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원용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흡사 어린 시절 교회나 모임에서 재미있게 했던 방석 빼앗기 놀이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방석 빼앗기 놀이는 놀이에 참여하는 사람 숫자보다 하나 혹은 두 개 정도 방석을 적게 깔아놓고 방석주위를 둥글게 원을 지어 노래를 부르거나 손을 잡고 빙빙 돌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쏜살같이 각자 방석을 차지하는 놀이로 방석을 차지한 사람은 계속 참여할 수 있지만 방석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탈락하고, 이렇게 반복적으로 진행되어 마지막 한 명이 남으면 그 사람이 승자가 되는 놀이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오직 경쟁을 통해 승리한 사람만 남고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밀려난다. 아니 방석 빼앗기 놀이처럼 승자의 자리는 언제 어디든 주어지지만 패자는 자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세상은 승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승자들의 기록은 역사가 되어 버린다. 또한 승자들이 모여 있는 곳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세상의 중심에 있어야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된다고 생각하고 승리의 기회를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소위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향해 모여든다.

특히 운동경기나 선거를 보면 승자와 패자의 자리가 아주 극명하게 대비된다. 경기에 이긴 승자에게는 온갖 혜택과 환호, 부와 명예 등 보상이 주어지지만 패자에게는 보상은커녕 자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올림픽 경기 등 국제경기에 우리나라 대표단이 참가하는 것을 보면 개막식에는 선수단 거의 대부분이 참석하지만 경기에서 탈락하면 폐막도 하기 전에 곧바로 귀국시켜 버린다. 심지어 그 종목의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곳에는 머무를 자리조차 없다. 선거는 더욱 심하다. 승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지지만 패자는 승자에게 주어질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 마디로 선거는 승자독식인 셈이다.

이렇게 승자의 자리만 있는 사회가 되다보니 당연히 승자들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은 화려하고, 온갖 혜택이 다 주어지고, 깨끗하고,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 그러니 당연히 누구든지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곳으로 향한다.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속담처럼 세상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곳으로 사람들은 기회를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자의든 타의든 몰려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세상의 중심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일까? 정말 너나 할 것 없이 소위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 곳을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 것일까? 성경은 반대로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의 눈길이 미치는 곳,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눈길이 미치는 곳은 어디일까? 어느 성서학자는 성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이 도처에 나타난 가난한 이웃을 사랑할 것을 가르치는 교과서라고 말한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눈길은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ιξομαι, 애 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다, 측은히 여기다, 마음속에서 움직이다.)로 지금 울고 있는 사람들의 자리에 집중되고, 바로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우리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생각을 좌우하는 뇌가 우리 몸의 중심일까? 아니면 피가 돌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으니 심장이 몸의 중심일까? 우리 몸의 중심은 심장도, 머리도 아닌 아픈 곳이 우리 몸의 중심이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별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새끼발가락 발톱 끝에 작은 가시 하나만 박혀도 온 신경이 그곳으로 모이게 된다. 아무리 무신경하려고 해도 생각은 아픈 곳으로 집중되게 된다. 이렇게 아픔이 있는 곳, 그래서 마음이 모이는 곳, 그곳이 바로 몸의 중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중심도 성서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된 곳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인 것이다.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해 직장을 잃은 자리, 재개발로 인해 그동안 살던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세입자들의 자리, 가난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흩어져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노숙인의 자리, 외로움과 가난으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는 가난한 독거노인의 자리, 입시지옥에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는 학교 밖 청소년의 자리 등 수없이 많은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가 바로 세상의 중심이자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관심도 하나님의 시선이 멈춘 그곳,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바로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긍휼은 비를 맞는 이에게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가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우리가 지금 비를 맞고 서 있는 형제가 있는 곳, 아파하는 이웃이 있는 곳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면 그것이야 말로 세상의 중심을 향한 우리의 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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