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순
주종순

인연이란 참 소중한 것이다. 사회생활 역시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다르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애써 잡을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최고 남쪽에 마라도가 있다. 마라도 옆에는 마라도보다 조금 더 큰 가파도가 있는데 이 가파도는 청보리 사잇길로 유명하다. 또한 이 섬은 모슬포항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데 우리나라에서 최고 키가 낮은 섬으로 바다 높이와 같고 둥근 방석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곳이다. 공기가 좋아 탄소 제로섬으로 선정되고, 주민도 별로 보기 힘들고 낚시꾼들의 발걸음이 잦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우체국이나 슈퍼 한 곳도 없고, 몇 명 안 되는 경찰이 근무하는 지구대와 보건지소, 그리고 가파마라도 분교, 요즘 들어 생긴 커피숍 2개, TV프로그램인 ‘카메라 24시’에 몇 번 촬영된 해물짜장집이 있다.

이런 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 중 춘자 언니가 그 섬의 한 사람으로 해녀 생활을 평생 하시면서 살고 계시다. 언니는 4명의 아들딸을 대학까지 졸업을 시켜 학사모 쓰고 찍은 사진을 벽에 나란히 걸어 놓고 본인의 인생을 훈장 단 듯 자랑스러워하시며  그것을 낙으로 삼고 살고 계시다. 남편을 젊은 나이에 사별하고 노후된 통통배 한 척 타고 바다 한가운데서 실종신고로 위기까지 겪으며 지금은 자식 모두 결혼시켜 육지로 분가시켜 잘 살고 있다 했다. 지금 언니는 손자손녀 사탕값 벌고, 며느리, 사위, 자식들 화목한 것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내가 맺은 인연 중 가족보다 더 친근하고 믿음직스러운 인물 춘자 언니. 내가 언니를 알게된 것은 마라도를 가려고 계획하다 우연찮게 엉뚱한 전화번호 돌린 덕분에 춘자 언니를 알게 된 것이다.

 

춘자 언니!

난 사람을 잘 못 사귀는 타입인데 그 언니도 역시나 마라도에서 태어나 가파도로 시집와 평생 해녀로 투박하고 무뚝뚝하고 가무잡잡한 피부에 파도소리보다 소리가 더 큰 오토바이로 붕붕 타고 날아다니며 식당도 하고, 밭도 가꾸고 낚시꾼 민박도 하고, 그러면서도 언니는 혼자 지내는 우리같은 도시 사람에겐 로망이 되는 빨강지붕에 사방이 돌담길과 밭 사이에 토담집을 짓고 사신다.

집 창문을 열면 파도소리, 바람소리, 바다 냄새, 거기에 파도가 일렁이는 사면이 바다가 보이고 위로는 푸른 하늘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밤에 창문을 열면 저 멀리 도깨비불 반짝이는 갈치배, 오징어배, 그 뒤로는 불빛만 모여 반짝이는 대정리 모슬포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가파도는 풍광과 바다 냄새와 파도 소리 때문에 도시의 생활을 아득하게만 하는 그런 별천지며 그림같은 곳이다.

내가 그곳을 10여 년 전부터 바다가 보고 싶고 낚시를 하고 싶을 때마다 다니면서 춘자 언니를 알게 되었는데, 한번 가면 도시로 오기 싫어 거의 5~15일씩 머물다 오곤 했다.

어느 날 난 언니에게 집도 여러 채가 있으니 단독채는 나에게 팔라고 했다. 언니는 뭣하러 섬 속에 집을 사냐면서 이 세상에 있는 날까지 내 집이라 생각하고 무료로 쓰라고 했다.

정말 없으면 못사는 이 세상을 억척같이 해녀질로 내놓을만하게 자식 다 키우더니 인심도 넉넉하게 베푸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내가 간다고 연락을 하면 언니는 이부자리 햇빛에 다쏘이고 냉장고에 먹을 반찬, 쌀, 양념, 손수 재배한 야채까지 다 채우고, 전자제품 손색없이 정돈해주고, 식수 중에 최고인 삼다수까지 장만해주신다.

참 고마운 언니, 어쩜 그리 심성이 너그럽고 맑으신지...나에겐 큰 복이다.

 

이젠 겨울이 지나가고 따스한 봄날이 왔다. 가파도엔 그리운 언니가 있다.

그동안 너희들을 잡으려는 바닷속의 물고기 녀석들도 내가 없어 여유로웠겠지. 이제 내가 간다 긴장해라 귀여운 고기들아.

 

보고 싶은 춘자언니!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랑(Love), 친구(Friend)라고 하지요.

언니, 이제 조금만 지나면 갑니다.

우리 못다한 인생 얘기 또 준비하시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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