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순

주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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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에 대한 얘기는 어렸을 때 동화책이나 도덕교과서를 통해서 세기를 불문하고 등장하는 얘기라 누구라도 알고 있어 날마다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겠지요?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기술>이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형제애는 우리는 모두 하나, 가족 간의 사랑을 넘어선 모든 사람 간의 사랑이고 배타성도 없고 특히 형제애는 박애(博愛) 정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황 프란체스코는 인간은 관계적 존재라 형제자매라고 칭했고, 또한 불교에서는 형재애를 "연기(緣氣)"라고 했더군요. 즉, 모든 존재는 서로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형제라는 끈으로 엮는데, 이 말에 반한 중앙아시아엔, 극명하게도 ‘공명조(共命鳥)’ 라는 새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이 새는 머리는 두 개, 몸은 하나인 전설속의 새입니다. 한자어를 풀이하면 ‘목숨을 같이 하는 새’ 라는 뜻인데, 한 새는 낮에 자고, 한 새는 밤에 자기 때문에 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새가 다른 새를 죽이려고 독약을 먹였는데, 결국 같이 죽었다는 얘기고, 결국은 너 죽고 나 살자는 이기심은 같이 죽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결국 이 얘기는 서로 한 몸이라는 것을 성찰하지 못해서 일어난 슬픈 비극이라 할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남자 형제만 세 분이십니다 .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그때 아버지가 장남으로 10살 특히 막내는 엄마 젖을 떼지도 않은 상태로 돌아가셨으니 배를 많이 곯고 살아오신 겁니다. 얼마나 힘들게 사셨을지는 느낌으로도 알 수가 있지요. 어릴적엔 일 분 일 초라도 부모님 눈밖에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당장 아들 삼형제가 생계를 이어야 했으니 지금 제가 생각해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 제일 중요했을 거라 생각 됩니다.

한마디로 세간에서 말하는 부모님 복이 너무없이 살아 오신듯 합니다.

제가 살면서 아버지에게 제일 많이 들은 얘기는 형제애에 대한 얘기와 절약, 그리고 공부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 다음은 "우리 3형제는"이라는 단어 인듯합니다.

아버지가 공부를 너무나도 하시고 싶어 학교를 동네 친구따라 갔답니다. 그런데 한 선생님 눈에 띄어 좌석 한 자리 얻어 앉아 공부를 공짜로 배웠는데 유독 머리가 좋아 선생님 칭찬에 즐거움을 얻긴 했지만, 그 당시도 기성회비(공부배우는값)는 내야 했던 겁니다. 그래서 학교를 못 나가고 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셔서 가정환경을 보시고는 너무 놀라고 불쌍하게 여기셨는지 동생들도 데리고 같이 학교에 오라고 선생님이 도와주겠노라고 말씀하시고 가셨답니다.

집에는 쌀은 구경도 못하고 숟가락만 있으니 선생님께선 생각이 얼마나 많으셨을 건지 눈에 선합니다. 누구라도 그런 가정형편을 보았다면 최근 TV에 자주 보이는 아프리카에 사는 어린이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소금장수가 그릇을 이고 오면 손에 물 바르고 소금 휘휘 저어 그 손을 물에 헹구어 먹을 정도로 없이 살아왔답니다.

선생님 허락 하에 산을 넘고 계곡을 넘어 40리 길을 공부한다고 가면 선생님께서는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꼭 한 개 주시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그러면 그것을 그 어린 나이에도 동생 생각에 안 먹고 집까지 가져와서 먹자고 내 놓았답니다.

막내는 철이 없으니 허기진 배만 생각하고 혼자 먹다가 어느 때부턴가 형이 눈에 띄던가 봅니다. " 형도 같이 먹어" 했다합니다. 그러면 형제 셋이 앉아 도시락 한 개를 가운데 놓고 서로 배부르다고 학교에서 먹고왔다고 거짓말하며, 동생 먹이고 찬물로 헛배 불리고, 시간만 나면 도랑이나 계곡에 나가 다슬기 잡어 옆집에 갖다주고 보리쌀이라도 조금 바꿔다가 양을 늘리려고 물 두 바가지에 소금 조금 넣어 마시며, 틈만 나면 동네에 있는 남의 집 힘든 일 찾아 해 주고 쌀 조금 얻어다 연명하셨답니다. 공부는 선생님께서 연필하고 노트하고 사 주시는 걸로 했는데 생계 해결 때문에 다슬기나 산속에 가서 풀뿌리라도 캐러 다니느라 공부를 띄엄띄엄 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초등교도 졸업 못하고 독학으로 한글과 한문을 틈틈이 공부하셨답니다 .

첫째와 둘째는 하루의 먹거리라도 위해 뛰고 막내만은 지금의 고등학교까지라도 가르쳐 보자며 두 형제가 희생하여 결국 졸업 시키고 지금은 세 분의 형제가 살아계셔 구순을 바라보고 있는데,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하여 세분 다 치매를 앓고 계시며, 귀도 안 좋아 통화도 불가능하시고 이제는 '우리3형제'란 단어도 듣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답니다.

세월이 야속하지요. 열심히 발버둥친 세월만은 보상을 해주면 좋을 텐데요.

타인간의 생활도 서로 같이 살며 정들면 형제자매가 되는데, 그런 힘든 역경을 한 부모님의 뱃속에서 나와 셋이서 이겨왔으니 오죽 애틋할 건지. 저는 집안의 장녀이며 장손녀로서 많은 교훈을 얻고 살았고, 형제애에 대한 특별한 기억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아버지 3형제의 닮은 점은 너무 가난하고 못 먹고 자수성가로 이룬 집안이다 보니, 세 분다 절약정신이 엄청나게도 강하십니다. 형제우애 관계는 전국신문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정도구요.

아버지는 지금까지 사시면서 돈을 버셨지만 지금도 막걸리 한 병 사실 때 50원이 싸다는 슈퍼까지 가서 사 오라고 하시고, 그 집에 막걸리가 없으면 다시 입고 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사다 드십니다.

아버지는 가난을 절대로 대물림하지 않으시려고 평생교육을 실천으로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절약을 너무 강인하게 하실 때마다 부정적인 모습으로 맞서왔지만 "결국 피는 못 속인다"는 속담도 있듯이 저의 남매들도 모두 절약정신이 배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산 교육 덕분입니다.

저는 사업을 하는 내내 직윈들에게도 절약을 강조하며 가르치려 노력해 왔습니다. 처음엔 저도 절약이라는 것이 남의 평가를 느껴보면 억척스럽게 보이고 초라해 보여서 아버지 속이고 절약하는 척하며 살아 봤는데, 언제부턴지 실제로 계산을 해 보게 되더라구요.

천 원만 싸게 사도 휴지가 3개나 생기니 말입니다. 옛어른들 말씀이 "땅을 십리를 파 보아라 10원이 나오는가" 라는 말이 꼭 맞더라구요. 교통카드 10원만 부족해도 탓다가 도로 내려서 걸어야 되는데 말입니다. 이처럼 절약정신은 1원부터라 내 손이 작은 듯하나 숫자상으로도 1원 빠지는 일억은 없쟎아요?

지금의 독일은 부자나라지만 제2차 세계대전 후엔 성냥개비 한 개를 불을 켜서 세 명이 썼답니다. 그러니 사소한 절약정신이 애국자를 만드는 거겠지요 .

제가 살아오면서 부모님을 보고 느낀 것은,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고, 학구열이 높아 그 어린 나이에 배가 고파도, 막내 동생만이라도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키고, 평생 절약을 강조하고 실천하며 사셨다는 겁니다.

형제간의 우애.

서로나누면서 오가는 따뜻한 사랑에서 온다고 합니다. 서운한 것이 있었더라도 그래도 형제자매입니다. 어떨까요? 죽을 때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는 돈 때문에 형제자매가 싸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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