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순

김옥순

산수.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수학공식에 끼워 맞추는 것도 지지리 못알아 듣고 더디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배끼는 거만 할 쭈 안나보다.

맨날맨날 졸다가 칠판 지우개로 퍽퍽~. 정수리 한가운데가 희뿌예 가지구 복도를 종횡무진 세계사 시간엔 몽당 분필이 날아 오고. 눈까풀이 감기니. 도시락 미리 까 먹다 들켜 남의 교실로 도시락 이구 한바꾸 돌구 오란 선생님의 명 떨어지구 챙피한 거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울 아부지는 맨날 밭에만 델꾸 나가서 감자 심자. 고구마 심자 배추 뽑아 군납하자.
무 뽑아 군납하자 한 자루 사십키로씩 묶어 경운기에 실어 나를 수밖에 없다. 남자도 시동걸기 어려운 경운기 시동도 다 걸 줄 알구. 나 이래뵈도 연약한 여잔데 보호 받는거 따윈 한개도 없다.

허 참 ~!!!
콩 따자. 팥 심자. 논에 나가 물 대라. 피 뽑자. 타작 하자.
햐 ~~
지금 생각하니 기가 막히다. 쌀 수매 하자. 
아부지요. 나~ 딸이여요~ 여자라구요~

가물어 채소가 풀 죽어 있으니 물 줘야 한다. 온공일 반공일엔 총 동원령~!
소 여물 끓여대야지. 누워계신 할머니 머리 감겨 드려야지. 일찍 일어나 깡통 들고 논에 새 쫓아라. 다 쫘 먹는다.
워이 워이~!! 땅땅땅땅~~~~
허수아비 세워 놔 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놈의 참새 새끼들은 왜글케 일찍 일어나는지. 논두렁을 강아지 뛰듯 뛰 댕기고.

공부할 새 있겄나~ 그러니 맨날 공부시간에 졸지. 칠판지우개로 퍽퍽^^
영어 선생님 브이 아이 씨 티 오 알 와이. 놀려 대신다. 속상하지만 친구들에겐 웃음을 줬다. 덕분에 졸던 애덜 잠은 확 깨고.

지가 공부 안하고... 이제와서 아부지 핑계~! 잘했으면 아부지가 그러시질 않았겠지. 근데 ~ 난 공부가 하고 싶었다구. 당췌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걸. 남덜보다 늦되는 걸 내가 억지루 어쪄! 누가 일찍 핵교를 보내래. 아부지 그래도 사랑해요.
지금 이렇게 결혼해서 어엿한 행복한 가정 꾸렸으니.

이런 일도. 있었지.
친구들이랑 한창 놀고 싶은 사춘기. 온공일마다 아부지한테 붙잡혀 밭에 나가 옆에 개울에서 빠께스로 양팔에 낑낑 물 길어 가뭄에 시들어 축 처진 배추 모종에 수줍은 여학생 허리춤 허옇게 드러내고 엎드려 물 주느라 여념 없는데.

고딩때 생물 선생님이 밭에까지 땡볕에 자전거 타고 찾아오셨다. 어찌 우리 밭을 아셨는지.

참나... 구세주다.
너른 버덩에 밭마다 찾아 들어가 여가 옥순이네 밭이냐고 물어물어 찾으셨다고.

선생님 발표할 과제 챠트를 써 달라고 불러 내신다.
울 아부지 난감하신 그 표정. ㅎㅎ 아싸 대빵이다. 손에 든 물 주전자 내동댕이치고.

그 너른 밭을 순식간에 성큼성큼 동물의 왕국에 어떤 동물이 (무슨 도마뱀 종류라는데) 양팔을 니은(ㄴ) 자로 세우고 두 다리 벌려 겅정겅정 뛰듯 볼썽사나운 모양새로 그렇게 밭이랑을 뛰어넘어 나온..... ㅋ.

밭일보다 아부지 시선을 피해 어찌 됐든 밭을 벗어나는 그것이 더 좋았던....
아예 대학을 못간다 해서 문과 상과 중 상과를 택하다 보니.
또 ~
학교 일도 도맡아 하는~^^어디까지나 순일꾼. 
얄궂다. 일이 기다리고 있다.

이래도 일. 저래도 일. 결혼해서 신혼 초엔 쌀장수. 연탄장수. 콧구멍이 시커멓토록 배달.
참나~^^♡
살아냄이 자랑스럽다.

내가 미숙할 땐 이런 일들이 투정이고 복없는 사람인 것 같아 풀죽어 있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 복이라 여겨진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혹독히 훈련되지 않았다면 지금을 이겨낼 수 있었을지 비로소 복을 연상하게 된다. 잘 살아냈다.

이제 어른이 되어가나보다. 귀하게 여겨지는 걸 보면. 참 귀한 옥순이. 모든 게 감사하다. 마구잡이로 끄적여 보니 먹먹해져 오기도 하고,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

 

김옥순
김옥순

사진은 아들이 커피 주문하는 사이 셀카 조오기 뒤태가 보이는 젊은이가 내 아들이다.

저작권자 © 뉴스티앤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