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장주영 / 대전도시과학고 교사, 평론가

“대전역광장으로 갑니다. 행여나 님을 만날까 하면서. 계절이 돌고 돌아 코스모스 한들한들 거리고 국화 향기 진한 추억의 가을이 돌아오고 있네요. 그 꽃길 따라 대전역 광장으로 오시렵니까? ‘대전역광장’을 애절하게 부른 고대령과 함께 음악에 취해 봅시다.”

대전역광장에서 각자의 추억 속으로 아련한 시간여행을 한다. 박현의  ‘꽃길따라 오시렵니까 ’ 노랫말처럼 봄바람이 불어 벚꽃이 흩날리던 지난 날이 있었다.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면서 내 가슴에도 꽃이 피었었다. 그러나 그리운 그 얼굴은 이제 볼 수 없다. 그래서 가슴에 핀 꽃은 이 가을 새까만 재가 돼 버렸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인생.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자식들은 커가고, 검은 머리칼은 윤기도 잃어간다. 젊은날의 로맨스도 죽을만큼 아팠던 이별도 다 철없던 장난처럼 여기며 잊고 살았던 나날들이 있었다. 그리움으로 타는 애간장 속에 빈 가슴 부여잡고 해와 달과 바람 결에 소리와 벗을 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들과 나의 그리움을 나눈다.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 '애간장'이 구슬프게 흐른다.

대전역 광장에 퍼지는 음악 속에서 옛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추억의 꽃길이 펼쳐진 것이다. 내 가슴 속 타버린 재는 날아가고 다시 꽃이 핀 것이다. 기약 없이 떠나간 가수들이 반가운 얼굴이 되어 대전역광장에 속속 모여든다. 낯선 사람 물결치는 넓은 광장에서 심금을 울리는 음악에 취해 본다. 젊은 날 휘날리던 긴 머리 곱게 빗어 올리고 화려한 옷을 걸치고서 핑크빛 연지곤지 화장을 곱게 한다. 이들과 열애하리라.

 

공연을 즐기는 필자(오른쪽)
공연을 즐기는 필자(오른쪽)

스치는 공연 하나만로도 얼마든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할 수 있다. 대전역광장에서는 일요일마다 가수 고대령의 타이틀곡이 울려퍼지며 쿵짝쿵짝 트롯 공연의 시작을 알린다. 고대령 가수는 일년이 넘기도록 끈기있게 이곳에 왔다. 대전역광장 가사처럼 살았다. 감사한 것은 김용복 논설위원이 인연이 되어 일요일마다 대전역광장에 찾아와 가수들과 동고동락해 주셨고, 20여 편의 평론을 꾸준히 써주신 것이다. 그 결과 가수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인기있는 장소가 됐다. 이제는 대전역을 찾아오고 돌아가는 여정이 고귀하고 행복한 꽃길처럼 되었다. 향기로운 꽃보다 더 진한 인향(人香)을 온 몸에 묻히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여러 가수들이 노래를 불러주기 위해 왔다가 반갑게 환영하는 사람들의 정을 듬뿍 받아간다. 그래서 열창을 하고 돌아가는 가수들의 발길은 행복하다. 그들은 관객을 위하는 발랄함과 무대 예절로 품위가 있다. 긴 시간 지역을 대표하는 가수로 살아오면서 부드러운 인격, 겸손과 노련함, 경험에서 오는 깊이 있는 풍류가 내공처럼 쌓였다. 대전역광장 가수들의 노래는 그들의 익어가는 인생을 노래로 발산하는 것 같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 인생아
이팔청춘 좋다지만 돌아가지 않을래요! (내인생/박선희)

내 사랑 찾아나선 길 천년지 사랑 담가서
이풍진 세상 둘이 하나로 청실홍실 포웅해로세 (광교산연가/김나현)

이날도 박현의 ‘꽃길 따라 오시렵니까?’, 박선희의 ‘내 인생’, 임보라의 ‘애간장’, 김나현의 ‘광교산 연가’ 등의 곡들이 여러 가수들에 의해 애창되었다. 야외에서 긴 시간 지속되는 트로트 공연에 피곤해 하는 기색도 없이 가수들의 사랑스러운 표정과 몸짓은 그들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또 대전역광장을 목놓아 부르는 가수들에 의해 대전역광장이 더 유명해지고 있다. 노래에 심취한 이들은 그리움을 담은 음악에 옛 추억이 떠오르는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남수봉 가수의 ‘친구야’ 노래가 너무나 맛깔스럽다. ‘오늘 밤은 술이 땡긴다.’라며 엄지와 검지로 소주한잔 들이키는 액션은 표정과 함께 가히 일품이다. ‘친구야 이제는 우리는 남은 인생 멋지게 살자. 돈도 명예도 세월 앞에 부질 없더라.’ 부드러운 리듬을 타며 몸을 살란살랑 흔드는데 섹시하다. 술 한잔 하며 부르나? 트로트 감성 재대로다.

‘잊을 수 가 있나요. 돌아서 흘린 눈물. 가지마 못가요 붙잡았는데 용서해요 그 말뿐이야 이 한목숨 다 바쳐서 사랑하려 맹세했는데 떠나시나요 가야하나요 그 맹세는 어떻하라고.’ 라고 맹세하는 남자는 여인을 잊지 못한다. ‘그 맹세’를 부른 정길은 자켓이 너무 잘어울리는 가수로 중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묵직한 목소리의 소유자이다.

청주가수 성지영의 ‘하던대로 하세요’는 달라진 남편을 보며 ‘사채를 썼나? 사고쳤나? 숨겨놓은 여자라도 있나? 병이라도 걸렸나?’라며 의심스러움과 불안함을 느끼는 아내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이다. 가사가 어찌나 솔직하고 정직하던지... 가창력이 훌륭한 가수이면서, 동시에 애교와 사랑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대전역 광장에서 공연을 만들어 내는 고대령 가수. 커다란 렌터카를 빌려서 작업실과 무대를 오고 가는 힘겨운 과정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꽃따오’의 박현 가수 등 몇몇 힘좋은 남자 가수들이 돕고 있지만, 행사 재료만 해도 부피가 엄청나고 설치와 철수 시간도 만만치 않다.

 

왼쪽부터 박현, 정길, 남수봉 가수, 김용복 평론가, 필자, 가수 성지영
왼쪽부터 박현, 정길, 남수봉 가수, 김용복 평론가, 필자, 가수 성지영

잠시 곁길로 빠져보자. 필자는 ‘심금(心琴)을 울리고, 정이 오가는 대전역 광장’ 제하의 칼럼에서 대전역광장에 무대 설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대전역광장을 관리하는 목민관은 흐르는 인파로 늘 북적이는 광장에 작은 무대 설치를 심사숙고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곳이 '정(情)이 흐르는 예술광장'이 된다면 음악, 무용 등 공연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참신한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 대전역 광장은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걷는 곳이지만, ‘음악’은 삶을 사유하게 한다. 찰나의 노래에서도 기쁨과 치유가 온다. 대전에 대한 추억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 대전역을 떠나는 이에게 음악을 바쳐보라! 대전 여행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기회인 것이다.

고대령 가수는 올해 작은 계획을 말한다. 12월 첫째 주에는 ‘대전역광장’을 지정곡으로 노래 경연대회를 한다고 한다. 가을 내내 예선을 거쳐 결선을 대전역광장에서 연다고 하니 모두가 즐기는 푸짐한 행사가 기대된다. 10월의 시작, 한들거리는 늘씬한 코스모스와 깊은 국화 향으로 깊어가는 가을이 왔다. 꽃길 따라 심금(心琴)을 울리고, 정이 오가는 대전역 광장으로 오라. 품격 높은 풍류가객(風流歌客)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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