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발행인 / 뉴스티앤티

링컨이 신출내기 변호사 때 일이다. 그를 싫어하는 에드퀸 스텐턴이라는 유능한 변호사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스텐턴은 링컨을 원숭이라며 험담했다. 또 노골적으로 멸시하며 상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은 그렇지 않았다. 스텐턴의 실력을 높이 샀다. 거꾸로 불쾌감을 감추고 스텐턴의 변론 때마다 찾아가 듣곤 했다. 링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이 부족함을 알고 법률 공부를 다시 하게 된다.

몇 년 뒤 링컨은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그러자 민주당 핵심인 스텐턴은 신랄하고 공개적으로 링컨을 비판했다. 링컨은 그의 모욕과 비판을 마음에 담지 않고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했다.

링컨은 나아가 스텐턴을 육군장관(국방장관)에 앉혔다. 때마침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스텐턴 장관은 북군의 방대한 군사조직을 통괄했다. 그의 뛰어난 전술 전략으로 곳곳에서 연승을 거뒀고, 최후 승리를 이뤘다.

훗날 링컨이 암살되자 스텐턴이 제일 먼저 뛰어와 애통해 했다. 그는 “링컨은 위대한 지도자다. 그에게는 남다른 지도자의 안목이 있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어 스텐턴은 암살범에 대한 조사와 재판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링컨의 암살로 혼란에 빠진 정부를 다잡았다.

뿐만 아니다. 세종 임금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부왕인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넘겨주려고 할 때 세종은 고사하다가 조건을 걸었다. 꼭 한 사람을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황희(黃喜, 1363~1452)다.

황희는 대놓고 세종의 세자책봉을 반대한 이다. 황희는 태종 때 승정원 소속의 지신사(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로 양녕대군 폐위 문제로 세종을 반대한 것이다. 때문에 태종의 노여움으로 남원으로 유배 가있었다.

태종은 이를 들먹이며 세종에게 “너를 싫어하는 인물인데도, 너는 그를 쓰겠느냐?”며 의아해했다. 세종은 그가 아니면 좋은 임금이 될 수없다고 고집했다. 그 바람에 귀양살이에서 황희는 세종에게 발탁되었다.

황희는 조선조 최고의 청백리였고 명재상이었다. 조선조 최장수 재상이다. 그는 정치 일선에서 원칙과 소신을 견지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상식으로 눈감아주고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세종은 결단하기 어려운 일에는 황희 정승에 의지했다. 황희 역시 임금이라도 원칙과 상식에 벗어나면 사심없이 직언했다.

대원군도 마찬가지다. 대원군이 집권했을 때 병조판서에 김병기를 앉혔다. 김 판서는 안동김씨 세도가의 거두였다. 그러면서 대원군과 왕실을 무던히 괴롭혔다. 대원군의 측근들은 모두 거세게 반발했다. 그를 쓰면 ‘직(職)’을 내놓겠다고 압박까지 했다.

그러나 대원군은 공과 사를 분명히 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인물을 등용하지 않았다. 오직 김병기라는 이의 넓은 그릇과 그 분야의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대원군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반대했던 김병기를 등용했기에, 당시 난국을 타개할 수 있었다고 그를 높이 평가했다.

이는 지도자들의 안목을 보는 듯하다. 또 지도자들의 넘치는 도량과 됨됨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링컨이든, 세종대왕이든, 대원군이든 반대파의 정적을 끌어안고, 또 정적이라도 함께 나랏일이면 협력해 나라가 바로 가게 힘을 모으는 일이 진정 ‘협치(協治)’인 것이다

여권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야당 간에 합의한 협치가 위험 지경에 빠졌다. 새 정부 출범 초 이제 그릇된 정치문화가 바뀌고 독주와 독선, 편파와 왜곡의 권력이 바로 잡힐 것으로 기대했는데 말이다. 혹시나 하며 걸었던 기대가 역시나로 끝날 조짐이다.

20일로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40일인데 여야가 어느 때보다도 여권과 야권이 날 선 대치와 대립이 정쟁으로 불붙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야 3당의 반대에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을 강행함에 따라 정국이 얼어붙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수개월 간 국내외 현안이 산적해 해결이 시급한데도 말이다. 또한, 최악의 경제난과 허덕이는 민생을 돌봐야할 정치권이 올스톱됐다. 국회도 개점휴업 상태가 된 지 여러 날이다. 여야는 금가는 협치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며 ‘네탓타령’만 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제 가까스로 첫 발길을 뗐을 뿐인데, 앞으로 갈 길이 험로(險路)다.
여권의 시각에서 보면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지난 18일 외교부 장관 임명을 밀어붙인 입장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코앞에 닥친 한·미 정상회담과 다음 달 초로 예정된 G20 정상회담 준비 등을 감안하면 외교부 장관 임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뜻하지 않게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에 이어 강 장관까지 야권의 반대에 밀려 임명하지 못할 경우 국정 장악력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우려해 강행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문제들은 청와대의 인사검증 부실이 가장 큰 이유다. 인사수석실에서 몇 배수의 해당자를 고른 뒤 민정수석실로 보내 인물 검증을 하는 일반적인 일에 부실했던 것이다. 당연히 국회에서 법이 정한대로 인사청문회를 거쳐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는 게 순서다.

그중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고위공직자 5대 배제 원칙을 약속했다. ‘병역면탈, 세금탈루,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이 이 원칙들이다. 그러나 여러 장관 및 장관급 후보자들의 인사청문 결과 5대 배제 원칙의 덫에 걸린 이가 여러명 인 것이다.

그러니 야당이 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가 보여준 인사 행태는 야당에 빌미를 제공하거나 야당 간 결집을 강화시켜 준 셈이다. 그러니 여권 스스로 코너로 몰고가는 자충수(自充手)를 두는 것 같아 정치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야당 3당이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폭거", "협치 포기선언"이라며 일제히 성토에 나섰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은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거나 거부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러면서 청와대의 인사검증 부실의 책임을 따지겠다고 국회 운영위원회도 열었다.

야 3당은 청와대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여기에 조현옥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의 운영위원회 출석도 요구하고 있다. 안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에 따른 인사검증 부실 등을 추궁하겠다는 것이다. 20일 오후 열린 운영위에서 여야가 삿대질과 고성이 오간 것이 이런 이유다. 

인사청문회의 꼬인 정국은 이것만이 아니다. 야 3당은 국회가 정상화 되더라도, 줄줄이 대기 중인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도 순탄치 않을 것이 자명해졌다. 청문 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준 문제도 불투명하다. 여기에 논문 표절 의혹을 받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음주운전 논란에 휩싸인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을 둘러싸고도 진통이 예상된다.

이같은 매듭이 풀리지 않는 한 새 정부의 내실 있는 출발이 더디게 된다. 당장 정부 여당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일자리 추경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표류가 불가피한 것이다. 급하다고 청와대와 여당의 독주는 해법이 아니다. 국회 의석 분포상 어느 당도 독주할 수도 없는 만큼 꼬인 정국의 해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뿐이다.

여·야의 협치가 깨지면 정치권은 승자는 없고 모두 패자일 뿐이다. 현재처럼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면 정치권 전체가 국민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정국 운영의 무한 책임이 있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에 타격을 입는다. 또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큰 부담을 안게 된다. 때문에 여·야의 날선 대치와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여당이 먼저 인사 문제로 금이 간 협치 정신을 되살리는데 주력해야 한다. 야당에 대한 사과에 앞서 부실한 인사 지명과 부실 검증으로 실망과 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청와대와 여당은 일부 인사검증 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할 필요가 있다. 인물 검증의 책임이 있는 조국 민정수석의 경우가 그렇다. 조 수석은 막역한 사제지간이자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 수행의 적임자로 직접 챙겼다는 소문이 났던 안경환 전 후보자가 사퇴에 대해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권은 특히 경계할 게 있다. 집권 초 80% 안팎의 국정 수행 긍정평가나 지지율에 취해서는 안된다. 높은 지지율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높은 지지율만 믿고 협치의 근간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야당을 동반자로 함께 나랏일을 상의하고 대화하고 협력을 구하는 자세가 먼저여야 한다

두고 보면 여야 대치 정국을 해소하기 위한 야당이 요구는 의례적인 것이다. 그들이 국회에 돌아오도록, 협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명분을 여권이 제공해야 한다. 힘대 힘으로 다툴 게 아니다.

자진 사퇴할 만큼 흠 있는 후보자를 지명한 데 대한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사과나 진솔한 입장 표명이면 된다. 여기에 조국 민정수석, 조현옥 인사수석 등 인사검증 책임자들이 잘못도 시인하고 야당의 협조를 기다리는 게 새로운 정치다.

야당도 대승적으로 협치 정치는 살려야 한다. 청와대의 이런 허물을 인정하고 인사추천위원회를 가동하여 검증을 가동해야 한다. 여권의 독주와 특권을 견제하는 야당임에는 틀림없다. 안 전 후보자 사퇴와 강 외교부 장관 임명 강행을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 것인가. 그래서 협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국민들도 여론조사에서 보듯 강 장관에 대해는 ‘하자는 있으나 낙마시킬 만큼 심각한 결격 사유는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도 이번 장관 인선의 문제를 지적하며 청와대 등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야 3당이 여소야대 국면을 이용해 내내 공세만 펴는 것은 민주정치가 아니라는 지적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견제할 일은 견제하고, 협치할 일은 협치하는 야당의 모습, 새 정치의 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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