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발행인 / 뉴스티앤티 DB

충청을 연고로 했던 자민련의 패망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자민련은 보수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 실지는 힘을 못썼다. 내각제를 지향했음에도 실지는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김대중(DJ) 씨와 김종필(JP) 씨가 세운 DJP정권의 틀에 갇혔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이한동 자민련 총재가 국무총리를 맡은 데서 찾을 수 있다. 그해 JP는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이한동 씨를 영입해 자민련 총재를 맡겼다. DJ는 이어 그를 자민련 몫의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DJP정권이 수립된 뒤 JP, 박태준 의원 등이 국무총리를 이어 맡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과기부 장관과 해수부 장관 등은 자민련의 몫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공기업 몇 개와 출연기관 몇 개의 책임자도 자민련 몫이 됐다. 당사자들은 신바람이 났지만 자민련은 이때부터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낙점된 이한동 씨는 그 바람에 야당 총재이면서, 국무총리를 겸직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자민련은 여권에 당당히 맞서는 야당도 아니고, 온전한 여당도 아닌 어정쩡한 정당이 됐다. 정가에서는 당시 자민련을 빗대어 ‘요당(요상한 정당)’, 또는 '곁불이나 쬐는 정당'이라고 비꼬았다.

어이없는 일은 그 뒤 비일비재했다. 국무총리를 상대로 한 대정부 질문자를 정할 때도 당 총재인 이 총리가 선정했다. 또 자민련 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도 이 총리가 최종결정권자였다. 정부를 견제,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들을 당 총재를 겸직한 이 총리가 임명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제대로 일할 수 있었을까. 삼권분립 국가에서 씁쓸한 정치행태였다.

여기에다 자민련이 17석에 그쳐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자 여당의원 3명이 임대되는 웃기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렇지만 금쪽같던 약속 ‘DJP정권=내각제 개헌’이 파기된다. 이 바람에 당시 자민련 김용환, 강창희, 이원범 의원 등이 당을 떠나는 분열로 치닫고 이어 간판을 내려야 했다.

최근 타계한 당시 자민련 고위 핵심 당직자는 ‘자민련은 야당인데 총재가 국무총리로 가다 보니, 소속 의원들은 허수아비였다. 총리를 추궁해야 하는데 당의 총재이니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느냐. 결국 자민련 의원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상한 정체성을 가진 ’DJ 2중대‘로 매도되어 망했다’고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엊그제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 4명을 4개 부처 장관에 지명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인준이 가까스로 이뤄진 뒤다. 이런 분위기 속에 7일에는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었다.

여기에 재벌의 저격수라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보고서 채택 여부도 논란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적격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야권은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이니, 부인의 특혜 여부 등 흠집에 총공세를 펴는 모양새다.

파행과 논란이 계속된 청문회 난항 속에 현역 국회의원 4명을 인선한 것이다. 청와대는 4명의 현역의원 발탁에 대해 전문성을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에 유리하도록 현역 국회의원을 전면 배치한 것이라는 관측도 떨칠 수 없다. 총선 과정에서 검증을 거친 데다 여야를 넘는 동료의식 때문에 인사청문회가 수월할 것이라는 점이 감안된 것이다.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허다했다. 위법이나 편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제를 택해 정부를 견제 감시하는 삼권분립을 존중하는 헌법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 현행 국회법 29조에 그런 규정이 있다. 국회의원의 겸직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에게는 허용된다. 그러면서 그 이외 다른 직에는 허용이 안된다. 단지 공익 목적의 명예직, 다른 법률에서 의원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 직, 정당법에 따른 정당의 직에는 예외를 인정한다. 입각하는 의원들 입장에서는 장관을 겸직하면 지역구 예산 확보에 유리하고 장관으로서 인지도가 확대 정치적 입지를 쌓을 수 있으니 꺼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승희 민주당 의원은 겸직 국회의원의 국회 활동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하지만 처리되지 않고 있다. 유 의원이 낸 개정안 내용을 보니 국무총리나 국무위원 겸직 의원은 본회의 표결에 참여할 수 없고, 상임위나 특위 위원을 사임토록 하며 법안 표결 때 재적의원 수에도 포함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연한 주장이다. 그렇기에 최소화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제인 미국은 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원천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는 경우 직무정지로 의원 활동을 일시 제한한다. 심지어 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서조차 장관 겸직할 때는 국회의원으로서 법률안 발의를 제한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야당 총재가 행정부의 수장인 국무총리로 가고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인 장관으로 등극하는 이상한 정치판이 되는 것이다. 입법부를 대표하는 개별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행정부에 소속, 감시와 견제라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구분을 모호해지는 것이다. 곧 삼권분립 원칙이 훼손된다. 국회의원으로 뽑아줄 때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라는 뜻이었는데 이에 반하는 것이다. 스스로 국회의 권한을 방기하는 셈이다.

그래서 정가와 언론들이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꼭 써야 할 적임자라고 설명하지만 일단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인사원칙을 주문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의 각료 발탁이 계속된다면 문 대통령과 국회는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야 한다.

그중에 국정의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에 분명한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겸직을 최소화하고, 겸직 기간에는 국회의원직을 정지시키거나 법률안 발의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요, 투명한 정치다. 과거 적폐청산이 인사원칙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선 때 도왔다고, 코드가 맞다고 국회의원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장관 자리를 나눠 주던 과거와는 달라야 한다. 문 대통령에게 기대되는 것이 바로 이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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