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마음이 엉성하고 게을러서 / 매번 섣달 그믐날 밤이 오면 슬퍼하네 / 섣달 그믐날 밤의 이 마음 오래도록 품고 있으면 / 새해에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네 – 이덕무 산문집『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중「섣달 그믐날」

제석除夕, 섣달 그믐날, 제야除夜- 음력 12월의 마지막 날을 지칭하는 낱말이지만 지금은 양력 12월 31일을 그렇게 부르고 있지요. 어느 시대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회한에 젖고, 또한 새로운 각오를 품는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230여 년 전 조선의 북학파 실학자로 문장가였던 이덕무(1741-1793)선생 역시 슬픔 속에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동시대의 연암 박지원(1737-1805)은 그를 가리켜 “가장 조선적인 글을 짓는다”며, 중국에 성인이 나와 여러 나라의 풍속을 알고자 한다면 조선에서는 마땅히 형암의 시문을 깊이 헤아려볼 것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시조리始條理, 종조리終條理」(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김래호 작가의 글자그림 「시조리始條理, 종조리終條理」(한지에 수묵 캘리: 70✕70cm)

시조리와 종조리- 이 대구의 출전은 『맹자』10 만장장구萬章章句 하下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공자가 성인의 훌륭함을 집대성했는데 음악을 시작할 때 금의 종을 울리고, 끝날 때 옥의 경을 치는 것과 같다.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지의 일이요: 始條理者智之事也, 조리를 끝내는 것은 성인의 일이다: 終條理者聖之事也.”  

동방일사東方一士 이덕무는 이 경구를 조선의 백성에게 적용해 ‘화가와 백정’을 예로 들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겉옷을 벗고, 의자에 걸터앉아 붓을 잡는 화가의 마음을 가져야 하고, 마무리할 때는 도축을 끝낸 백정이 피 묻은 칼을 정성스레 손질하듯 살펴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2022년과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 2023년을 맞는 연말연시- 포정처럼 한 해 갈무리 잘 하시고, 화가의 심정으로 새해 계획 세우시길 비손합니다. 1년 동안 애 많이 쓰셨고, 짜장 고생 많았습니다. 늘,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비손합니다.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 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 충남대 국문과 /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 / TJB대전방송 /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 입선(2020년), 제28회 대한민국서도대전 캘리그라피 부문 입선(2022년)했다. 산문집『문화에게 길을 묻다』(2009년) /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2016년)를 펴냈고, 현재 경부철길의 절반 지점인 고향에서 사람책Human-Book 도서관 ’어중간於中間‘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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