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분열 조장, 정략선동 그만 둘 때 

표언복 전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표언복 전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해방 뒤 문인 사회에도 자연스럽게 일제하에서의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반성이 요구되었으며 하나의 쟁점이 되기도 했다.

'반민특위'의 치죄를 받을 만큼 대표적인 친일 문학인으로 비난받는 이광수는 자기의 친일 행위가 어디까지나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김동인은 누가 더하고 누가 덜할 게 있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태준이 한글이 아닌 일본어 글쓰기를 친일의 기준으로 삼고자 한 반면, 김사량은 한글이냐 일어냐를 따지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하다며 자신의 일본어 글쓰기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좀 예외적인 자세를 보인 사람은 채만식이다. 그는 예의, 그 특유의 냉소적인 태도로 자신의 일제 말기 행적을 변호하고 나섰다. 1948년에 발표한 「민족의 죄인」이 그것이다. 

작품에는 문인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각기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친일의 오명을 남긴 사람이고 다른 두 사람은 부자인 아버지 덕에 이를 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일제 말기 총독부가 사주하는 궐기대회의 연사로 참여하고, 일제가 요구하는 증산소설을 쓰기도 했다. 
저들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글을 싣는 '매문(賣文)', 식민 정책에 협력하여 고향으로 내려간 소개(疏開) 경험도 있다. 

이에 반해, 길에서 만나면 그저 인사나 하는 사이인 '윤'은 어느 신문사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문필 활동을 중단한 채 기자직을 버리고 자취를 감춤으로써 친일의 오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김'. 그 역시 기자 생활을 하며 대일 협력을 하던 사람이었으나 부자 부친을 둔 덕에 절필하고 낙향하여 양심을 지킬 수가 있었다. 
나는 어느 날 김의 잡지사에 들렀다가 때마침 찾아온 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야기 끝에 문인들의 친일 행각에 대한 윤의 비난이 이어졌다.

 '왜놈들의 주구(走狗)가 돼 가지구 온갖 아첨 다 하구, 비윌 맞추구 하면서 순진한 청년 어리석은 백성을 모아 놓군 구린내 나는 아굴찌루다 지껄인닷 소리가, 소위 예술가니 평론가니 하는 놈들은 썩어빠진 붓토막으루 끼적거려 낸닷소리가, 황국신민이 되라 하기, 내선일체를 하라 하기, (……)그래 멀쩡한 거짓말루다 황국신민 소설, 내선일체 소설을 쓰구, 조선 청년이 강제 모병에 끌려 나가 우리의 해방에 방해되는 희생을 하구 한 걸 감격하구 영웅화하는 걸 쓰구 했으니 그게 예술가야? 예술과 예술가의 이름을 똥칠한 놈들이요, 뱃속에 가 진실과 선과 미를 찾아 마지않는 양심 대신, 구더기만 움덕거리는 놈들이 아니구 무어야.'

다분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나를 보기가 민망했던 김이 애써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 보려고 했으나 사태는 오히려 김과 윤 사이의 언쟁으로 바뀌고 말았다. 
김의 태도가 윤과는 사뭇 달랐던 것이다. 김은 '재산적 운명론'을 내세워, 일제에 협력한 지식인들에 대한 윤의 매도를 비판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변호하고 나섰다. 

재산적 운명론이란 경제적 조건에 따라 대일 협력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거부할 수도 있었다는 것. 
윤 같은 사람이 대일 협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돈 많은 부친을 만나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 때문이었으며, 나처럼 끝까지 직장을 붙들고 있는 일 밖에는 달리 생계의 방편이 없던 사람들로서는 직장을 버려가면서 양심을 고집할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는 취지였다. 

나 같은 지식인들이 대일 협력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조건상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선택이었다는 취지였다. 

채만식이 자전적 소설 형식을 통해 들려주고자 한 속내는 분명하다. 
어찌어찌 운 좋게 친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해방되자 무슨 지사나 되는 듯, 죽기를 한하고 오욕의 삶을 견뎌온 사람들을 향해 마구잡이 돌팔매질을 해 대는 세태에 대한 비판이며 항변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최근에 실시된 한. 미. 일 군사 합동훈련을 시비하며 또 친일몰이 욱일기 장사를 한 모양이다.

'한미일 군사 훈련은 극단적 친일이다. 일본군이 한반도에 진주(進駐)하고,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일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 일본의 자위대가 연달아서, 그것도 독도 근처에서 실전 훈련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하는 얘기 아니냐.'
그 의도가 물속처럼 들여다보이니 무책임한 선동 정치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거대 야당의 대표라는 사람의 발언치고는 너무나 치기가 만만하여 되뇌기도 부끄럽다. 

남이고 북이고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핵무기를 개발해 놓고 하루가 멀다 하게 군사적 도발을 일삼고 있는 북한의 위협 앞에서 '대권'을 욕망하는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관성화한 '대한민국 부정'의 근거로 소환된 친일 몰이가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으니 머리가 흔들린다. 

학문이 깊지 못한 보통의 사람일지라도 역사를 그렇게 망령되이 재단하지는 않는다. 친일 몰이가 아주 불순하고 온당치 못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해방 후의 평화 시대를 살면서 식민주의 폭력을 죽살이로 견뎌야 했던 사람들의 행적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앞에서 살핀 「민족의 죄인」에서 돈 많은 부친 덕에 친일의 덫을 피할 수 있었던 윤이 가난해 '목구멍이 포도청'인 나의 마지못한 부일(附日)을 타매할 수 없다는 김의 주장이 그것이다.  

또한, 친일을 '절대 악'인 양 선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난도질하고 있는 '친일파'중에는 과(過)보다 공(功)이 더 큰 사람이 허다하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저들이 친일파의 화신인 양 곧잘 선동 메뉴에 올리는 이광수와 최남선만 해도 그렇다. 

그들이 투신한 독립운동의 공적만도 친일의 과오보다 크거니와, 이 땅의 문명화와 선진화에 기여한 공적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큰 공적은 애써 모르는 체하고 작은 과실만 들춰내어 모욕하는 것은 온당치도 않고 지혜롭지도 못하다. 

사람은 말과 달라서 채찍보다는 당근에 더 잘 고무된다. 작은 것 부풀리고 없는 사실 만들어가며 영웅 만들기에 힘쓰는 미국인들에게서 배울 만하다. 

뺄셈의 정치보다는 더하기의 정치가 국익에 부합한다는 점에서도 친일 몰이는 이제 그만 지양돼야 한다. 사려 깊지 못한 친일 몰이는 공동체의 분열만 조장하고, 분열된 조직으로는 외부의 도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극복해야 할 난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원치 않는 시련들이 파도치듯 밀려드는 정세 속에서 지금만한 부와 평화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국론의 분열을 최소화해야 국력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겠나.  

정략적 선동 수단에 지나지 않는 정치권의 친일 몰이, 이제 그만 식상할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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