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칠석七夕」(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칠석七夕」(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8월 22일, 오늘이 음력으로 7월 7일 ‘칠석七夕’입니다. 수천 년 전 신화의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딱 한 번 만나는 바로 그날- 지상의 모든 까치와 까마귀는 죄다 높이 올라 그 재회를 위해 ‘오작교’를 만듭니다. 천상의 두 연인이 건널 수 있도록 서로 이마를 맞대고, 날개를 잇는 것입니다. 기쁨도 극한에 다다르면 눈물이 난다 했던가요. 칠석에 내리는 비는 직녀와 견우가 상봉과 다시 헤어지는 희비가 교차하는 산물이지요.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칠석」(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칠석」(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어정칠월, 동동팔월- 논밭의 소출이 경제적 재화의 전부였을 때 음력 7월은 농부들이 한숨 돌리는 농한기였습니다. 흙내 맡은 벼는 실하게 자라고, 밭작물 역시 잘 영글어가는 터라 어정거리며 물꼬나 보러 다닐 뿐이었습니다. 칠석에 이은 7월 15일 보름날이 백중百中인데 농민들이 온종일 음식과 술을 나누며 즐기는 날이었습니다. 불가에서도 부처의 탄생, 출가, 성도, 열반과 함께 ‘우란분재盂蘭盆齋’로 불리는 5대 명절로 여기는 하루였습니다. 한편으로 4월 15일부터 수행하던 하안거가 해제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칠석」(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칠석」(한지에 수묵캘리: 70✕70cm) 부분

떠나고 / 남는 // 생각 / 버리고 // 비로소 / 달랜 // 가는 / 외로움 – 범대순(1930-2014) 詩「떠나고 남는」전문

이별, 별리, 석별, 작별, 고별, 결별, 몌별袂別... 헤어짐의 섭섭한 감정을 오롯이 담고 있는 낱말들. 역으로 상봉, 대면, 상견, 재회, 상면, 조우... 이런 단어는 만남의 기쁨을 한껏 고조시킵니다. 사람은 한뉘를 살아내면서 짜장 얼마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는 것일까요? 되도록 울음보다 웃음이 깃든 ‘추억’이 쌓아지기를 바라고 간절히 원할 터.

범대순范大錞(1930-2014) 시인은 전남 광주 출신으로 ‘무등산 시인’으로 불리며 1994년 전집 전16권을 출간했는데 한국시인협회상, 한국문예대상, 영랑문학상 등 다수의 저명한 상을 수상했지요. 그의 시는 “동양정신을 바탕으로 서양적인 감수성과 모더니즘 시론을 접목한 독특한 시’를 창작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살아생전 마지막 직함이 전남대학 명예교수셨습니다.  

범 시인은 ‘떠나고 남는’ 감정은 등가라고 일러줍니다. 여기 남아 있는 나와 저기 가고 있는 이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절절한 회한을 잊으려고 애쓰면서 어루고 달래야만 얻어지는 값진 깨침 그 별리의 진리일 것입니다. 소월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만해의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미당의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하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그런 시구처럼 뼈가 시린 통한의 슬픔을 승화하는 길 말입니다.

신화는 인간의 삶에 찍힌 영원한 도돌이표, 따라서 인간은 영원히 신화를 되산다. - 미국의 비교 신화학자 조셉 캠벨(1904-1987)  

8월 23일 내일이 24절기의 14번째 처서處暑인데 어느덧 아침과 저녁으로 선득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이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름과의 이별-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 속에 숱한 여름철의 잔해를 정리하고 가을을 마중해야겠지요. 모쪼록 몸과 맘 청안하신 나달 이어가시길 비손합니다. 혹시 까치나 까마귀 울음소리 들리면 칠석에 다리 놓느라 고생 많았다며 눈길 한번 주시면서요.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1987-2014)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부문 입선(2020) / 제19회 충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 / 제29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특선(2023): 제28회 같은 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를 펴냈고, 현재 충북 영동축제관광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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