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발행인 / 뉴스티앤티

엊그제 미국 뉴욕 특파원을 지낸 선배에게서 들은 얘기다. 미국에는 ‘사장(社長)시험’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회사의 경영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회사를 맡길 사장을 발탁하는 시험이다. 그렇지만 경영학이니, 경제학이니, 세무회계학이니, 조직이론학 등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이나, 리어왕이니, 맥베드 등을 읽고 리포트를 내게 한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읽고 느낌을 말하게 하는 일도 있다. 때때로 대륙을 정복한 징키스칸에 대해 묻기도 하고, 2차대전의 쌍벽이던 연합군의 몽고메리 장군과 나치군의 롬멜 장군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장시험에는 경영학도, 경제학도 없다. 세무회계학, 미래학이나 주식투자학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삶과 생각을 물을 뿐이다. 세계의 분쟁지역이나 험지(險地)나 오지에 고립되었을 때 살아남기 위한 비법을 묻는다고 한다.

엄청난 재난 재해, 대형 사건·사고 등을 소재로 한 영화를 놓고 생존비법을 묻는 일은 필수다. 그중에도 위기에 처했을 때 희망을 갖는가, 좌절하는가의 생각을 묻는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동료들과 극복해 나올지에 대해서도 묻는다고 한다.

세조의 인재 선발법은 유명하다. 그는 인재를 발탁할 때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썼다. 이른바 면접, 구술시험이다. 그는 면접관으로 참여해 응시생에게 ‘인생을 60으로 볼 때 앞으로 여생은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하나’하는 물음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람들 중에 “10년 밖에 남지 않았다”하거나, “10년이나 남았다”고 대답한다. 같은 물음에 같은 대답이라도 10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답변하는 이는 모두 불합격시켰다. 좋은 점수라도 이 물음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낙방했다. 반면 ‘10년이나 남았다’는 이는 모두 합격시켰다.

미국의 사장시험이나, 세조의 인재발탁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희망을 보는 낙관론자를 택한다는 점이다.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은 발전론자다. 세상을 맑고 밝게 본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울 때 밝게 이끌어 갈 수 있다. 어떤 고난과 위기라도 희망과 긍정, 가능성, 화목을 말하는 낙관론자만이 천하의 인재요, 리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자는 다르다. 하찮은 일에도 비관하기 일쑤다. 염려하고 불안해하다가 잘못을 남에게 돌리는데 능하다. 과장과 허위, 그리고 자신의 사익추구에 바쁘다. 비관론자는 성실하고 정직한 이가 탐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럴듯한 말로 선동하여 분열을 꾀하고, 음울하고 불가능하게 만든다.

제19대 대통령선거가 일주일이 남았다. 시답잖은 선거지만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다. ‘대통령감이 없다’는, ‘찍을 후보가 없다’는 선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맘에 드는 후보가 없고 찍을 만한 후보가 없다 해도 주권을 멋대로 던질 수는 없다.

어느새 전 세계 116개국 204개 투표소에서 29만 4,633명이 재외선거를 마쳤다. 투표용지가 인쇄되고 곳곳에서 투표참여 홍보가 무르익고 있다. 오는 4일까지 선상(船上)투표도 치러진다. 후보들과 그 캠프는 마지막 한 표를 얻기 위해 사활을 건다. 동서를 가리지 않고 24시간 금쪽같은 시간을 지지호소로 뜨겁게 달궈가고 있다.

2일 저녁을 끝으로 후보들은 수 차례의 TV토론에서 정책과 공약을 꺼내놨다. 또한, 후보 개개인을 알리는 선거공보물도 배달됐다. 공보물에는 후보들의 학·경력과 재산내역과 공약들이 소개됐다. 후보들을 알 수 있고, 후보마다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다.

그러나 TV토론만으로 후보를 가리는 데 역부족이다. 공보물 역시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처럼 여야 대결도 없고, 지역대립도 약해진 대신 보혁대립과 같은 성향의 후보들이 내가 원조라고 나선 판이다.

유권자는 그래서 눈을 부릅떠야 한다.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에 치러지는 탓으로 정부도, 각 정당도, 후보들도 모두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대선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한반도 정세를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혼돈이 뒤엉키고 심지어 국론까지 갈라져 있다.

그래서 유권자의 몫이 더 크다. 시험대에 오른 후보들의 준비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공식선거 직전까지 선거대책기구조차 꾸리지 못한 그들이다. 꾸역꾸역 공약이나 정책을 짜 맞추다 보니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그저 표만 얻어 당선만 되면 하는 식의 공약과 정책도 수두룩하다. 분야별 공약을 산발적으로 제시했지만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TV토론에서 후보들끼리 설전을 펴며 우겨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철학이 없고 소신이 없으니 설득을 못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선심성이 적지 않다. 게다가 많은 돈이 필요한 데도 구체적인 돈 마련 방법이 제시되지 못한 공약도 허다하다.

국민은 지쳐있다. 우리는 북한 정권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놓여 있다. 한반도 위기 속에 주변 강대국들의 강권이 날로 가속화되는 현실이다. 강대국들의 자국 이익 앞에 약소국 대한민국의 자존심은커녕 생존까지 위협받는 국난 아닌 국난 앞에 있다.

여기에 수 개월 간 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은 화나고 짜증나고 허탈해 있다. 촛불과 태극기로 쪼개져 증오와 분노와 좌절에 휩싸여 있다. 국론은 갈기갈기 찢긴 데다 먹고살기 힘든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져 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웃음을 잃은 지도 오래다.

둘러보면 온갖 분야가 성치 않다. 곳곳이 비관론만 즐비하다. 해결될 수 없는 공약, 비현실적인 정책과 비전인데도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다는 점이다. 편을 갈라 집권하겠다는 후보는 안된다. 끼리끼리 한편 되어 상대를 공격하는 이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낙관론자를 뽑아야 한다. 고르고 골라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적임자가 필요한 것이다. 희망과 가능성을 줄 그런 대통령감이 필요하다. 그 공약과 정책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지 꼼꼼히 따져야 하는 것이다.

건질 것 없는 한국 6.25 전쟁 중의 폐허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이가 있다. 바로 투르먼 美대통령이다. 그는 "비관주의자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낙관주의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어려움도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라며 격려했다.

폐허 앞에 모두 고개를 흔들 때 그는 한국이 반드시 일어선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쳐있는 국민을 위로하고 달래줄 대통령이 필요하다. 당리당략이 아니라, 떨어진 국격과 명예를 되찾겠다는 그런 후보를 골라야 한다. 우리는 그런 낙관론자, 희망을 주는 리더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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