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깃발, 마음’ 어느 것이 움직이는 것일까?

서기 767년, 셈하자면 1,254년 전 중국 광저우의 법성사法性寺- 주지 인종印宗스님이 법회를 열고 있었다. 법대에서 제자와 불자들에게 설법하는 중 일순간 바람이 세차게 일었다. 대웅전 처마 끝 쇠붕어가 요란스럽고, 경내 보살들이 아이들을 감싸 안고, 아름드리나무 가지와 잎새들이 출렁거리고, 범종을 치는 육중한 당목이 흔들거렸다. 잠시 강론이 중단된 가운데 두 스님의 설왕설래 설전이 시작되었다. 저 멀리 당간의 깃발을 보고 벌어진 일이다. 

사찰 초입의 철당간 지주에 높게 내걸린 당幢- 법회나 기도 같은 의식의 개최를 알리는 그 깃발이 펄럭거린 것이다. “바람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아니다. 깃발 자체가 움직이는 것이다!” 사부대중들이 각기 편들고 가세하면서 시끌벅적, 왁자지껄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인종의 주장자拄杖子가 높이 들렸으나 좀처럼 야단법석은 그칠 줄 몰랐다. 그때 한 사내가 일어서며 일갈했다. “둘 다 틀렸습니다...” 일제히 더벅머리 남자를 쳐다보는데 혜능 그의 벼락같은 토설이 이어졌다. 

 

김래호의 글자그림 ‘풍번문답’(한지에 수묵, 46×70cm) / 김래호 제공
김래호의 글자그림 ‘풍번문답’(한지에 수묵, 46×70cm)

“바람도, 깃발도 아닙니다.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 마땅히 그럴 터. 천년바위는 폭풍우에도 미동하지 않는 법. 산중 벌목꾼의 마음은 가없이 시원하겠지만 황금들녘을 일군 농심은 크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녀자들은 널은 빨래가, 학동들은 집에 돌아갈 일이 큰 걱정거리다. 모반을 꾀하는 무리들은 “바람아- 더 거세게 불어 이 세상 죄다 쓸어버려라!” 고무될 것이다. 때때로 그 속내가 뒤바뀌거늘 마음과 바람, 깃발이 한 덩어리인데 집착과 아집으로 불통하며 살아갈 일이냐... 

혜능(638-713)- 선사는 남쪽 오랑캐의 땅으로 불리는 신주 사람으로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땔나무 장수로 홀어머니를 모시며 가계를 꾸려가던 참이었다. 하루는 나무를 부리고, 맞돈을 챙겨 나서는데 안채에서 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그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일으켜라!” 바람이 전하는 『금강경』의 그 구절이 젊은 나무꾼의 마음을 사시나무 떨듯 요동치게, 배롱나무 간지럼 타듯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어떤 경전을 읽으셨는지요. 꼭 알고 싶습니다... 집주인은 은 열 냥을 주면서 모친이 홀로 지내실 방도를 찾아보고, 남쪽 5조五祖 홍인弘忍대사의 서산으로 향하길 권했다. 

“너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고자 하느냐?” 5조의 하문에 자초지종을 털어놓은 혜능은 단도직입 “부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답했다. 대사가 슬그머니 떠보았다. ”신주면 오랑캐 땅인데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불성무남북佛性無南北- 그날 이후 8개월 남짓 불목하니로 지낸 혜능. 5조는 회랑에 공고문을 내걸었다. ‘마음밭을 일구는 큰 게송을 짓는 자에게 의발衣鉢을 전하리라!’ 수제자 신수가 즉각 응했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 같고 / 마음은 밝은 거울 바탕 같은 것 / 틈틈이 부지런히 닦아야 하리 / 때 묻고, 먼지 앉지 않도록”

사실 혜능은 일자무식 글자를 몰랐다. 다만 풍문으로 전하는 그 내용이 탐탁지 않아 장별가라는 사람에게 써 달라 부탁했다.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요 / 마음 거울 또한 틀 위에 놓인 것이 아니다 /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 어디에 때가 묻고, 먼지가 앉는단 말인가: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5조는 혜능에게 은밀히 의발을 전해주며 신신당부했다. “남쪽으로 내려가 불법을 널리 전하거라. 다만 3년 동안은 입을 열지 마라. 곧 환난이 닥치기 때문이니라.” 선종의 1조 보리달마가 인도에서 “동쪽으로 간 까닭은?” 그 법통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김래호의 글자그림 ‘풍번문답’- 깃발 ‘번’ 부분 사진
김래호의 글자그림 ‘풍번문답’- 깃발 ‘번’ 부분 사진

인종스님은 ‘풍번문답’이 벌어진 자리에서 직감했다, 소문으로 들은 바 십여 년 전 5조로부터 법을 전수받고, 남쪽으로 내려갔다던 6조 그가 틀림없다... 그대가 수법자일 터 가사와 발우를 내보이거라... 인종이 여쭈었다. 5조께서 전하신 불법의 요체가 무엇인지요? 불법시불이佛法是不二: 불법은 둘이 아닌 도리- 

신앙과 신학은 동체이명이다. 대물림 신앙으로 믿음 위에 신학을 더하거나, 신학을 통해 신앙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인 어머니 영향으로 유년부터 연보를 쥐고 교회에 다녔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75년 여름방학에는 자발적으로 삭발을 하고 공주 마곡사로 가출했으며, 방송사 PD 15년 차이던 2003년 3월 3일에 대전 송촌성당에서 토마스로 영세를 받았다. 

기불천基佛天- 1982년 3월 12일, 전두환 5공정권하의 학적변동자로 육군 32사 훈련소에 입대했는데 법무부 경비교도대로 차출되어, 청송보호감호소에서 ‘흉악범’들과 군복무를 했다. 그때 무기수 한 노인이 ‘벽에 갇힌 사람들’의 일반적인 간증을 들려주었다. 그들은 신神을 부정하다가 얼마간 세월이 흐르면 기독교를 믿기 시작해, 법당 석가세존을 알현하다가, 성모님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

나는 나이가 들면서 그 참회의 알짬을 서서히 깨달았다. 불이문- 하나의 여럿, 여럿의 하나: 그것은 오로지 저마다의 마음이 내는 길일 따름인져... 아무튼, 좌우지간 불기 2526년 부처님오신날(5월 19일)을 봉축한다. 불국에서는 축하 연등의 크기가 다르지 않다. 시방삼세- 영원한 부처 앞에서는 누구나 마음이 가난한 빈자들이다. 신앙이나 신학 어느 편이든 저마다 마음의 크기로 봉축 등이 밝혀질 뿐이다. 

 

김래호의 글자그림 ‘반가사유상’(한지에 수묵, 46×70cm)
김래호의 글자그림 ‘반가사유상’(한지에 수묵, 46×70cm)

아시기성불我是己成佛 여시당성불汝是當成佛- 석가모니 불교학의 본령이 그것이다. “나는 깨친 부처요, 너희들은 마땅히 깨칠 부처다!” 나와 너, 우리 모두는 부처. 하여 임종 게송은 더욱 선연하다. 여시아문: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나는 지금 육체를 떠나 삼계의 괴로움을 떠나려 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대들 자신을 밝은 등불로 삼고, 부처님의 법과 계율을 밝은 등불로 하여 부지런히 게으르지 말고 해탈을 구하여라!    

반드시 나는 밥상 앞에서는 성호를 긋고, 때때로 싯다르타Siddhartha의 자세 취하기를 좋아한다. 바로 우리나라 국보 제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그 모습이다. 먼저 의자에 앉는다. 오른다리 발목을 바투 왼쪽 무릎에 걸치고, 상체를 얼마간 기울이고, 오른손을 오른 무릎에 놓으면 자연스레 오른손 두, 세 번째 손가락이 오른 뺨에 닿게 된다. 왼손은 편한 대로 놓으면 그만인데 이때부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눈은 반쯤 감고, 혀끝을 입천장에 붙이고, 들숨과 날숨은 촛불이나 문풍지가 날지 않을 정도로 코로 쉬어야만 한다... 생각이 멈추는가? 사유가 더욱 솟구치는가? 무명 걷고, 쫓아내는 대광명 그 환한 빛이 보이는가? 일초직입여래지-

 

(좌)금동보살반가사유상, (우)금동반가사유상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좌)금동보살반가사유상, (우)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1945년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1883-1969)가 일본을 방문했다. 교토 광륭사에 안치된 일본 국보 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 그는 한국의 ‘사유상’을 빼닮은 그 목조불을 배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이 세상에서 인간존재의 가장 정화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상만큼 인간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야스퍼스는 서구 지성의 중심축인 ‘이성’의 한계상황을 절감하고 초월하는 포괄자를 주창했다. 어렵다면 주석서를 읽어보길 권한다. 야스퍼스와 동시대의 대문호 헤세(1877-1962)가 45살이던 1922년 펴낸 소설『싯달타』-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를 존중하는 당신에게 장애가 되는 것은 아마 그 숱한 말일 거요. 해탈이니 덕이니 윤회니 열반이니 하는 말은 모두가 말에 지나지 않소. 고오빈다, 실은 열반이라는 것은 없소. 단지 열반이라는 말이 있을 따름이오.    

혜능은 짜장 글자를 전혀 몰랐기에, 미처 수계조차 받지 못해 6조에 올랐을지도... 『육조단경』은 혜능선사의 마지막 모습을 간명하게 전한다. 고향 신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속히 배를 손질하여다오... 이제 떠나시면 언제 돌아오십니까?... 잎사귀들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듯이, 돌아올 때는 내 입이 없으리라!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거듭 봉축하고, 온누리에 가피가 퍼져 진정 이 땅이 평화롭고 안온해지기를 발원합니다. 또한 저마다 비손하는 소원 이루어지시길 기원합니다. 자꾸, 연달아 마음의 길 내고 바라고, 바라면 회두리에 ‘바람’이 그리로 장하게 불고 말 것입니다. 토마스 합장! 

 

김래호 작가
김래호 작가

’글자그림 이야기‘의 김래호작가는 1959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대전고, 충남대 국문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대전MBC와 TJB대전방송, STB상생방송에서 프로듀서를 역임했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2020년 제20회 전국추사서예휘호대회 한문 부문에 입선했다. 산문집 『문화에게 길을 묻다』, 『오늘- 내일의 어제 이야기』를 펴냈고, 현재 고향에서 사람책도서관 어중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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