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대 (전) 국회의원 보좌관

고현대 (전) 국회의원 보좌관
고현대 (전) 국회의원 보좌관

우리나라에는 약 400여 종의 농산물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 단 두 가지 농산물만이 법으로 특별히 보호받고 있다. 우리의 주식인 쌀은 양곡관리법으로 관리되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이 고려인삼의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제정된 인삼산업법이다.

인삼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국가적 상징성과 전통을 함께 지닌 작물이다. 그러나 정작 금산군이 최근 보여주는 행정 행태는 그 위상에 전혀 걸맞지 않으며, 오히려 그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9월 19일부터 28일까지 열린 금산인삼축제는 개최 시기부터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인삼은 늦가을, 잎이 떨어지고 수분이 뿌리로 내려가야 사포닌 함량과 중량이 충실해지는 작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잎이 아직 푸른 시점에 축제를 강행한 것은 고려인삼 유통 종주지로서의 금산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9월에 유통되는 인삼은 대부분 수해나 고온으로 인한 죽병 등 병충해로 조기 채굴된 경우가 많다. 정상적인 수확철도 아닌 시점에 조급히 출하된 인삼을 축제장에 내놓는 것은 소비자에 대한 기만이자 농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행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금산군이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농민과 소비자들을 오히려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이번 축제는 ‘행사를 위한 행사’에 불과했다. 본래 인삼축제는 추석을 앞두고 선물 수요가 몰릴 시기에 소비를 유도하고, 10월 말 대량 출하 시점에 가격 안정과 대량 소비를 연계해야 그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금산군은 이러한 합리적 선택 대신 보여주기식 행정에 몰두하며, 실질적인 농가와 지역경제의 이익은 외면했다.

전국의 대부분 축제가 10월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산군은 굳이 9월 개최를 고집했다. 이는 인삼축제가 다른 축제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피하려 했던 ‘꼼수’로 보인다. 또한 축제 기간을 억지로 10일간으로 늘려 토요일과 일요일을 두 차례 포함시킨 것은 명백한 예산 낭비이며, 축제의 집중도와 실효성 모두를 떨어뜨리는 결정이었다.

금산군 행정의 ‘행사 중독’은 이미 도를 넘었다. 매달 축제를 열어야 군정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행정력과 재정이 낭비되고 있으며, 남는 것은 피로 누적된 공무원들과 바닥난 재정뿐이다. 군민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은 뒷전이고, 보여주기식 무대만 늘어나고 있다.

금산군수는 10월 중순 열리는 캘리포니아 K-인삼의 날 행사 참여를 위하여 지난 14일 출국했다. 그러나 이 행사는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의 지역구 내 한인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한 행사일 뿐, 금산군이 참석해야 할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북미는 화기삼의 종주국으로, 2024년 기준 미국 시장 내 화기삼 점유율이 무려 80.1%에 달한다. 금산 인삼의 존재감은 사실상 미미한 수준이며, 이 같은 시장 구조 속에서 금산군의 참석은 실익 없는 외유로밖에 볼 수 없다.

군수가 이러한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은 군민 세금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보여주기 행정의 단면이며, 오히려 공무원들의 필수 경비(사무관리비·공공운영비 등)를 확보하는 데 써야 할 예산을 소모하는 결과를 낳는다.

군수는 최근 3번이나 미국을 방문하는 등 명분 없는 해외 순방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는  파탄 직전의 재정 상황에서 무책임을 넘어 행정의 본질을 망각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금산군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해외 순방이 아니라 지역 현안을 바로잡는 일이다.

백삼 시장 활성화, 연근제 폐지, 약사법 독소조항 개선, GAP 인증 인삼의 판로 확대, 생산시설 확충과 경작 기반 강화, 고령 농가 지원 등 시급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외면한 채 보여주기식 행사와 명분 없는 외유만 반복한다면 금산 군정에 대한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말했다. 지금 금산군에 전하고 싶은 말은 이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 “바보야, 해외순방이 아니라 금산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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