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발행인 / 뉴스티앤티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변호사와 대학 총장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이다. 우리가 일제 식민지로 주권을 잃었을 때 민족자결주의를 선언, 항일 독립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그런 그는 공과 사는 분명히 했다.

윌슨 대통령 재임 당시 노동부 장관이 갑자기 사표를 냈다. 노동정책이 맞지 않아 여러 차례 충돌 끝에 장관이 물러나겠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윌슨이 그의 사표를 반려하며 말렸지만 허사였다. 장관이 짐을 챙겨나갔다.

이를 본 백악관의 한 가정부가 대통령의 방문을 두드리고 청을 했다. 그리곤 “대통령님, 자리가 빈 노동부 장관 자리에는 제 남편이 적임자입니다. 남편은 근로자라 노동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근로자에 대해서도 이해가 대단합니다‘

윌슨 대통령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장관 후보감을 추천해주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장관은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품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고 선거 때 국민과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가정부도 거듭 청한다. “대통령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대통령께서 제 남편에게 장관 자리를 주면 당연히 영향력을 갖게 될 겁니다. 주정뱅이에, 툭하면 주먹질이나 하던 남편이지만 그것은 장관직에 큰 흠이 될 수 없지요. 장관 감투를 주면 인품을 갖게 될 거고요”

가정부의 얘기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흠결 있는 사람도, 변변치 않던 사람도, 겉치레만 그럴듯하고 속이 빈 사람도,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도, 높은 자리에 앉고 나면 달라지는 것이다. 정치나 행정부, 기업이나 심지어 군부까지도 빈번한 얘기다.

그렇지만 윌슨은 국민들의 높은 지지율 때문에 낭패를 겪은 적도 있다. 1913년 제28대 대통령이 된 그는 1919년 파리 강화 조약 협의를 위해 파리로 갔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 영국의 로이드조지 수상, 프랑스의 클레망소 수상 등 연합국 측의 27개국 대표가 참석한 회의였다.

그렇지만 파리로 갈 때 미국 대표단을 구성하는데 큰 실수를 했다. 윌슨은 대표단 구성에 전통적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 상원 외교 위원장이나 야당 의원을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상원 외교 분과 위원장이나, 야당인 공화당에서 존경을 받는 에리우 루트 의원, 그리고 공화당의 전직 태프트 대통령과 동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윌슨은 자신의 선거를 도운 사람이나 자신을 지지하는 인물을 이 대표단에 넣었다. 당연히 야당이 반발했다. 이른바 미국 대표단은 자신을 믿고 있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대표단을 꾸렸다. 외교 관례를 깬 그의 결정은 상원에서 국제 연맹 가입안이 부결되는 파문을 불렀다. 때문에 여야 협치(協治)가 깨지는 파란을 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15일로 35일째다. 그간 여러 분야에서 적잖은 변화도 있었다. 소통과 꾸밈없는 행보, 낮은 자세, 그리고 그릇된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 등에 힘입어 80% 안팎의 국정 수행 긍정평가가 있다. 더욱이 험악한 한반도 정세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청와대에 들어가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든 채 비서진들과 산책을 하고, 제왕적 권위주의를 벗어던지는 모습은 박수를 받고 있다. 주요 공직에 파격·탕평·통합 인사를 하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국민을 가르치기보다 국민과 단상 아래 나란히 서려는 자세는 달라진 것이다. 

취임 초 개혁 과제에 속도를 내는 것도 다행이다. 문 대통령은 안보문제와 한미, 한중, 한일, 한러 등 한반도 정세에 심혈을 기울이는데도 일단 평가한다. 여기에 30년 이상 노후 화력발전소 셧다운, 미세먼지 저감 대책, 금강 등 4대강 보 개방, 검찰 돈 봉투 만찬 감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환경영향평가, 개헌을 통한 제2 국무회의 운영 등등도 달라진 모습이다.

문제는 아직도 새 정부의 내각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3일 통일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4개 부처 장관을 추가 지명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17개 부처 가운데 15개 장관 인선은 끝냈다. 지명된 내정자 가운데는 전문가나 여성 중용의 의미가 돋보인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람들로 자리는 대략 채웠지만,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일부 국회의원 겸직 후보자 외에는 하나같이 흠결을 갖고 있다. 문 대통령과 협치를 약속했던 야당들이 틀어진 것도 모두 이 까닭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임명강행이라든지, 강경화 외교통상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움직임 등으로 꼬여가고 있다.

여야가 인사청문회 검증으로 대립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까지 하며 일자리 추경예산처리를 요구했지만 야 3당은 공동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야 국회상임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갖고 추경예산처리를 요청했으나 이렇다 할 결과는 없는 것이다.

TV 청문회에서 드러난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이런저런 흠결은 야권 내 반대기류가 강하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공약한 고위공직자 5대 임용 배제원칙(병역 면탈,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세금 탈루)에 해당되는 경우들이다. 이 가이드라인 때문에 더욱더 여야 관계가 경색되는 모습이다.

여야가 서로 ‘내로 남불(내가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삿대질하는 것이다. 여야가 상황이 바뀌어 공수(攻守) 입장이 변하면서 ‘남이 하면 불륜’만을 꼬집는 것이다. 위장전입, 자녀의 이중국적, 논문표절, 탈루 의혹과 저급한 내용을 담은 칼럼 등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코드 인사’니, ‘보은 인사’니 ‘회전문 인사’라는 의혹도 쏟아진다.

그렇다 보니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이나 장관후보자로 지명된 인사나 모두 난감한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고위 공직 후보자에게는 어느 정권 때나 전문성 외에 도덕적인 엄격한 잣대가 요구됐다. 지난 2000년부터 인사청문회와 인준 제도가 도입되고, 이어 2007년 이후엔 장관급으로 확대되면서다. 장관 후보자 개인의 자질 검증이라지만, 혹독한 신상검증인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그래서 무차별적 신상털이라는 점에서 보완할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후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모두 만신창이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청문 보고서 채택과 인준을 놓고 여야 간 힘겨루기로 변질되어 심각한 후유증만 낳는다며 개선안을 만들고 있다.

청문회를 확대한 뒤 공직자에 대한 사회 전반의 도덕성 요구 잣대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하지만 인사검증과 청문회가 당사자에게 무차별적 신상털이로 변하면서 본인과 가족들마저 만신창이로 만든다. 뿐만 아니라 청문 보고서 채택과 인준 투표가 여야 간 힘겨루기 대상으로 변질돼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를 지적하고 있다. 공직자로서 엄격한 도덕적 기준에 통과해야 함은 백번 공감하더라도 무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정의의 울타리가 덫이 되고 함정이 된다면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국정을 맡길 기회는 멀어지고 공직 진입 자체를 꺼리는 현상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해법은 청문회 개선책은 개선책이라도, 여야가 인내를 갖고 협치를 이뤄야 한다. 장관후보자들의 적격시비에 정국이 얼어붙어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여러 부처가 박근혜 전 정권 때 장관들이 그대로 있다. 안팎으로 힘든 상황에서 여야는 타협과 대화를 통해 꽉 막힌 장벽을 뚫어야 한다.

여야 관계가 비협조와 불편으로 이어지면 피해자는 문재인 정부다. 일자리 추경, 정부조직 개편은 물론 개혁 공약과 적폐청산은 입법이 대부분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국상황이 여소야대인 데다 국회선진화법이란 장벽까지 있어 초당적 협력, 협치 없이는 무엇 하나 소신껏 할 수 없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 키는 여야 협치에 달렸다. 협치를 깨지 않도록 인내하며 야당을 동반자로 함께 가야 한다. 협치, 초당적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에 달려 있다. 그러기 위해선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야당을 위한 노력뿐이다. 과거 정권들이 야당을 무시하고 ‘나 홀로 가겠다’고 독선을 펴다, 자멸했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여권은 협치, 초당적 협력에 매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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