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규대사, 그 재능을 따를 자 없었다
영규대사, 그 재능을 따를 자 없었다
  • 박기봉 기자
  • 승인 2019.04.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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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적 탐방] 영규대사묘 - 충남 공주시

영규대사묘

충남도 시도기념물제15호 (1977. 1. 6 지정), 충남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번지


승병장인 영규대사의 묘소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사무소에서 계룡산 갑사(甲寺) 진입로를 조금 지나 오른편에 위치한다.

영규대사는 밀양 박씨로 호는 기허(騎虛)이며,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이다.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하면서 무예를 익혔는데 그 재능을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3일 동안 통곡하고 스스로 승병장이 되었다 한다. 승병 1천명을 모집하여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청주성 전투와 금산 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다.

의주까지 피난을 갔던 선조는 승전소식을 듣고 영규대사에게 벼슬과 옷을 하사하였는데, 하사한 선물이 도착하기도 전에 금산 전투에서 숨을 거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이 일어난 것은 그가 최초로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일어나는 도화선이 되었다. 영규대사는 부상한 몸을 이끌고 현재의 묘소 부근까지 와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해발 150m의 산록 경사면을 깎아 만든 묘소는 최근에 봉분, 축대, 계단 등의 시설을 보수공사 했다. 묘비는 순조 10년(1810)에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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