녀오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1959년 충북 영동 출생/ 서대전고.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전공/ 대전MBC·TJB대전방송·STB상생방송 TV프로듀서(1987-2014)/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1980)/ 제28회 동춘당전국휘호대회. 제18회 면암서화공모대전 캘리그라피부문 입선(2025) 제29·30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특선(2023-2024): 제28회 입선(2022)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부문 입선(2022)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입선(2020)/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 출간/  현재: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 영동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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