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송상헌의 마당패 놀이.

3월 16일 오후 2시. 대전 동구 인동에 있는 만세운동 현장에서 송상헌의 마당패 놀이가 공연을 했다.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인파들로 객석은 물론 인동 다리 위까지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마당패 놀이란 가만히 앉아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연희자와 관객의 구분 없이 동네 마당에서 하나로 어우러져 노는 놀이이기 때문에 연희자와 관객이 한 덩어리가 되어 '얼쑤'의 춤놀이가 펼쳐지는 흥미 있는 놀이인 것이다.

마당패 놀이로 꾸며진 인동 만세운동의 연극 ‘비운의 아들 건아.’

 

마당패놀이 한장면 / 김용복 제공
마당패놀이 한장면 / 김용복 제공

일본경시청에서 촉망받던 주인공이 거세지는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1919년 3월 16일 원동 파출소로 배치받아 부임 첫날부터 인동장터의 동태를 살피고 人검열을 하고 다니는데 분위기가 심각하고 급변하는 만세운동이 일어날 조짐을 느끼고 인동장터 근처에 순사들을 집합시켜 진압을 명령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건이의 말투로 인해 블랙 코미디로 느껴지게 하는 작품을 탄생시켰고 인동 만세운동을 진압하는 순사들은 상부의 명령을 따라 “다 죽여라!”라고 하며 사격을 지시한다.

만세운동 참가자들이 죽어가는 인파 속에 주인공 어머니마저 죽어가자 그 모습을 본 건이는 부하들에게 사격중지를 명령한다. 그러나 아무리 명령해도 계속 사격을 가하자 몸소 총알 받이가 되며 앞을 가로막는다

애국심이 많은 어머니와 엮어지는 슬픈 대사와, 죽음을 초월하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으며 부서장에게 자기가 만세를 부르짖으니 죽여 달라고 한다.

1919년 3월 1일 이틀 후 인동장터 나무꾼들이 만세운동을 했고 3월16일 쌀전에서는 30대 주동자 양태석과 김노원, 권학도가 주축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가마니 위에 올라가서 만세운동을 불렀다 한다.

 

마당패 놀이 한 장면 / 김용복 제공
마당패 놀이 한 장면 / 김용복 제공

이 작품을 연출한 송상헌 연출가는 

“시간이 촉박해 시나리오를 만드는 동시에 들어갈 풍물을 짜고, 매일 끝없이 연습하고 다듬어 무대에 올린 작품이었다.”라고 술회를 하고 있다. 

15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공연이었으나 여러 해프닝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송상헌 연출가의 변을 들어보자.

“작품 속 총소리 표현에 사용될 일회용 연발총의 총소리는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 총 한 자루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극의 초반 내빈이 직접 참여해 함께 대화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내빈이 현장에 늦는 바람에 많은 분량을 잘라내고, 애드립으로 대처하는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연습하지 못한 부분을 급하게 무대에 올리는 긴장감 때문에 대사 전달에 실수가 있었다고 안타까워하던 연출자는 곧이어 이 역시 모든 것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마당극의 매력 아니겠냐” 며 둥글게 웃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해 올려진 공연이었지만 연기경력 45년의 연출자 겸 배우와 15년 이상의 단원 배우들이 단합해 마당놀이의 기본 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혹은 당시를 살아가던 어른들이 지금의 후손들에게 전하고 싶을 만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멋진 공연이었던 것이다. 

공연이 마무리되고 출연자들이 인사를 올리자 관객들은 감동적일 만큼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비운의 아들 건아』는 인동장터 만세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공연이었다.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볼거리를 만들어준 극단 송상헌의 마당패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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