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언복 전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표언복 전 목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출산(出産)'이라는 말, 그건 일본식 한자 말이다. 우리식 용어는 '해산(解産)'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기 낳는 일을 두고 '몸을 푼다(解)'고 했지 아기가 '나온다(出)'고 하지 않았다. '결혼'도 그렇다. 우리식으로는 '혼인'인데 일본어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냥 '차(茶)'일 뿐인 우리말이 일본어 '녹차(綠茶)'에 밀려난 것도 마찬가지다. '토착왜구'란 말까지 지어내며 '친일'이라면 경기를 하는 선동꾼들이 왜 이런 현상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지 모르겠다.    

옛사람들은 자식을 낳아 집안의 혈통을 잇는 것이 사람의 가장 중요한 도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폐백상에 대추가 오르고, 제사상에도 대추가 빠지지 않았다. 대추는 다산(多産)의 상징이다. 아들 딸 많이 얻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의 표현이다. 아이를 잘 낳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여자의 미덕이고 의무였다. 여자에게만 쓰는 말 중에 '이팔청춘'이라는 것이 있다. 2×8=16, 열여섯 살 된 여자를 가리킨다.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정확한 뜻은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만큼 자란 나이를 가리킨다. '과년'이 바로 이팔청춘이다. 과년은 한자로 '瓜年(과년)'이라고 적는다. 이 때의 '瓜(과)'자는 서체상 여덟 팔(八)자를 두 개 겹쳐 놓은 형상이다. 그러니 '과년'은 열여섯 살이 된 여자를 가리킨다. 여자 나이 열여섯 살이 되면 이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서둘러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임기가 되자마자 아이를 낳기 시작하여 불임기가 되기 전에 한 명이라도 더 낳아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태어난 아기는 자라다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아 사망률이 높으니 아이가 있어도 안심할 수가 없다. 그러니 낳을 수만 있으면 자꾸 낳아야 했다. 이 땅의 여인들은 이렇게 '아기 낳는 기계'가 되어 속절없이 스러져 갔다.  

1970년대 말 강원도 고성에서 야학을 하던 때의 일이다. 수업이 다 끝났는데 한 학생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주변을 서성였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와 살며 주경야독하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오늘 밤 집에 갈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자고 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잔뜩 풀 죽은 모습으로 애써 눈길을 돌린 채 털어놓는 학생의 얘기가 의외였다. 얼마 전부터 낯선 남자 한 사람이 자기 집에 들락거리는데 그날도 오기로 한 날이어서 집에 가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씨받이'였던 것이다.

지난해 세상을 뜬 영화배우 강수연이 출연한 작품 중에 「씨받이」라는 것이 있다. 손이 없는 대가 집 종손이 씨받이 여인을 들여 후사를 얻고자 하는 얘기를 그린 영화다. '씨받이'란 집안의 혈통을 잇기 위해 다른 여자의 몸을 얻어 아이를 얻고자 하는 일 또는, 그 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의 '대리모'개념과 비슷하다. 오랜 유교의 영향으로, 혈연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불과 3,40년 전까지도 흔히 있던 풍습이다. 조선 시대에나 있었을 법한 봉건 유습이 근자에 이르도록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던 나라에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합계 해산률이 16년째 세계 꼴찌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 통계(잠정)'에 따르면 0.8명대까지 무너져 0.78명을 기록했다는 보도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보다 훨씬 적은 것은 물론, OECD 평균(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출범한 2005년부터 2021년까지 정부는 무려 280조 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써가며 아기 낳기를 장려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수는 해마다 줄어 2021년에는 급기야 신생아 수가 사망자 수보다도 적은 인구 감소 국가로 돌아서고 말았다니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일까. 정책의 타당성, 예산의 효율성 등을 두고 가타부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초상집 불난 격이 된 상황이다. 거들자면 한 마디 보탤 수도 있을 터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내 생각은 세간에 설왕설래하고 있는 것들과는 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 장려만이 능사일까?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싱가폴 같은 몇 개의 도시국가들을 제외하면 방글라데시, 팔레스타인, 대만에 이어 4위이다. 세계 평균 인구 밀도가 52명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505명이나 된다. OECD국가 중에서는 단연 1위다. 이웃나라 일본은 334명, 중국은 148명, 동맹국 미국은 35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인의 호감도가 높은 북유럽 국가들 중에는 13명인 노르웨이가 가장 낮고, 21명인 스웨덴이 가장 높다. 호주는 3명, 뉴질랜드는 16명. 서유럽 선진국들은 모두 100~200명대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국토의 70%가 산림인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인구밀도는 가히 폭발 지경이라 할 만한 것 아닌가. 사정이 이러한데 누구도, 어디에서도 '인구 절벽'을 걱정하는 소리만 있을 뿐 '인구폭발'을 걱정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인구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난제 중의 난제다. 지구는 이미 수용 가능한 인구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진화생물학자 폴 얼리크에 따르면 지구촌 적정 인구수는 15~20억 명이라고 한다. 식량과 환경 등을 고려할 때 방어 가능한 적정 인구 수는 최대 80억 명. 그런데 지난해 11월 지구촌 인구는 이미 80억을 넘어섰다.

유엔에 따르면 2050년까지 인구가 97억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2100년에는 110억 명에 이를 것이라는 보고도 있다. 이 같은 폭발적 인구 증가가 불러올 위기는 인구 감소에 따르게 될 위기에 비할 수 없는 규모의 대재앙이다. 18세기 말 맬더스의『인구론』 이후 인구 증가로 인한 위기는 끊임없이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일각에선 오히려 이런 경고를 허구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재앙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식량의 무기화, 생태계 파괴와 지구 환경의 변화, 자원 고갈, 날로 심화되는 전쟁 위기 등이 대표적 징후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심각한 인구문제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위기의 본질은 인구 과잉이다. 그런데 모두들 인구 폭발 대신 인구 절벽만을 걱정하고 있으니 의아할 뿐이다. 노동 인구의 감소와 노인 인구의 증대로 인한 어두운 미래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경제적 측면만 따져 인구 절벽을 피하기 위해 내세우는 정책들은 근시안적 고식지계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먼 앞날을 내다보고 지속성 있는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구 증가가 아니라 오히려 인구 감소에 방점을 둔 인식의 대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경험했듯이, 백약이 무효인 인구 증가 정책을 계속고집하기보다는 반대로, 줄어드는 인구에 자연스럽게 적응해 가며 사회 전반의 체질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정책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혼인도 해산도 모두 선택이 된 시대에 계속하여 국민들에게 아기 낳기를 설득하기보다는 줄어드는 인구만으로 국가 경영이 가능한 대안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말할 것 없이, 어려움은 여기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얼마간 경제 규모의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며, 그에 따르는 고통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인구정책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지혜를 짜내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전적으로 정치권의 몫이 될 것이다. 인구폭발론과 인구절벽론 사이에서 우리는 이제 인식의 대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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