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호접몽蝴蝶夢」(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호접몽蝴蝶夢」(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드디어 남녘에서 화신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도의 유채꽃, 남해안의 산수유와 매화가 꽃망울을 벙글벙글 터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천년고찰 통도사와 화엄사 경내의 고목 그 매화도 석가모니께 꽃 공양하는 양 피어났습니다. 지난 3월 5일이 경칩이고 내일, 20일이면 춘분이니 의당 그럴 절기입니다. 이제 벌과 나비들도 봄꽃 찾아 날아다닐 터. 만화방창- ‘3월의 시詩’를 꼽으라면 저는 단연 김기림(1939- ?)의「바다와 나비」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호접몽蝴蝶夢」(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호접몽蝴蝶夢」(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바다와 나비」(1939년) 전문

중국 육조의 문인 유협劉勰(465-521)은『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안목이 자연과 교감할 때 마음에는 지성이 숨을 쉰다. 감동이 자연에의 선물이라면 시상은 마음에의 보답 같은 것”(권10. 자연풍물과 사실)이라고 언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요즈음에 어린 흰나비 한 마리가 시인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호접은 곧바로 함경도 출신 편석촌片石村의 심중으로 스며들어 한때, 거기 유년부터 지금, 여기의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대지 전체가 바다로 변했을 때, 바다 밑을 헤엄치던 눈먼 바다거북이가 100년에 한 번 바다 위로 고개를 내미는데 그 위를 떠다니던 구멍 뚫린 나무판자에 목을 끼게 되어 인간으로 태어난다. - 초기 불전『잡아함경雜阿含經』

피붙이들의 웃음꽃 속에 피어났다가 역시 살붙이들의 울음바다로 떠나는 한살이- 기실 무상하고 헛꽃 같은 인생이라지만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은 짜장 ‘바다거북이’처럼 지극히 어려운 윤회일 터. 아무도 오고, 가는 그곳을 모르는 탓에 답답한 운명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울고불고 환호작약, 때때로 웃고 울며 나날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런 삶에서 ‘자연’은 큰 위안과 위무를 얻는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참 동안 나는 이 마다가스카르의 나비를 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그것은 내게 많은 기억을 불러일으켜 주었고, 많은 것을 일깨웠으며 또 많은 것을 얘기해주었다. 그것은 미의 화신이었으며 행복과 예술의 화신이었다. 그 형태는 죽음에 대한 승리의 비유였고, 그 색채와 조화는 무상함에 대한 다각 조명의 미소였다. 수많은 광선을 발하는 유일한 미소였다. - 헤르만 헤세 산문집『나비』「마다가스카르 나비」부분

독일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1872-1962)는『데미안』,『싯다르타』같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1964년에는 인간 영혼의 자유와 고귀함을 추구한 현대고전에 오른 명작들로 노벨상과 괴테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꽃과 나비’를 무상함의 상징으로 여겨 광적으로 수집하면서 수채화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동양적인 신비의 동경과 탐구를 수록한 여행기를 다수 남겼습니다.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작가는 이국에서 채집한 나비의 표본을 수시로 감상하며 마음껏 ‘축제’를 즐긴다고 고백합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 그 빛깔의 지혜를 간직하고 투사처럼 돌진하기도, 때로는 고통스럽게 냉소하는 나비 한 마리... 헤세가 나비이고, 나비가 헤세인 곧 대상과 하나가 된 희열을 맛보는 것입니다. 물아위일物我爲一, 정경교융情景交融의 경지 말입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호접몽蝴蝶夢」(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호접몽蝴蝶夢」(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나비는 기원전 1,500여 년 전의 파라오무덤 벽화에 그려졌으며, 1,300여 년의 미케네 제후들 무덤의 금장식 문양에 보입니다. 인도의 부처님은 “브라만교 경전에서보다 나비 그대에게 더 많이 배웠노라!” 설법했습니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비가 알, 유충, 번데기, 날개 달린 성충으로 변태하는 과정을 최초로 기술한 현자입니다. 인간사가 그렇듯 굴곡진 변화가 ‘철학적 대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고대 중국 장자의「호접몽」은 그런 친숙한 나비의 체현이겠지요.

이제 새봄이 찬란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저는 순우리말 ‘나비’를 ‘아我 나, 날 비飛’로 새긴 지 오래입니다. 때문에 춘삼월이면 삭풍과 혹한 그 겨울철 같은 살천스럽거나 던적스럽고, 비루한 감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날개를 매만져 봅니다. 비록 ‘흰나비’처럼 청무우밭 닮은 빛깔의 바다에 날개를 적신다 해도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내륙의 강들은 그 어떤 강이라도 바다로 흐르고, 당도하면 제 이름들을 잊고야 맙니다. 사람들도 회두리에 기쁨과 슬픔도 죄다 접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이지요. 오래된 미래- 저마다 그날까지 힘찬 날개짓으로 젖은 몸 말리며, 초승에서 온달 가는 희망의 그 달 바라보며 살아내야만 할 것입니다.  

부디 이 새봄에 기쁘고, 감사한 일들 많이 생겨나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작가 사진: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 / 영동작가회 회원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