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발행인 / 뉴스티앤티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의 상징은 용서다. 크게는 포용이다.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반발하다가 무려 27년이나 옥고를 치렀다. ‘살아있음’을 감사할 만큼 평생을 육체적 고난과 탄압으로 살았다. 그런 그가 1994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된 첫 일성으로 ‘보복은 나에게서 종지부’라며 모두를 끌어안았다.

그는 가해자들에 대한 용서로 그치지 않았다. 정적들을 고루 등용하며 먼저 화해를 청했다. 괴롭혀 온 전임 대통령인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는 아예 대리인으로 기용했다. 클레르크는 가장 혹독하게 흑인을 차별했던 대통령이다. 그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저주대상이었다. 클레르크가 이끄는 국민당(NP) 소속 정치인과 관리 5명도 장관에 앉혔다.

총살도 시원찮은데 주요 각료에 앉히니, 연일 자파의 공세가 거셀 수밖에 없었다. 만델라는 국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의 호소였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만델라는 흑·백인종간 피의 보복을 끝내야한다고 외쳤다. 그는 남아공을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사는 다민족 국가로 건설하려는 리더의 모습에 세계가 감동 했다.

오늘은 제19대 5·9 대선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선거를 통해 새 대통령을 뽑는다. 혼란한 정국과 대내외의 어려운 환경을 맡겨 추락한 국격 회복은 물론 국운을 맡겨야 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라의 미래를 맡길 책임자를 뽑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이미 지난 5일 마감한 사전투표에서 역대 보기 드문 유권자의 관심이 쏠렸다. 무려 1107만 명, 전체 유권자의 27%에 가까운 국민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 성숙된 시민의식의 단면이다. 더 이상 나랏일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식을 생생히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때문에 오늘 선거는 73%에 가까운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우선 투표를 포기하는 일은 기울고 있는 나라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 찍을 사람이 없다 해서 기회를 포기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이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 해서 투표장을 찾지 않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타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대신 꼼꼼히 살펴야 한다. 다시 선거 공보물을 꺼내놓고 후보를 찬찬히 살펴보라. 후보들의 공약은 무엇이며, 후보들이 나라를 위한 지향점이 무엇인지 챙겨보라. 대통령을 잘못 선택하면 천하를 잃는 정도가 아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놓인 나라의 명운이 갈리기 때문이다.

입바른 선동이나, 미사여구로 표나 모으자는 후보는 안된다. 개인의 입신영달이나, 당리당략을 위해 표를 얻으려는 그런 후보는 미뤄놔야 한다. 정말, 대내외적 어려움을 직시하고, 문제를 보완해 잃어가던 대한민국의 동력을 다시 살릴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후보들의 공약 중에도 상당수는 ‘허언(虛言)’이라는 사실이다. 유권자 단체들이 내놓은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은 신(神)이 아닌 제대로 이행될지 의문투성이라는 분석이다. 구체적인 재정확보문제라든가, 국민의 동의가 필요한 국가적 문제도 스스럼없이 내놓았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제1순위로 놓고 선택해야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저런 공약을 거두더라도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당연히 국민의 대통합이다. 균열된 국론만 결집하면 안보든, 민생이든, 경제든 외교든 모든 것이 해결된다.

5·9 대선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리 하나 놔주고, 어디 포장도로 갖춰주는 정도의 공약 나부랭이에 얽매일 일이 아니다. 국민이 하나로 뭉쳐 시련을 극복할 것인가, 아니면 갈기갈기 찢긴 국론을 치유하지 못하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남북문제가 초긴장 상태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기가 막힌 외교 놀음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국민통합이 우선 되어야 한다.

대선은 원래 축제여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그렇지 못하다. 본래 올 연말에 계획된 것이, 뜻하지 않게 집권 권력을 둘러싼 치부로 조기에 치르는 것이다. 국정농단 의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씨 사건에 연루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무려 7개월이나 앞당겨졌다.

대선은 대선이라지만 우리의 현주소는 분열과 갈등, 불신과 불안 속에 있다. 인간의 타락한 본성인 사활을 건 생존싸움과도 같다. 정파 간, 지역 간, 세대 간, 이념 간 갈래갈래 찢긴 국론은 이제 만신창이가 되버렸다. 여기서 헤쳐 나오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뿐이다.

하지만 누가 대통령이 된들 우리의 정국은 암울하다. 13명의 후보, 그중에 5당 후보중에서 누가된더라도 정국은 여소야대속에 국정을 끌고 가야한다. 새 대통령이 공약대로, 내놓은 정책대로 나라를 이끌 수 있을까.

현재의 의석수대로라면 야당과의 협치 없이 새 정부의 국정 운영을 위한 입법 조치는 불가능하다. 국회 협조 없이 국무총리 둥 초기 내각 구성은 원천적으로 어렵다. 거기에다 안보와 경제 각 분야에 산적한 난제 하나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다.

지금처럼 여야 각 정당이 반대 아닌 반대로 칼끝 대치를 해왔기에 이번 새 정권도 온전할지는 미지수이다. 정파 간 협치 운운하지만 막상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있는 각 정당 의원들이 새 대통령이 소신껏 일하도록 밀어주겠느냔 말이다. 새 대통령의 국정 방향과 목표대로 돕고 협력할지는 넌센스로 보인다.

되돌아보면 첫 현직 대통령 파면으로 이어진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은 국가와 정부 시스템의 붕괴였다. 박 전 대통령의 독단에서 비롯됐지만 기본적으로 청와대와 정부, 청와대와 국회, 그리고 여야 간의 관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의 일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대통합, 탕평인사를 할 새 대통령이 필요한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를 택한 우리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해법이다. 넬슨 만델라의 포용 정치, 그리고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가 집권했을 때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막중한 국무장관 임명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상대당인 공화당에서도 두 명을 초대 내각에 기용했던 일이 생생하다.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했던 로버트 게이츠를 국방장관으로 유임시켰고, 교통장관에 공화당 소속 레이 라후드 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을 임명한 예가 그것이다. 중동문제를 비롯한 국방 업무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내각 구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새 대통령이 뽑히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정파 간 대립이 아니다. 국민이 통합해 난제를 슬기롭게 풀어갈 것인가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는 그렇다면 치열하게 싸웠던 반대편과도 손잡고 가야 옳다. 상대에게도 조각 때 장관 자리를 배분함으로써 연정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델라, 오바마 등등의 대탕평인사가 그리워지는 이유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어느 정당이 승리했느냐가 아니라 나라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적임자가 뽑혔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몫은 유권자에게 달린 것이다. 온갖 갈등과 불신, 불안과 격차를 해소할 그런 대통령을 골라내느냐, 아니냐는 유권자의 부릅뜬 눈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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