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전통의 맛, 20년執念(집념)으로 부활

2001년 국내 최초로 복원된 우리나라 전통 소금 ‘태안 자염’이 그 독특한 맛과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식탁 위 명품’으로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태안군 근흥면 마금리, 한 농업법인에서는 20여 년 전 되살아난 전통 방식으로 연간 20~30톤의 귀한 자염을 생산한다.
일반 천일염에 비해 까다롭고 지난한 공정 탓에 생산량은 적지만, 그 품질만큼은 미슐랭 셰프를 비롯한 유명 요리사들이 먼저 찾는 고급 식재료로 명성이 자자하다.

갯벌의 정수, 10시간의 정성으로 피어나는 맛
자염 생산은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정성이 결합된 예술에 가깝다. 먼저 마른 갯벌 흙에 바닷물을 여러 번 걸러 염도를 극한으로 높인 함수(鹹水)를 얻는다. 이 함수를 거대한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을 지펴 약 10시간 동안 은근하게 끓여낸다. 끓이는 동안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거품(불순물)을 걷어내면, 비로소 입자가 곱고 염도가 낮은 순백의 소금 결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탄생한 자염은 쓴맛과 떫은맛이 전혀 없고, 오히려 은은한 단맛과 함께 구수한 풍미가 입안을 감돈다. 천일염 대비 칼슘 함량이 월등히 높고, 감칠맛을 내는 유리아미노산도 풍부하다. 끓이는 과정에서 수증기와 함께 잡내가 날아가고 살균 효과까지 더해지며, 미네랄은 고스란히 간직한다.
특히 김장철이면 자염을 찾는 이들이 많은데, 유산균 개체 수를 늘려 김치의 발효를 돕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라진 역사, 되살아난 전통의 숨결
본래 자염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태안을 비롯한 서해안 일대에서 생산된 우리 고유의 소금이었다. 한국 음식의 근간을 이루는 필수 재료였으나, 20세기 초 일제가 땔감 없이 대량생산이 가능한 천일염 기술을 보급하면서 자염은 점차 경쟁력을 잃고 1960년대에는 국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아픔을 겪었다.
‘천일염 보급 이전 우리 소금은 자염이 유일했는데, 자염 복원 없이는 전통 음식 맛의 완벽한 재현은 불가능하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그러나 참고할 만한 사료가 거의 없고, 복잡한 제작 과정 탓에 구체적인 생산방식을 추정하기 어려워 복원은 요원해 보였다.
기적은 2001년, 태안문화원이 당시 정낙추 이사를 중심으로 팔을 걷어붙이면서 시작됐다. 지역 노인들의 어릴 적 기억이라는 희미한 실마리를 퍼즐 조각처럼 맞춰가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마침내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갯벌 간통에 해수를 모으고 소(牛)로 써레질하는 태안 고유의 ‘통자락 방식’을 되살려 자염 복원에 성공, 국내 소금 역사에 의미 있는 방점을 찍었다.

전국 유일의 자염 생산지, 낭금 갯벌의 기적
정 이사는 이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 20여 년간 근흥면 마금리에서 자염 생산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 마금리 ‘낭금 갯벌’은 조금(소조) 때면 무려 7~8일간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제방 없이 자연 갯벌을 그대로 이용하는 전통 방식(무제염전)의 자염 생산이 가능한 국내 유일의 장소로 남아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대대적인 간척사업 및 난민정착사업으로 과거 자염 생산이 가능했을 서해안 갯벌 대부분이 농지로 변한 까닭이다. 낭금 갯벌 또한 당시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1960년대 제방 유실 사고로 간척사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오늘날 귀한 자염 생산지의 명맥을 잇게 됐다. 전화위복인 셈이다.

힘겨운 복원의 시간을 거친 태안 자염은 이제 다채로운 풍미와 풍부한 영양소를 갖춘 건강식품으로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2013년 남양주에서 열린 슬로푸드 국제 대회에서는 한국 식재료 중 8번째로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되며 소멸 위기 속에서 지켜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공인받았다.
갯벌의 정수와 장인의 땀방울로 빚어낸 한 줌의 자염. 단순한 조미료를 넘어, 우리 전통의 맛과 역사를 품은 귀한 결정체가 식탁 위에서 다시금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