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헌 옥천중앙의원 원장, 시인, 사진작가

노근리 평화공원 장미꽃 / 송세헌 제공
노근리 평화공원 장미꽃 / 송세헌 제공

누구 듣고 있나요
청포도 익어가는 칠월이 오면
가신 님들의
파랗게 질려 허공에 얼어버린 비명소리를,
그 누가 듣고 있나요.

누구 보고 있나요
사슴도 숨어 산다는 *녹은리 청정한 숲
주검을 뒤집어 쓰고 총알을 피하며
흘러드는 핏물 마시며 나흘을 버텼다는 아수라장을,
그 누가 보고 있나요.

누구 알고 있나요.
난데없이 쌕쌕이와 포탄과 기관총의 표적이 되어
철도 레일이 휘고 소가 공중분해 되는 학살의 현장에서
등골이 오뉴월 서릿발로 오싹하다 혼절하여
백척간두에서 떨어지던 목숨의 꽃을,
그 누가 알고 있나요.

누가 말하고 있나요.
아버지 등에 업혀 피란하던 아들이 쓰러지고
시어머니 등에 업혀 칭얼대던 어린 딸이 쓰러지고
아들을 품에 안고 총알받이 하던 어머니가 쓰러지고
포탄이 날아와 할머니 시신조차 날아가고
눈 앞에서 오누이가 즉사하는 무서운 역사를,
누구에게 전하고 있나요.

칠월이 오면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적군인지 친구인지도 모르던
하얀 옷 입은 민초들의 이유 없이 스러진 목숨들이
망초꽃 되어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 송세헌

 

*鹿隱里(녹은리;노근리) : 사슴이 숨어 산다는 평화로운 마을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미군이 노근리의 경부선 철도 아래와 터널, 속칭 쌍굴다리 속에 피신하고 있던 인근 마을 주민 수백 명을 무차별 사격하여 수백여 명이 살해·부상·실종당한 사건을 말한다.

송세헌 옥천중앙의원 원장, 시인, 사진작가
송세헌 옥천중앙의원 원장, 시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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